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기 불안에 관하여
나는 말하기 불안이 심한 국어 교사이다.
처음 교사가 되었을 때, 2차 시험 성적(논술)이 훌쩍 높아서 붙었지, 사실 3차 시험 성적(면접, 수업 실연)에서는 점수가 형편이 없었다.
심지어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감독관께서는 처음에 내 면접을 눈 감고 들으시다가(원래 감독관 세 명 중 한 명은 이런 역할이라고 들었다), 내 목소리가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떨리자 인자한 표정으로 눈을 뜨고, 괜찮다고 진정해주셨다.
그때 수업 실연 문제가 자기소개하기 였고, 조건 중 하나가 교사가 직접 자기소개하기의 시범을 보이는 것이었는데, 내가 나를 염소 선생님이라고 소개하자 감독관들이 살짝 웃었던 장면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난 원래 그런 사람이야. 어쩔 수 없어, 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게
그로부터 2년 뒤에, 지역을 바꿔서 임용 시험을 칠 때는 1차 시험(시험 제도가 바껴서 1.2차까지만 보면 된다) 컷에서 2점 정도밖에 높지 않았는데, 2차 시험에서지도안은 거의 최하점을 받았고, 면접과 수업 실연에서는 만점 가까이 받았다) 점수를 뒤집어 꽤 높은 성적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제일 마지막 번호를 뽑은 덕분에 속으로 계속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 보통 제일 마지막 번호를 뽑는 걸 싫어하는데, 나는 오히려 제일 마지막 번호를 뽑은 게 다행이었다. 제일 첫번호였다면 이미 지도안도 망친 상황이라, 정말 가관이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교단에 서 있는 지금도 사실 나는 말하기 불안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사적으로 친한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의아해할 것이다.
'네가?'라고.
하지만 낯선 상황, 어려운 상황, 평가받는 상황에서는 여전히 목소리가 떨린다. 특히 3월에는 아무리 쎈 척을 하면서 목에 힘을 주고 말을 해도, 학생들 앞에서 염소같은 목소리가 새어나오기도 하고, 학부모 총회같은 어려운 자리에서는 목소리가 두서 없이 흔들린다.
온라인 수업에서는 얼굴도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수업을 하다보니, 내가 들어도 목소리가 가관이었다. 동료 교사들에게 내 수업 영상을 공유할 때는 정말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열번씩 녹음한 결과가 그랬으니, 스스로로서는 정말 최선이었다...
이런 나에게 지난 1주일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수업 영상을 찍어야 할 일이 있었는데, 심지어 이번 영상은 얼굴까지도 나와야 했다. 임고생 때처럼 대본을 만들어놓고 정말 수십번씩 준비했지만, 막상 카메라 앞에 서니 목소리가 너무 떨렸다. 카메라 감독님이 '강사님 긴장 푸세요, 단 거라도 좀 드시고 하세요.'라고 걱정스레 이야기해줄 정도였다.
결국 원래의 예상시간보다 1.5배의 시간만에 덜 긴장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 완성되었는데, 그래도 여전히 고장난 로봇같았다.
청심환도 이기지 못하는 나의 이 떨리는 목소리.
나는 무엇이 그렇게 두렵고 걱정되는 걸까.
말하기 불안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아도,
연습하면 괜찮아진다, 자신감을 가져라, 인데
연습은 할 만큼 했고, 자신감은 어떻게 하면 느는 걸까?
사적인 대화는 자신 있는데, 공적인 상황에서는 어김없이 고장이 나버리는 내가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을까? 내용만큼은 정말 자신이 있는데, 그걸 전달하는 과정때문에 좋은 기회들을 놓쳐버린 적이 많다.
언젠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낯선 상황 앞에서 중요한 발표를 하거나 수업을 해야하는 상황이 올텐데, 그때까지 나는 어떤 면을 노력하면 좋을까?
보다 근원적인 나 자신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육식보다 채식을 좋아하는 나는 원래 염소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나로 살아온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나는 아직도 나 자신을 모르겠다.
#말하기불안 #발표공포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