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잇값
요즘은 환갑잔치를 거의 하지 않는다.
예전에 내 어린 시절에는 환갑잔치가 동네잔치였다.
못 먹고 굶주린 시대에 환갑은 동네사람들을 구휼하는 자선이요, 자축이었다.
널찍한 대청마루에 병풍을 치고 높다랗게 괴어 올린 각종 떡과 과일, 과자들은
어린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오! 배부른 날.
어쩌면 저렇게 정교하게 과자탑, 떡탑, 과일탑, 은행탑을 쌓을 수 있는 건지.
색의 조화를 맞춰 질서 정연하게 쌓여 올라간 환갑상은 예술의 경지를 넘나들었다.
저 많은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긴 했지만 어른들의 환갑잔치는
아이들을 경이로운 세상으로 몰아넣었다.
그렇게나 떠들썩하던 환갑잔치가 이제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자식들이 얼마씩 추렴해서 해외여행을 보내주거나 친지끼리 모여서 한 끼의 식사로
대체되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우선 환갑을 맞은 사람이 젊다는 거다.
아직 살날이 구만리는 아니어도 여유가 있으니 굳이 잔치까지 할 필요성이 없다.
나이에 따라 환갑이나 고희를 정하다 보니 아래와 같이 햇수가 등장한다.
햇수를 세는 계산법에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가 있다.
갑(甲)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 (10간).
자(子) 축(丑)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유) 술(戌) 해(亥) (12지)
10간(干)과 12지(支)의 조합으로 해를 나눈다.
그 조합이 총 60개가 된다.
십간과 십이지의 맨 처음 조합인 갑자년이 다시 돌아오려면 만 60년이 지나야 한다.
만 60년은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간지(干支) 상의 한 주기가 된다.
여기에서 환갑(還甲)이란 말이 생겼다.
예전에는 천지가 한 바퀴 돌만큼 살아온 것이니 천수를 누렸다고 여겼다.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절에 환갑까지 살았으면 장수한 것이므로 마땅히
성대한 잔치로 축하연을 벌였다.
환갑의 다른 말로는 주갑(周甲) 환력(還曆) 회갑(回甲) 화갑(華甲) 등이 있다.
연령별로 부르는 나잇값도 따로 있다.
만 60세 환갑(還甲).
70세 고희(古稀).
77세 희수(喜壽).(여기까진 누구나 안다)
80세 모년(暮年).
88세 미수(米壽).
90세 모질(耄耋).
81세는 90세까지 살기를 바라는 나이라는 뜻에서 망구(望九)다.
흔히 "저 할망구가 노망이 났나 왜 저래." 하면서 힐난할 때가 있다.
여기서 유독 할망구만 있는 것은 할머니들의 수명이 길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들보다 할머니가 절대다수)
할머니를 조롱할 때 튀어나오는 할망구.
깊이 들어가면 할망구가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90세 모질((耄耋)의 한문을 해석하면 늙을 로(老) 밑에 터럭 모(毛)를 받침으로써
몸에 난 터럭까지도 모두 늙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정처 없이 흘러가는 세월은 우리네 몸과 마음을 하얗게 표백해 버린다.
하얀 세상 저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우리말 잡학사전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