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아빠식 문해력 독서법>을 읽고
사실 결과적으로 마음의 짐을 크게 덜지는 못했다. 저자 두 분 모두 책을 읽고, 쓰고, 말하는 언어 사용의 전 과정에 많이 노출되는 직업을 가지고 있고(본인들이 언어 능력이 뛰어나 직접 교육할 능력이 됨), 회사원이 아닌지라 자기 스케줄을 좀 더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을 거 같았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환경이 대치동과 목동이라는 점(물론 본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 환경과 거리두기를 했다고 하지만), 좀 더 번뜩이는 유전자, 나에 비해 끈질겨 보이는 부모의 의지 등의 이유로 대략 50% 정도만 공감이 된 것 같다.
그래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책을 사서 읽었으니 배운 바를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1. 입시까지 이어지는 12년은 마라톤에 비유할 수 있다. 중간에 포기할 법도 한데 아이와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아이와의 소통 과정을 '트로이 목마 넣어두기'에 비유했는데 절묘하다. 워킹맘이 퇴근하여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4-5시간, 이 시간마저 학원들에 뺏긴다면 가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생각을 자주 한다. 물론 나는 아이들 눈높이에서 재밌게 잘 놀아주는 스타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소질이 없어도 아이와 서먹해지는 것은 너무나 무섭다. 학원 잘 다녀왔니, 숙제는 다 했니 정도로 대화가 끝날까 무섭다. 물론 능력 있는 부모들은 숱하게 학원에 보내면서도 쿨하고도 끈끈한 관계를 잘 유지하겠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다. 대학에 들어갔으니 이제 엄마랑 사이좋게 더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하면 씨도 안 먹힐 것이다.
2. 모든 배움의 과정을 인풋(Input)-상상력으로 소화하기-아웃풋(Output)으로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지금의 사교육은 인풋, 소화 과정을 모두 해준다. 그러니 아웃풋도 사교육의 질과 양만큼 승부를 봐야 한다. 사교육의 힘으로 인풋 하는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인지 과부하로 인한 뇌손상은 겉으로 알 길이 없으니 일단 많은 것을 빠른 속도로 섭렵하는 시스템에 혹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풋이 어마어마하니 소화가 안되고 탈이 난다. 소화가 안되고 그대로 튕겨내는 게 부지기수일 것이다.
뇌의 발달은 인풋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신경세포의 가지치기를 통해 밀집도가 상승하고 연결이 강해지는데 본인들 스스로 생각하고 지지고 볶는 과정에 의해 좌우된다. 인풋의 양에 비례하여 뇌가 발달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배움을 소화하며 뇌를 굴리는 과정은 어른이 통제할 수 없으며, 어른들이 통제해서도 안될 것이다. 현재의 사교육 시스템은 이를 통제하려고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인지 과부하 대신 멍 때리는 여유를 주고 싶다.
3. 독서를 능동적으로 해내기 위한 아빠들의 노력을 상세히 들여다보았다. 책의 본문을 통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의 인내심이다. 아이의 '순수한' 독서 동심을 어른들의 잣대로 재단하고 싶은 유혹은 수시로 찾아온다. 아이가 스스로 책을 들어 읽고 있다 해도 안심이 안된다. 권하고 싶은 독서목록, 독서록 작성, 독서 시간 등 여러 가지를 들어 훈수를 두게 되는데 이러다 보면 독서가 짐이 된다. 진정한 독서는 고등학교 이후에 시작되어 성인 이후로도 이어져야 하는데 미리 질리게 된다. 초등학교까지는 어느 집이건 독서 환경에 신경 쓰는데 그 인내심이 중학교 이후로 발휘되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길게, 꾸준히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의견을 대등하게 존중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4. 다양한 독서 교육의 실례를 정리해볼 수 있었다. 아이를 능동적인 스토리텔러에 앉히는 대화식 독서, 아이의 관심사를 나무 위키나 인터넷 기사로 연결시켜 읽을 수 있게 도와주는 방법, 한자 교육, 어휘력 퀴즈, 사고력 독서, 대하소설 읽기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저자들은 사고력을 '머리 근육'으로 표현했는데, 이해할 수 있는 수준보다 약간 더 어려운 내용을 꾸준히 접하는 데서 생긴다고 하였다. 겉으로 드러난 줄거리나 뻔한 주제를 캐치하는 게 아니라 심연에 자리하는 다양한 질문을 끌어내는 과정이다. 이걸 부모가 챙기기 위해서는 부모도 아이의 두뇌를 자극할 만큼 공부를 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데, 뭐 이 정도는 감수해야겠다. 그런데 종국에 내린 결론은 저자들의 자녀들이 아버지의 뜻에 비교적 잘 따라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어릴 적부터 정서적인 애착 관계를 밑밥으로 잘 깔아놓는 것이 중요한데 과연 쉬울지.
사교육에 덜 의존하자는 주관의 배경은 여럿이다. 여러 교육 서적을 읽다 자리 잡은 철학이기도 하고, 사는 지역에 사교육 시장이 발달하지 않아 타의 반 자립해야 하는 까닭도 있었다. 또한 아이 스스로 학원에 질려하는 타입이었다. 자기가 핸들링할 수 있는 범위 이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이상으로 주입되면 과부하에 민감한 아이다. 자기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옆에 친구들이 경쟁적으로 앞서가며 분위기를 주도해버리는 것이 싫단다. 경쟁심이 많아 경쟁자가 있으면 동기 유발이 될 것 같기도 하다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으니 러닝메이트 정도 심어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겠다 싶었다. 첫째는 영어 유치원에 보내서 영어를 수월하게 하고 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 영향으로 활기, 창의력, 주도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 둘째 아이는 일반 유치원으로 전향하였다.
물론 아직 아이들이 초등부 이하라 향후 가치관과 교육관이 바뀔 수 있겠다. 내 교육관의 심연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일부 지역의 탑클래스 학원강사들의 머리와 말발, 수완에 의해 좌우되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생각은 변명일 수도 있다. 아이들의 교육 경쟁이 부모들의 수완 경쟁이고 이에 앞서 나갈 자신이 없다는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얼마나 인내심 있고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 미지수이지만 아이들과 계속 소통하며 조정하고 부모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