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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Nov 10. 2023

그래도 이 정도면 꾸준히 썼다

 꽤 오래 썼구나, 얼마 전 처음 쓴 브런치의 글은 어떤 내용인지 보기 위해 스크롤을 내리다 깨달았다. 내가 쓴 것을 여전히 지키며 살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나의 브런치 첫 글은 4년 전 11월에 등록되었다. 꽤 많은 햇수가 지난 것에 비해 글 개수가 많지 않다는 점이 조금 부끄럽긴 하다. 그런데 한가지 놀라운 건 그때도 역시나 '11월'에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점이다.


 나는 유독 10월이나 11월에 새로 시작하거나 결심하는 일이 많다. 흔히 많은 사람들은 연초와 함께 해야 할 일을 설정해 두고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고 나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타당한 명분 없이 그저 하고 싶었던 일, 프로젝트는 1월까지 기다리는 것을 참지 못하고 조금 이르게 행동에 옮겨버리곤 했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의 타이밍. 이맘 때의 나는 올해 했던 일들을 되돌아보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추워지기 전에 뭐라도 시작해야 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아쉬움과 상실감이 너무 큰 나머지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게 아닐까.


 그렇게 시작해서 목표한 것을 어떻게든 이루거나, 성실히 지속한 일도 있지만 또 별다른 성과 없이 떠나보낸 일도 있다. 그래도 최근 몇 년간은 타율이 꽤 좋았다고 자부한다. 작년 이맘때는 더 이상 운전면허를 미루지 않고 따겠다는 결심을 해서 이뤘다거나 2년 전엔 전혀 새로운 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들 수 있겠다. 이것저것 따지고 재보는 시간에 뭐라도 하기. 이불 덮고 누워서 불안해하기보다는 일어나 있자는 마음으로.


 이런 불안감은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변함없이 공유하는 것이었나 보다. 때문에 몇 년 전의 11월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브런치에 내보내는 속도와 간격이 너무 느리긴 한데, 난 의외로 꾸준함에 재능이 있을지도. 실은 꾸준,이라고 말하는 것도 과대 평가고 단지 시간을 오래 잡고 꾸역꾸역 이어오다 보니 지금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도 조금은 나 자신을 뿌듯해하고 싶다.




 지금에서야 실감하는 것인데, 내가 꾸준함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인지는, 일단 꾸준하게 무언가를 해 놓았을 때 비로소 그것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재밌다. 들인 시간과 결과물로 파악하는 나에 대한 판단. 그 사이엔 의욕이 충만한 시기도, 잘 풀리지 않는 시기도 존재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의 시기만 해도 그렇다. 떨어진 집중력 부족을 겨우 이겨내며 스마트폰으로 대충의 구조를 잡은 뒤엔 PC에서 써 내려가고, 다시 폰으로 들여다보며 몇 번이고 고치는 등 전에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하나의 포스팅을 쓰고 있다. 나를 달래가며 꾸역꾸역 해나가는 요즘의 방법. 가고 싶은 방향성을 유지하기 위해, 툭툭 튀어 나오는 나의 불완전함을 만나고 극복해 나가는 것으로 하나의 경험은 완성된다. 시간을 들여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이다.



 어김없이 그때가 왔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는 타이밍이 왔다는 걸 뜻한다. 게다가 새로운 것들이 늘 반짝이면서 나에게 손짓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새로운 것, 다양한 것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여전히 나에게 필요한 건 사소한 것을 지속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언제든 다시 시작할 거라고 미뤄놓던 러닝은 제대로 해야지.


 지금부터 내년까지, 너무 많은 성취는 바라지 않고, 내가 쓴 대로 살아갔으면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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