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카오플백 Nov 25. 2020

수어로 여는 문화예술 콘텐츠의 시작

핸드스피크 농인 아티스트의 10문 10답

농청년과 함께 문화예술 콘텐츠를 기획하고, 창작하는 (예비)사회적기업 핸드스피크.

지난 10월 24일, 핸드스피크의 농인 아티스트 세 분(김지연 님, 박지영 님, 오서진 님)과 ‘보이는 대로 시끄러운’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했는데요. 재치와 유쾌함으로 촬영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연극, 수어랩, 댄스, 뮤지컬,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활약하고 있는 세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눈을 열고 들어 보세요.





Q. 지난 시즌과 이번 시즌 연속으로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느끼는 점이 있다면?


박지영 : 저는 베타 시즌2, 3를 모두 참여하고 있는데요. 멤버들과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즐거워요. 저희는 수어 전문 번역인이 아닌 아티스트니까 더 신중하게 피드백을 드리려고 노력해요. 틀린 부분을 짚어 줄 때도 미리 사전을 다시 확인하면서 답변을 드리죠. 그걸 알고 호응해주실 때 기분이 좋아요.

  

오서진 : 단순히 수어를 따라하는 것뿐 아니라 “왜 이 수어는 맞고, 이 수어는 틀리나요”, “한국어 문장과 수어 표현은 왜 다른가요” 등등 다양하게 질문하세요. 사실 저희는 자연스럽게 수어를 사용하다 보니 생각하지도 못한 것들도 있거든요. 수어 전문가분에게 여쭤보거나 지영님 말대로 사전을 보고 답변을 드리니까 함께 공부하는 느낌도 들어요. 수어를 바르게 알려야겠다는 사명감도 생기고 하죠.


김지연 : 저는 사실 매일 매일 인증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여기 지영님이나 서진님, 그리고 꾸준히 하는 멤버들을 보면서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웃음) 반성도 하고, 긍정적인 영향도 받고 하죠.



Q. 최근 핸드스피크 수어 커버 뮤직비디오 <영웅-누가 죄인인가>가 굉장히 큰 화제가 되었는데요. 제작하게 된 계기는?


김지연 : 핸드스피크 단원들과 뮤지컬 <영웅>을 보러간 적이 있어요. 100%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무대 연출이나 배우들의 연기, 노래, 분위기를 통해서 굉장히 큰 감동을 받았어요. 다른 농인들도 이 뮤지컬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극 중 가장 유명한 곡 <누가 죄인인가>를 수어로 커버하기로 했죠.

 

박지영 : 이 노래에는 여러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어요. 그걸 수어로 어떻게 섬세하게 전달할 수 있을 지 많이 고민했어요. 왜곡되거나 어리숙하게 전달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농학교 역사 선생님과 공부도 하고 각 인물들에 대한 조사도 많이 했죠.

 

오서진 : 농인들은 지화를 쓰기도 하지만, 수어 이름을 정하기도 해요.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우덕순, 유동학, 조도선 등 주요 등장인물에게 수어 이름을 붙였는데요. 가령 안중근 의사는 네 번째 손가락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네 번째 손가락을 접은 상태로 한다거나, 우덕순 의사도 눈썹이 한 쪽이 비어 있어서 눈썹의 특색을 담기도 했고요. 사진 자료를 열심히 봤습니다.



Q. 제작할 때 이 정도로 화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셨나요? 그리고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김지연 : 저희는 이런 반응을 기대 했습니다(웃음). 오히려 더 큰 화제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에 살짝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오서진 : 맞아요. 농문화를 오롯이 담아 청인들에게도 감동을 주자는 목표가 있었는데, 약간 오르다 만 듯한? 더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Q. 연극 <사라지는 사람들>은 농인과 청인이 함께 무대를 올린 연극인데요. 서로가 보조적인 파트너가 아닌 각자의 역할을 각자의 방식(수어, 구어)으로 진행한 것처럼 보여요. 이렇게 함께 예술을 하거나,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일까요?


