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 발자국
오! 저 신사 복장을 품격 있게 갖춰 입었네.
그렇다면 반드시 신체의 끝자락에 올 것이 있다.
구두.
옷을 완성시켜 주는 건 누가 뭐래도 구두다.
멋진 의복을 갖추고 고무신을 신었다면 그건 미완성이다.
신발도 복장처럼 그 사람의 경제력과 미적 감각을 한눈에 일러준다.
진정한 멋쟁이는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패션의 완성이라는 이 신발은 본래 신분과 계급을 갈랐던 장신구였다.
지금까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신발은 샌들(sandal)이다.
기원전 2000년경에 이집트 무덤에서 발견된 샌들은 파피루스로 만들어진 최초의 신발이다.
지금도 여름에 신는 샌들은 이렇게 오랜 시간을 거쳐 현존하고 있다.
샌들에 이어 더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모카신이다.
모카신은 가죽끈을 다리에 감은 뒤축 없는 구두였다.
기원전 600년 전에 그리스 상류층 여성들이 먼저 선을 보였던 구두다.
상류층 여성의 구두는 빨간색과 흰색으로 신분을 나누었다.
그 시대나 지금이나 돈이 문제였다.
결국 상류층들이 주 고객이었고 그들이 유행의 선두주자였다.
규격이 없던 구두를 하층민들은 맞춰 신을 수 없었다.
제각각인 사이즈를 규격화하기 위해 1305년 영국 왕 에드워드 1세가
보리 세 톨의 길이를 1인치로 한다는 칙령을 내리게 된다.
보리 세 톨로 규격사이즈 구두를 만드는 기준이 된 것이다.
기준과 상관없이 유행은 돌고 돌았다.
구두 끝이 뾰족했다가 넓적했다가 끝없이 변모를 거듭했다.
1400년대는 구두 끝이 특히 길고 뾰족했다.
18인치가 넘는 크라코(crakows)라는 구두가 그 주인공이다.
구두 끝이 길다 보니 넘어지고 엎어지고.
에라! 멋이 아니라 애물단지구먼.
결국 발끝에서 2인치 이상 뻗은 구두는 착용을 금지시켰다.
1892년부터 영국에서는 질 좋은 기성화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18세기 중반에 생산 라인을 갖춘 구두가 출시되기에 이른다.
대량 생산은 거의 판박이 형태였다.
질이 좋은 구두가 생겨나긴 했지만 사람마다 발의 형태가 다르다 보니,
개인적인 보완점이 또 필요했다.
미국의 윌리엄 숄(william scholl) 은 이런 점에 착안하여 구두를 편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는 스물두 살의 젊은 나이에 의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고 건강한 발을 위한 구두생산에
매진하게 된다.
1916년 그는 `신데렐라 발 콘테스트`라는 기상천외한 이벤트를 열었고,
여성들의 큰 호응으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대회를 통해 여러 유형의 족형을 본뜨면서 다양한 구두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은 `윌리엄 숄`을 구두업계의 황태자로 만들어 주었다.
당시 약국에서 판매되던 노란색과 푸른색의 `윌리엄 숄` 신발은
대단한 호평을 받았고 그의 신발을 사려는 사람들로 가게는 늘 북적거렸다.
그는 좀 더 편하고 멋진 구두를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구두계의 장인이다.
구두는 이렇게 여러 경로를 거쳐 우리에게 왔다.
신발은 패션이자 보호막으로 지금껏 우리 곁을 지켜내고 있다.
요즘은 구두가 그전처럼 인기를 얻지 못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주로 운동화를 신는다.
겉치레 보다 운동을 중시하고 편함을 추구하는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함이다.
우리 모두는 시대의 변화와 함께 이날까지 엮여왔고 엮여갈 것이다.
이미지: 필자. 참고 문헌: 김대웅.『최초의 것들』노마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