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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성파파 Jun 26. 2023

280조를 투입한 저출산 정책이 실패할수밖에 없는 이유

젊은 세대의 욕망을 외면한 저출산 정책, 이대로 괜찮을까?

1+1=2는 본전이고, 1+1<2는 손해가 된다. 손해에는 각 1(비혼)과 1+1=0(딩크부부)이 포함된다. 인구정책 중 저출산 문제와 해법은 이 산식에서 비롯된다. 대표적 인구축소국인 우리나라는 1+1≥2가 될 때 비로소 국가소멸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관건은 ‘1+1의 욕망’과 ‘1+1≥2의 욕망’을 어떻게 되살리는가이다.  

   

2022년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0.78명이다. 가장 다양한 출산 장려정책을 펴고 있지만 합계출산율은 세계 최저다. 300조에 가까운 저출산 정책 예산은 어디로 갔을까? 유능한 전문가 집단과 국가조직의 엘리트들은 무엇을 하였을까?      


인구정책은 사회현상 중 가장 복합적인 해법이 필요한 정책이다. 저출산과 보육문제, 교육 정책, 근로환경정책, 주거환경정책, 취업과 실업문제, 정치·사회적 안정성, 사회적 연대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두 가지만 고려하고 나머지는 무시(외면)하는 근시안이 대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질 때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직면한다. 지금 2020년대의 대한민국이 그렇다.     


저출산 대책이 왜 실패하고 있을까? 돈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해서, 지원정책이 부실해서, 애를 안 낳아서(의지가 없어서)... 문제는 결혼과 저출산의 원인과 결과가 서로 꼬리를 물고 무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 들어 있어서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을지 모른다. “왜, 그럴까?”에 대한 고민. 대책이 문제가 아니고 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철학적이고 다차원적인 고민. 이는 공부에 대한 열정이 없는 아이에게 공부 방법론만 해법으로 잔뜩 말해주는 것과 같다.  

    

누군가는 인구축소를 지구환경을 위한 대세라 말하고, 경제 성장론자들의 부추김이라고 말하지만 다소 성급한 일반화라 생각된다. 인구축소가 복지향상이나 삶의 질로 이어진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할 수 있다. 적정 규모의 인구는 생산과 소비, 교육과 국방, 복지와 연금 등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복지 선진국인 유럽의 국가들이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펴는 이유가 무엇일까를 보면 답이 나온다. 인구축소가 당장 국가소멸로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이 현상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난 15년간 280조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수렁에 빠진 저출산 정책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첫째는 욕망의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았던 탓이다. 둘째는 정책 자체도 문제이고 만드는 사람도 문제인 까닭이다. 셋째는 양자가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다차원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정책 입안자들은 개인의 욕망에 관한 맥락을 어떻게 이해하고, 문제에 접근했을까? 궁금하지만,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다.   

   

먹고사는 게 더 어려웠던 시절의 높은 출산율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1970년대와 2020년대의 출산율은 무려 배 차이가 난다.(그런 까닭에 ‘산아제한 정책’이란 것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 차이를 사회정책이나 개인에게 원인을 돌리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겠다.      


개인의 욕망은 가치관으로 표현된다. 가치관은 시대에 따라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한다. 보수적 관점에서 국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총체적 가치관도 있다. 저출산 정책의 대부분이 실패한 이유는... 정책의 어젠다 설정 과정에서 고려해야할 개인들의 욕망과 가치관의 문제가 고려되지 못했음을 반증한다. 도입하기 쉬운 서구의 모델과 국가 부처 담당자의 권한 범위 내에서 편리한 정책 위주로 만들어졌다는 것임을 증명한다. 각 개인들의 피부에 와 닿지 못한 정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현재까지의 출산장려정책은 무엇이 문제였을까?     


현 정부를 포함해 최근 10여년 정도의 정부의 출산장려정책을 살펴보면 단편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시류편승적이다. 어느 한 두 개의 정책으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그 자체가 문제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출산과 인구정책은 교육과 더불어 큰 농사를 짓는 것과 같다. 그동안 우리 정책당국자들이 텃밭에 고추와 상추 모종 몇 개를 심는 마인드로 저출산 문제를 고민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효과 없는 엉터리 정책의 개수를 세고 예산 낭비를 생각하는 것은 전 국민의 정신건강에 지극히 해롭다.    

   