김지연 : 청인 배우와 농인 배우가 함께 무대를 꾸미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좀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요. 서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청인 배우가 농인 배우를 위해 수어를 하는데 그 수어가 굉장히 어색한 거죠. 또 수어랑 말이랑 동시에 하니까 집중이 잘 안되더라고요. 농인들의 특성이 살지도 못했고요.

<사라지는 사람들>의 경우는 청인배우는 말로, 농인배우는 수어로 각자의 위치에서 동등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연극이 되었고요. 그런 무대를 꾸미는 게 중요합니다.

 

오서진 : 청인과 농인이 함께 무대를 꾸미기 위해서는 수어통역사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요. 중간 다리 역할을 해주시니까요.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어야만 공동의 좋은 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박지영 : 수어통역사가 필요하다는 것도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해요. 무대에서뿐 아니라 연습이나 평상 시에도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뒷받침되어야죠.



Q. 아티스트로서 나만의 습관이나, 더 좋은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서 하는 습관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지영 : 저는 노래를 들을 때, 이 가사를 어떻게 수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연스럽게 번역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습관이 있어요.


김지연 : 저는 수어 랩을 하잖아요. 원래 노래 듣는 걸 좋아하지만 가사를 읽거나 보지는 않아요. 목소리가 저한테 또렷하게 들리지도 않고요. 저는 노래를 들을 때 박자감을 즐기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수어랩을 공연하면서부터는 노래 듣는 습관이 변했어요. 가사를 읽는 습관이 생긴 거죠.

박자 비트가 좋으면 가사를 읽어보고 수어로 표현해볼까 생각하게 되고요. 가사가 별로면 듣기만 합니다. (웃음)


오서진 : 노래 안에 비유적 표현이 많잖아요. 그런 비유를 수어로 직역하면 농인에게는 제대로 된 의미 전달이 안됩니다. 그래서 주변 농인 친구들에게 묻는 버릇이 생겼어요. “너는 이걸 어떻게 표현해?”, “이건 어떻게 해석해?”라는 질문을 달고 살죠. 그리고 아티스트로 활동하면서부터는 피드백을 메모해두고 다시 보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김지연 : 사실 저는 수어 랩을 번역할 때 ‘아니다'를 뜻하는 손짓을 자주 사용해요. 가사에 없는데도 이 수어를 적당한 자리에 꼭 넣었거든요. 그런데 누가 저에게 그 손짓이 저만의 래퍼로서의 개성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잘 활용해서 적절히 넣으려고 합니다.


 

Q. 공연을 앞두고 혹시 실수에 대한 부담이나 잘하고 싶은 압박감이 있는지, 그리고 그런 것들을 떨쳐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따로 있는지 궁금합니다.


박지영 : 저는 공연 전에는 긴장해서인지 소식하는 습관이 있어요. 물론 공연이 끝나면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술도 한 잔 하고요.


김지연 :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인데, 겉으로는 티를 안 내려고 해요. 연습을 많이 해서 걱정을 덜어내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징크스가 있는데요. 개 산책을 안하고 연습이나 공연을 하면 마음에 썩 들지 않아요. 무언가 계속 신경이 쓰이는 거죠. 그래서 오늘도 오기 전에 한바탕 산책하고 왔어요(웃음).

 

오서진 : 저는 무대에 올라가기 직전에는 무척 예민한 편이에요. 무대 서기 전까지 계속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주변에는 “건드리지 말아줘”라고 말하곤 해요.



Q. 수어로 도전해보고 싶은 공연이나 함께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김지연 : 수어 래퍼들과 콘서트나 뮤직 페스티벌에서 합동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저는 무대에 서고, 앞에는 수어통역사가 앉아서 미러링 통역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농인도 청인처럼 콘서트와 페스티벌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지영 : 저는 정승환 님, 태연 님, 아이유 님을 좋아해요. 이분들과 작사나 공연을 함께 해볼 기회가 있기들 기대해봅니다.

