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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나 Pina Jun 29. 2024

무질서의 흔적만 쌓이는 세계


 지난 일요일엔 꽤 늦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침대에서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일자목에 목 디스크 위험을 안고 있는 나로서 늘 목에 잔잔한 통증을 달고 살았는데 그날은 몸을 일으킬 수 없을 정도로 심했던 것. 지난주 내내 몸이 긴장을 했던 탓일까, 전날 오랜 시간 앉아있었던 것이 문제였을까 이런저런 추측을 해보기도 했는데 뾰족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이젠 집에서 글을 쓰든 운동이든 뭐든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한 이후에는 집중이 필요할 때 스터디카페나 공유오피스를 전전하고 있다. 사실 이 글도 공유오피스에서 시간권을 끊어 쓰고 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예전만큼 길지 않고 그마저도 대부분 침대에서 지내고 있다. 목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는 이 목의 통증이 집에서 누워있어야 할 그럴듯한 이유가 되어준 셈이다. 그래서 집에서만큼은 될 대로 되라는 식의 게으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퇴근 후 만나는 어두운 내 방은, 자칫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어찌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개념은 방문 밖을 나서야 선명하게 다가온다. 풍경의 변화라든가, 공기의 온도 같은 것으로. 하지만 나는 대부분 내 방이라는 단절된 곳에서 다음 날을 맞는다. 늘 같은 반복이 일어나서는 그 흔적들만이 차곡차곡 쌓이는 세계. 그저 엔트로피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는 이 공간에서 잠깐의 결단을 내려봤자 무의미해져 버리기 쉽다. 이 말인즉 난 언제든 변화를 꾀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내일이라는 기회가 계속해서 주어지고 있으니 그게 꼭 지금일 필요도 없는 것이다.


 오래 미루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아니어도 되는 딜레마. 특히 일이 몰릴 때나 어떤 마음의 부담을 안고 있을 때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또 다른 나로 쉽사리 변해버리고 만다. 게다가 이번처럼 목이 심하게 아팠다든지 새 회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든지, 사소하게는 마트에서 산 깐마늘의 용량이 유독 컸다든가 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혼란에 빠지는 일도 잦다. 아마 정리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일상을 유지하는 일을 포기하고 무질서의 흔적들을 넘치도록 지켜보기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에겐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생겼달까.





 그렇다면 대체 언제 이 무질서를 끊고 어떻게 제자리로 돌릴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어지럽히기도 전에 바로잡기. 하지만 이것은 내 기준에 한없이 이상적인 평행세계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식사 후에 바로 설거지 하기나 빨래가 마르면 바로 걷는 것도 힘들어하는 나에게 바로바로 치우는 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힘들 것 같다. 결국 요리하는 횟수, 배달도 줄이고 밖에서 먹거나 포장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는 메뉴를 사다 먹는 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방향이 크게 바뀌게 됐다. 특히 여름을 보낼 때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데에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빨래는 꼭 한꺼번에 개지 않아도 되니 물을 마실 때,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일어날 때 한 번씩 해보자는 다짐을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중이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내서 정리한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때 ‘매일 15분씩 정리하세요!’라는 제안, 시간관리법에 충실히 따르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말았다. 특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을 거치면 뭐든 답이 없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왜 이렇게 빠르게 싫증을 내는지 모르겠지만. 주말에 몰아서 하고 어떻게든 어지럽히지 않으려는 의지만 얄팍하고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다.


 정리를, 청소를 즐긴다는 사람은 대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까. 게으른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다만 지겹고 하기 싫은 일이라는 걸 인정하고, 억지로라도 하는 수밖에. 나를 위해 기울이는 이 최소한의 노력을 놓쳤다가는 까딱하면 깊은 무기력에 빠질 거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다. 귀찮긴 했지만 냉동실 속 마늘블럭은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든든한 기분이 들고. 역시 만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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