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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나를 위하여

그렇게 나는 스스로 기업이 되었다 by 최윤섭


# 잠시 은퇴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는 1인 기업이 될 생각이 없는 사람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하지만 저자가 책에 낱낱이 밝힌 일에 대한 철학과 태도가 배울 점이 많아 정독했다. 생각의 시작은 동일하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나 또한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남편의 해외 연수가 대외적인 핑계였지만, 이전 직장에서 겪던 고질적인 문제의식으로 임상 커리어의 정점에서 잠시 은퇴한 상황이다. 일을 하기 좋아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시 구직할 예정이지만, 이전과 똑같은 삶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24개월의 '생각 월간'(*빌 게이츠가 '생각 주간'의 가치를 주창하였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민하고 독서하고 글을 쓴다.


# 조직에 대한 성찰

최근 수년간 일했던 조직은 그전에 일했던 대학병원보다 규모가 작았다. 대학병원은 '수련'에 초점을 맞추기에 조직 구조에 순응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네임 벨류 자체로 소속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을 주었다. 내가 속한 조직의 능력이 내 능력인 것처럼 살았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태어난 대학병원에서 독립한 이후로 줄곧 한 규모 있는 신경과 클리닉에서 일했다. 이제야 내 적나라한 진짜 실력을 알 수 있었고, 프로가 되기에 부족했던 면면들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조직구조의 병폐도 알아갔다. 의사라고 해서 각자 전문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역시나 엎드려야 할 상사가 있었다. 상사의 기분에 맞춰 숨죽이며 다녀야 하는 날도 많았고, 열심히 일해도 상사가 재단했고, 내 노동 시간과 전문성의 가치는 보험 수가가 결정했다. 컨퍼런스의 주제를 상사가 결정하여 억지로 준비하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할 열정이 수시로 깎였다. 상사가 주문한 목표치에 맞추었다고 칭찬을 받은 날조차 그 칭찬에 어떤 가치를 둘 수 없어 갈등하는 마음에, 집으로 돌아와 가족에게 짜증을 냈다.


# 다시 출발선, 지속 가능한 나를 위한 준비

다시 출발선에 섰다. 내가 잘하는 일이 뭔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지속적으로 내 전문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나 자신에 만족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충분한 기간이 주어졌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아 초조하기도, 그냥 답 없음에 담담하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렇게 나와 가족에게 집중한 시간이 없었다. 내 시간을 가족도 아닌 타인,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오롯이 썼다. 또한 병원이라는 정해진 근무 환경에서 벗어나 보질 않았다. 지금의 시간은 낯설면서도 꼭 필요한 시간이다.

아무도 나를 제어하는 것이 없는 지금, 생업에서 벗어나 충분히 쉬고 자유를 만끽하라고 다들 권하는 지금이지만 무엇보다 자기 통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사계절을 만끽하는 시간, 가족들에게 맛있는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다. 그러면서도 생각하고, 독서하고, 글을 쓰고, 공부하고, 학회 강의를 듣는 시간을 따로 빼놓고 지속 가능한 나를 위하여 준비시키고 있다. 걔 중엔 내가 좋아서 놀듯이 하는 것도 있고, 전문성을 위하여 반드시 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있다.


#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저자는 작고하신 구본형 선생님의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의 가치를 강조했다. 병원에 소속되어 주어지는 진료 부하를 견디는 것만 생각해서는 오래 일하기 힘들고 매너리즘이 잦다. 스스로를 1인 기업처럼 경영해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던가. 전문성을 제대로 업데이트 하였는가. 자신만의 스페셜리티를 갖추라고 (이미 자신의 브랜드를 확고히 갖추어 여유 있던) 상사의 다그침도 있었다. 조직에서 나오기 어렵다면, 그 속에서 1인 기업인의 철학으로 살아보는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보수적인 병원조차 피고용인 의사에게 안전망이 되어주는 시대는 한참 전에 끝났다. 그럴 때마다 전문성에 힘을 주곤 했지만 전문의 제너럴리스트의 장점과 줄다리기를 했다. 프로에겐 전문성이 독보적으로 중요하다. 엄청난 진료 부하에 감사하게도 진료실무적인 전문성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학문적인 전문성은 내가 열외의 시간과 노력을 더해야 했다.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 나만의 여정을 인정하다

일 욕심이 많으면서도, 좋아하는 커피와 책을 즐기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인센티브를 좋아하면서도, 환자들에게 근거 있는 검사와 치료를 권하며 우아하게 돈을 벌고 싶었다. 배울 것이 많은 학회 강의에 기웃거렸지만 너무 어려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들은 싫어서 외면했다. 주변 동기들이나 선후배가 잘 나가는 세상에 화가 나면서도, 기회가 있을 때 더 잘했어야 하는 내 처지에 화를 내곤 했다. 애매한 능력에서 우왕좌왕하며 모순 투성인 마음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 모순은 내 인생을 다른 사람이 그린 지도 위에서 그리는 오류에서 생긴 것이었다. 나만의 여정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우선이었다.


# 답답한 마음에 환기를 시켜줍니다

저자는 '디지털 헬스케어'에 조금이라도 발을 담그거나 공부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는 전문가이다. 저자가 저술한 다른 책 <디지털 헬스케어>를 읽으면서 책의 두께와 방대한 지식에 놀라며, 이런 워커홀릭은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조직에 속하여 주어진 역할과 월급에만 안주하던 사람들에게 환기가 되는 성실한 책이다. 1인 기업인으로서 독립하기 전과 후에 겪었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방법론을 알려준다. 개인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법, 강의 준비하는 방법과 전문성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는데, 같은 직업이 아님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다시 시작점에 서서 현실에 치여 미뤄두고 외면해왔던 숙제들을 한꺼번에 하는 중이다. 다시 계약 시점이 되어 내가 나를 고용하고 싶다는 확신이 드는지, 그럴 가치와 전문성이 있는지 돌아보고 있다. 그럴듯한 명함이 없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가. 전문가로서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C) 2021. 익명의 브레인 닥터
매거진의 이전글 증언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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