 

김지연 : 그리고 한 마디 더 할게요. 지금까지 농인들이 공연을 한다고 하면 뭔가 희망을 줘야 하고, 어린이처럼 순수해야 한다는 그런 요구를 받을 때가 있어요. 사실 저희는 섹시한 공연, 부조리하고 불온한 내용을 주제로 한 것들도 해보고 싶거든요.


오서진 : 저는 해외에서 활동하는 농인 아티스트 크리스틴 선 킴(Christine Sun Kim)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요. 슈퍼볼 경기에서 최초의 수어 공연을 하기도 했고, 농인 문화로 예술을 창작하는 분인데, 함께 공연할 기회가 있다면 꼭 해보고 싶습니다.


김지연 : 서진 님 말을 들어 보니, 저는 늘 청인 아티스트와 공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주로 했던 거 같아요. 핸드스피크가 열심히 활동하면 훗날 저희와 함께 하고 싶다는 후배들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Q. 한국인으로 살면서 우리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변화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지연 : 바꾸고 싶은 건 너무 많죠. 그중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뮤지컬 <영웅>을 정말 보고싶어서 VIP석 티켓을 샀어요. 무려 14만원이었죠. 다행히 장애인 할인 50%를 받아 7만원으로 볼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정작 공연장에는 수어도, 자막 통역도 없어서 공연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어요. 할인은 왜 해줬을까요?

뮤직 페스티벌이나 콘서트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가고 싶어서 티켓을 사려고 하면 늘 장애인 할인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공연을 누릴 수 있는 준비는 없죠. 차라리 할인 안 받고 요구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배려같은 생각이 들죠.

누구나 실질적으로 문화예술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는 환경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농인이 ‘소리’를 어려워해요.
청인들의 문화니까요.
그 문화를 따라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죠.
그래서 수어로 먼저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청인들이 반대로 그 문화에 들어오는
그런 활동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Q. 수어라차차 매니저가 아니라 프로젝트100 참여자로서 참여하고 싶은 프로젝트 또는 수어가 아닌 다른 테마로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오서진 : 글쓰기 프로젝트요. 단순히 제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제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에 대한 스토리를 쓰고, 촬영을 기획하고,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고 싶어요.


김지연 : 저는 애주가입니다. 매일 다양한 술을 미션처럼 받아서 먹어보는?


박지영 : 술을 권하는 프로젝트는 이상할 거 같아요.

(술을 권하는 건 아니고 세계의 다양한 술을 마셔본 사람이 쓴 책을 읽는 프로젝트는 있었습니다.)


김지연 : 공부 말고요. (웃음)


박지영 : 휴대폰을 쓰다 보니까 책읽기나 글쓰기를 거의 안하는 거 같아요. 저도 서진님처럼 직접 글을 써보고 싶네요.  



Q. 마지막 질문입니다. 함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김지연 : 멤버분이 대부분 청인일 거라 생각했는데, 농인분들도 꽤 있으시더라고요. 수어 노래에 관심을 가진 농인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 프로젝트를 통해서 수어에 대한 인식 개선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굉장히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함께하는 멤버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오서진 : 우연히 우리가 마주친다면, 피하지 말고 먼저 말 걸어주세요! “저 수어라차차 멤버예요.”라고요. 제가 아주 크게 환대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박지영 : 수어를 배우고 ‘끝!’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수어를 표현하고 알리면서 수어가 널리 퍼졌으면 좋겠습니다.




농인 예술가인 크리스틴 선 킴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많은 사람이 수어를 배웠으면 좋겠어요. 꼭 누군가를 위해 배울 필요는 없어요. 자신을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배우면 새로운 자극을 받게 되거든요. 자신을 표현하는 모든 것이 예술의 기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의 말대로 귀를 닫고 눈을 열면 새로운 언어와 문화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소리의 세계에서 우리는 오직 소리만을 들을 수 있지만, 시각의 세계에서는 움직임(진동)을 통해서도 소리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있는 그대로의 농문화와 수어를 통해 문화예술 컨텐츠를 창작하고 전달해온 핸드스피크와 함께 수어를 배우고 싶다면, 수어라차차 프로젝트'에서 만나보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