듀나 <여자주인공만 모른다>
영화를 즐겨 보지 않는 사람도 주인공은 절대 죽지 않을 거라는 믿음쯤은 있을 것이다. 호기심 많은 인물은 언제나 먼저 죽고, 주변에 있던 이성과 키스를 나누면 악당을 따돌릴 수 있다는 공식은 뻔해서 하품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모든 클리셰가 지루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책은 진부해서 지루하고, 진부해서 매력적인 클리셰의 양면을 다룬다.
올 여름, 일본 영화 <으라차차! 마이러브>가 국내 개봉을 알렸다. 카라 출신 강지영이 거구 분장을 하고 출연한다는 소식과 함께. 내용은 대략 이렇다. 100kg의 ‘뚱녀’ 여고생이 사고를 겪은 뒤 ‘미녀’로 재탄생해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이야기. 몇 십 년째 반복된 듯한 스토리는 차치하고, 강지영은 분장만으로 ‘파격 연기 변신’을 한 배우로 거듭났다.
저자는 일부러 외모를 망가뜨리는 관행이 연기를 잘하거나 연기 변신으로 믿어지는 것을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캐릭터다. 배우가 수려한 외모를 포기한다고 해서 진정성을 얻게 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가장 좋은 건 이미 가지고 있는 배우와 캐릭터의 가능성을 가장 잘 살리는 길을 찾는 것이지, 주인공에게 무조건 양푼 비빔밥을 먹이는 게 아닙니다.”
악당과의 싸움에서 밀리던 남자 주인공. 위기의 찰나에 갑자기 고꾸라지는 악당 뒤로 후라이팬을 든 여자 주인공이 보인다. 그의 당황한 표정까지 상상할 수 있는 걸 보면 여간 흔한 클리셰가 아닐 수 없다.
저자는 주방 도구인 후라이팬을 여성성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여자 주인공에게 폭력을 허용하면서도 여성성을 잃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여자 주인공이 식칼보다 후라이팬을 집어드는 이유다.
대부분의 클리셰가 백인 남성 감독들에 의해 굳어져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제는 현대의 감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안정적인 전통이 될지 게으른 답습이 될지는 감독과 관객에게 달려있으므로, 그 경계를 구분 짓는데 이 사전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