예를 들어 남녀 평등적 고려 때문에, 아이들 보육환경 때문에, 공교육의 부실 때문에, 부모들의 근로환경 때문에 한두 개씩 만들어진 누더기 같은 정책들이... 크게 보면 텃밭을 가꾸는 아마추어적 시각에서 기인했을 확률이 크다. 실무 경력이 부족한 전문가들의 어설픈 이론과 탁상행정의 결과물이 거대한 예산과 언론의 홍보를 거쳐 정책의 이름표를 달았을 가능성이 크다. 막상 가정과 부모들과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미미했다. 그 정책의 입안과 집행과정에서 상당한 경비(주로 간접경비)가 지출되고, 가장 중요한 부모와 아이들의 피부에는 와 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의 저출산 정책은 수요자의 현실을 고려하지 못한 전형적인 공급자의 시각에서 만들어진 전시행정의 표본이 아니었을까? 이는 단적으로 저출산 정책의 직접비용과 간접비용의 비율을 보면 알 수 있다. 최근 간접비용의 지출이 정책예산의 60%를 넘고 있다. 간접비용의 지출이 많을수록 정책 입안자들은 ‘자신들의 정책집행이 잘되고 있다’는 착시현상에 사로잡힐 수 있다. 문제는 이 비율의 문제가 사회구조적 맥락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한다면 지금 같은 ‘탈출구 없는 상황’을 계속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총체적 난국에 빠진 저 출산율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이는 세대를 관통하는 욕망의 문제와 정책입안과 집행과정에 따르는 중장기적 해법의 시각이 두루 갖추어졌을 때 풀릴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작금의 정책실패를 돌아보면, 욕망과 가치의 차원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과 우리 현실에 맞지 않는 단편적 정책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다차원적인 문제를 하나의 차원과 좌표 위에 놓고 해결하고자 하는 접근방식이다.      


본능에 가까운 개인의 욕망은 시대를 불문하고 비슷하다. 지금 부모들 세대나 한세대 이전의 부모 세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습된 사회적 욕망은 세대마다 다르다. 그 시절을 지배했던 사회트렌드나 이념적 요소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 욕망의 이면에 그것을 조정하는 의도가 있다면 더욱 그렇다. 최근 결혼문화와 내 집 마련의 성급함을 심어주는 카르텔의 선동은 전염성이 강한 사회적 욕망이다.      


젊은 세대의 건전한 가치(욕망)를 저해하는 사회적 압박이 문제다. 사회적 압박에는 만들어진 테마, 시대적 테마, 불가항력적 테마가 있다. 만들어진 테마에는 대표적으로 내 집 마련 문제가 있다. 시대적 테마는 대학진학과 취업이 있다. 불가항력적 테마에는 과도한 경쟁사회가 있다. 성숙된 사회일수록 사회적 압박에 대한 완충장치가 잘 만들어져 있다. 선진사회일수록 언론과 이익집단의 결탁을 견제하는 통제와 견제 메커니즘이 충분한 까닭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기성세대조차 어려워하는 이 세 가지 테마의 압박에서 누가 결혼하고 싶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어 할까?     


젊은 층에게 사회적 압박을 줄여주고 욕망을 되살려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때로는 젊은 층의 사회경제적 욕망과 가치관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선행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결혼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데, 출산 문제를 말하는 것이 문제되는 이유다. 결혼에 대한 긍정적인 의식 변화를 선도할 수 있는 정치·경제·사회적 합의점이 도출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당장 자신의 삶이 피곤한데, 가족이나 2세들의 삶에 대해서 어떻게 고려하고 배려하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저출산 해법을 설계할 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저출생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 분석과 개선보다는 미봉책 위주의 정책을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반성을 해야 한다. 교육뿐만 아니라 인구정책 또한 백년지대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사라져가는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뼈아프다.   

   

첫째는 젊은 세대의 욕망과 가치관을 계속 고려하고 묻고 반영해야 한다. 정책입안과 결정 과정에서 “왜, 어떻게”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하여야 한다. 지금처럼 기성세대의 어설픈 (비)전문가와 관료들로만 만들어진 대책위원회(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모든 것을 망치는 주범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새로운 세대의 가치관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자신들의 경험칙에 의존해서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입안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요자인 젊은 세대의 적극적인 의사개진과 참여를 위한 통로가 절실하다. 전문가, 이해당사자, 정당 등이 함께 참여하는 프랑스와 스웨덴의 각 위원회를 보라!    

 

둘째는 개인의 가치관과 그 변화를 수용하는 중장기적인 대응방법이 필요하다. 다함께 먹고 살만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사회안전망과 젊은 세대의 사회적 연대 강화를 전제로 한 전국가적 정책이 필요하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의 숙명인 정책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실수요자의 지지 없는 정책의 입안과 집행을 줄여나가야 한다. 대통령과 장관의 말 한마디에 정책 하나가 뚝딱 만들어지는 우화(偶話) 같은 스토리가 어디에 있는가!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아쉬운 점은 ① 보육의 공공성 문제, ② 육아에 대한 사회적 시선, ③ 교육의 사회경제적 비용이다. 출산과 양육은 전세대적 전국가적 문제이면서도 미시적 조직에서는 당장 일자리의 불편함이나 공감하지 못하는 싸늘한 시선을 받기 마련이다. 거미줄처럼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된 저출산과 육아 정책이 설 마당이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부분에 국가의 적극적 개입이 절실함에도 현실은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다.     


오컴의 면도날이 전가의 보도는 아니겠지만, 저출산 문제의 해법에도 적용된다. 문제와 원인을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왜 결혼하지 않는가, 왜 아이를 낳으려 하지 않는가....를 먼저 묻는 게 우선이다. 젊은 청춘들의 욕망과 가치관에서 그 해법을 찾아보시라!!


* 이 글은 한겨레신문(2023. 5. 10.자)에 실린 기고문 <젊은 세대의 압박은 줄이고 욕망은 되살려야>의 원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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