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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J Apr 28. 2020

내 앞의 삶

 선선한 가을의 어느 날, 나는 섭섭이라는 별명과 함께 태어났다.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나 고생 한 번 안 해보고 자랐던 우리 엄마는 종갓집에 시집 간 바람에 밤마다 펑펑 울었다고 한다. 엄마는 과수원집에서 태어나 사과를 좋아했지만 아들을 낳기 위해 입에도 맞지 않는 닭 간과 염소 피까지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언니를 낳고 삼 년 뒤에 또 나를(또 딸을) 낳아버렸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던 날의 청명한 가을 하늘을 보고 하늘이 노랗다고 했고, 할머니는 나를 보고 섭섭하다는 말만 계속했다고 한다. 갓 태어나서 처음 들은 말이 섭섭하다는 말이었다니 나야말로 할머니에게 참 섭섭하다. 다행히 내 뒤에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할머니의 잔소리가 수그러들었만, 나와 언니는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손길이 남동생에게 더 자주 가는 걸 지켜보면서 암묵적인 연대감을 가지고 자랐다.

  내 가장 이른 시기의 기억은 유치원을 가는 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순간이다. 내 나이는 거의 네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집 안의 구조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온 가족이 모여 TV를 보던 거실과 우리 삼 남매가 뛰놀던 집 앞마당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아침이 되면 TV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 노래가 흘러나왔고, 나보다 세 살이나 앞섰던 언니는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유치원 갈 준비에 한참이었다. 언니는 나와 다르게 굉장히 용감하고 씩씩했는데, 언니와 함께 소독차를 따라다니다 길을 몇 번이나 잃어버리곤 했다. 종이접기를 좋아했던 언니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곤충 채집에 한창 빠졌고,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다니면서 우리 손에 잠자리와 매미를 하나씩 끼워줬다. 나는 손끝에서 진동하는 곤충들이 끔찍이도 싫었지만 언니랑 노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꾹 참으면서 따라다녔다. 나보다 세상을 먼저 경험한 언니는 나에게 늘 신선한 경험을 마련해주었는데, 언니가 보고 싶어서 초등학교 운동장에 놀러 가면 언니는 나에게 그 당시 최고로 핫했던 간식들을 사주곤 했다. 주라기 공원 젤리가 붙어있는 아이스크림이라거나 맥주 맛 사탕, 새파란 파인애플 맛 슬러시가 당시의 나에게 가져다준 자극은 굉장히 짜릿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유난히 언니랑 연대감이 많은 것은 몇 년 동안이나 같은 방을 썼고, 언니에게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가 우리를 남동생과 차별한다고 느껴질 때면 같이 하소연하고, 그러면서도 남동생을 괴롭히는 애들이 있으면 우리는 함께 나섰다. 언젠가 옆집에 살던 여자애가 남동생 얼굴을 꼬집은 일이 있었다. 그 일이 있었을 때 엄마는 그 집의 엄마와 틀어지는 것이 염려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데, 나와 언니는 그 여자애가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있는 힘껏 째려봐 주었다. 나는 뭐든지 잘하고 어딜 가든 칭찬받는 언니를 닮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 중에 한 명은 언니와 내가 걸어가는 발걸음마저 똑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은연중에 나는 발걸음마저도 언니를 닮아가고 있었나 보다.

 언니는 내가 무언가를 할지 말지 고민할 때면 “그냥 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고등학교 때 미술을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반대해서 하지 못했을 때에도 언니는 나에게 “내가 대학 가서 과외하면 너 학원비 대줄게.”라고 말해주었고, 내가 임용시험을 준비하던 때에도 매달 맛있는 거 먹으라며 용돈을 주었다. 지금은 언니에게도 소중한 가족이 생겨서 예전만큼 자주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지만,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나 고민이 생기면 언니에게 상의한다.

 언니는 첫째로 태어나서 굉장히 힘들고, 외로웠다고 했는데, 언니가 동생이고 내가 언니인 삶은 상상이 잘 안 된다. 이 말이 좀 이기적인 것 같지만, 나는 언니가 나의 언니여서 너무 좋다. 나와 남동생보다 먼저 태어나서 우리의 무게까지 대신해준 우리 언니, 내가 내 삶에 대해 큰 걱정이 없는 건 나의 앞에 놓인 언니의 삶이 너무 멋지기 때문인 건지도 모른다. 우리 엄마, 아빠만큼이나 내 인생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언니.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언니와 떨어진 곳에서도 늘 언니의 흔적을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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