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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May 16. 2024

매우 적절한 타이밍

 서울엔 주말이며 휴일마다 비가 내렸다. 때문에 살고 있는 동네엔 평소와 다르게 주말에도 사람이 적었는데, 그 틈을 타서 영화관을 가고 밖에서 혼자 밥을 먹기도 했다. 요즘 들어 퇴근시간이든 주말이든 밖에 나가기만 하면 사람에 치인다고 생각하던 터라 비 오는 날이 꼭 나쁘지 만은 않게 느껴졌다.



 요즘 길거리에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내 투덜거렸지만 다른 이들도 주말을 주말답게 보내고 있는 것일 뿐 별다른 상황이 아닐 터였다. 실은 나조차도 이 계절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정해버렸는데, 그 마음가짐은 곧 행동으로 이어져 이전과 다르게 밖으로 나갈 일을 자꾸만 만들고 있었다. 약 한 달 전쯤, 한창 벚꽃이 만개하기 직전에 이 기회를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하니까 꼭 보고 넘어가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권하고 다닌 일이 있다.


 친구나 지인에게, 동료에게, 심지어 사담을 잘 나누지 않았던 레슨 선생님에게 이번 주에 꼭 벚꽃을 보셔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꽃놀이가 화제에 오르내리면 ‘시골 출신이라 어렸을 때 실컷 봤다’며 무심한 태도로 일관하던 때와 달리 꽤나 진심이 된 것 같다.




 국회의원 선거일엔 일찌감치 투표를 마치고 친한 언니와 시간이 맞아 서울숲으로 나가 튤립을, 그리고 몰려든 인파를 구경했다.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밝은 표정이라던가 또는 들뜬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모처럼 나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날이었다. 본격적으로 따뜻해진 4월 마지막 주엔 한강으로 피크닉을 갔고, 얼마 뒤엔 서촌을 돌고 전시도 보기 위한 약속도 잡았다. 특히 요즘은 개봉한지 얼마 안 된 신작 영화도 영화관에 가서 보기 시작했다. 안 봐도 그만, 어차피 ott에 풀렸을 때 보면 된다며 흘려보내고 말았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보지 못한 영화가 한 트럭이었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영화는 집에서도 좀처럼 보지 않고, 이젠 점점 긴 시간을 들여 무언가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버린 걸 안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점점 빨라지는 시간의 흐름을 실감해서일지 모르겠지만 어떤 일이든 그에 맞는 제때에, 딱 맞는 타이밍에 해내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크게는 계획했던 프로젝트라든가, 작게는 계절에 담긴 변화를 온전히 즐기는 일도 그랬다. 유독 가벼운 일일수록 미루기가 쉬웠다. 특히 가까운 사람과의 사소한 연락이나, 안부를 묻는 것도 생각날 때에 바로 챙기지 않으면 시기를 놓쳐버리고 만다. 최근 있었던 엄마의 생일이나 어버이날도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아 어색하게 넘어가고 말았다. 이번 주말엔 아예 집에 내려가서 최근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핑계로 무심했던 죄를 싹싹 빌어야 한다. 뭐든 할 수 있을 때 해야 겨우 할 수 있다는 걸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았을 텐데.


 이번에는 불과 몇 개월 전에 짐작했던 나의 상황과는 또 다른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늘 예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꼭 하려고 했던 계획은 어그러지고 예상하지 못한 일이 자꾸 일어난다. 그래서 실은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것도, 잘 모르겠다. 자연의 변화는 어느 정도 눈에 보이지만 일상은 종종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때가 많고, 때로는 덜컹거리기도 한다. 이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도 신경 써서 주변을 챙기고, 또 가끔은 밖을 내다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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