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 달력을 만들다
참 세월 빠르다.
누군가가 꽁지에 불이라도 지폈던가.
재빠르게 한 해가 허물어졌다.
흩어지고 마모된 조각들은 모두 다 어디로 떠났는가.
가버린 시간들은 어디로 스며들었을까.
성질 급한 사람들은 벌써 크리스마스트리에 전구를 올렸다.
벚꽃들이 낙화할 때만 해도 한 해가 희망으로 출렁거렸다.
그러나 지금 뒹굴고 있는 은행잎에선 희망을 찾아볼 수 없다.
그건 한 해 문을 닫겠다는 시각적인 경고다.
시린 가슴으로 산책길에 나섰다가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글을 발견했다.
산책길에는 작은 미술관이 있다.
거기서 수채화를 그릴 사람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오호라!
당장 게시판에 올려진 전화번호로 통화를 시도했다.
"공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인원이 다 찼나요?"
"아니요, 아직이요."
"저 할 테니 넣어주세요."
이리하여 나는 유화에서 수채화의 길로 잠시 외도를 시도했다.
미술관은 고작 열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새해 탁상 달력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초보는 아니지만 초보인양 버벅거렸다.
수채화를 전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유화보다 훨씬 멀다.
멀든 가깝든 6주 동안 화요일마다 신바람이 났다.
바람도 이런 바람직한 바람은 얼마든지 누구라도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한 해를 그리려면 12장이 필요한데 12명이 안되니 내가 석 달 치를 담당하게 되었다.
새 봄이 시작되는 3월.
신록의 6월.
복숭아가 살찌는 7월이 내 몫이다.
초등학생들처럼 되든 안되든 열심히 그려댔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은 교육실이 침몰선처럼 묵직했고 조용했다.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를 정도로 교육생들은 그림에 심취했다.
드디어 탁상 달력이 짜~잔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엔 초보의 수줍음과 긴장된 손가락의 움직임도 묻어있다.
개별적으로 열 개씩 탁상달력을 받아오면서 모두는 흥분된 분위기를 지우지 못했다.
복지차원의 작은 미술관이 지역 주민들에게 잠시나마 활력과 신선함을 안겨준 것이다.
나는 본래 유화를 그리는 사람이라 수채화는 유화보다 어색하고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도전한 것은 ` 나라고 못할 거냐` 용기를 갖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람에겐 이렇게 뜻하지 않은 용기도 불쑥불쑥 퍼올릴 필요가 있다.
몇 개 안 되지만 찐친들에게 나눠주면 아마도 폴짝 뛰면서 좋아할 거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설계하는 시점에서 이렇게 또 하나의 작은 뭉치를 만들었다.
도전은 이래서 박수를 수반한다.
3 월치곤 너무 앞서간 벚꽃이다.
주책없는 벚꽃일지라도 벚꽃처럼 화사하게 웃고 싶다.
수채화는 물 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제멋대로 마구 흘러가고 아무 데나 가서
다른 것들을 오염시키는 심술쟁이다.
유화가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여아라면 수채화는 갯벌에서 뛰노는 섬 머슴 (섬에 사는 머슴)이다.
집에 가지고 와서 너무 흘러간 도랑물은 유화로 약간 채워주었다.
붓질에 떨림이 몰려온다.
유화보단 못하지만 세 개의 작품 아닌 작품을 내보이려니 민망하다.
부족함을 광고하는 거 같아서 쑥스럽다.
세상에는 너무너무 훌륭한 화가들도 수없이 많지만 이렇게 어수룩한 그림쟁이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다음에는 내 유화 작품만 골라서 달력을 만들어 보고 싶단 생각을 했다.
하나의 기회는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주고 그 경험은 또 다른 부가가치를 불러온다.
그것을 언제든지 활용하고 실전에 옮기는 실천력도 중요하다는 걸 재삼 깨닫는다.
한 해의 끝자락을 달려가고 있는 시점이다.
연초의 계획이 다소 부족했지만 그나마 글 이란 보석을 건지고 다듬는 세공사로 살아왔다.
날마다 새로움을 덧칠하는 날들로 살아냈다.
꺾이지 않는 숲길에는 어딘가 목적지가 숨어있다.
당장 빛나지 않을 뿐 그 속에는 날마다 미세한 움직임이 목적지를 향하고 있다.
그 길은 꺾이지 않으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있다.
수선화가 땅속에서 새 봄을 품어내고 있듯이 그렇게.
이번 수채화로 달력을 만들어 본 용기가 새해에도 줄곧 이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