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에 있을 최종 면접을 준비하러 카페에 왔다가, 생각했던 면접 준비는커녕
왠지 모를 메스꺼움만 한가득 안은 채, 켜 두었던 노트북 화면을 다 꺼버린 후 밖으로 나왔다.
집에 가서 밥이나 먹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분명 집에 들어가면 밥 먹고 나서 침대에 누워
새벽까지 유튜브나 트위치를 보면서 내가 생각해도 한심한 시간을 보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지나가던 옆 길에 위치한 규동 집에 들어가서 저녁을 먹었다.(소화는 잘 안되지만 배는 고프니까)
아까 카페에서, 계획했던 면접 준비는 거의 하지 않고 올여름 여행에 갔을 때 썼던 일기들을 다시 읽어봤다.
그때 감정들이 되살아나면서 한결 기분이 나아짐과 동시에 지금 난 뭐하러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얼마 전, 삼성전자 면접을 정말 크게 망치고 나서 세메스 GSAT를 보러 갔던 적이 있다.
비가 오던 일요일, 시험을 마치고 나서 혼자 햄버거를 사 먹고 나와 우산을 들고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았던 기억.
매 걸음걸음마다 빗물에 흠뻑 젖은 신발과 양말 사이로 뿌직뿌직 물소리가 났었다.
호수를 한 바퀴 돌고 나서 바로 앞에 있던 스타벅스에 들어갔었다.
내가 좋아하는 비 오는 날씨, 통 유리로 되어 있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서 요즘 읽던 책을 꺼내 들고 푹신한 쇼파에 앉으니
갑자기 너무 행복했었지.
가끔 그런 순간이 종종 있다. 지금 정말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
그런데 그땐, 가고 싶어 하던 회사 면접을 망쳐 놓고서 뭐가 행복하단 건지, 생각하면서
이 감정을 보면 취업을 하고 말고는 내 행복이랑은 별로 상관이 없나 보다, 하는 생각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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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동을 다 먹고 나서 집에 갈까, 다시 카페에 가서 오랜만에 글이나 쓸까, 잠깐 고민했다.
빠듯한 생활비에 카페에서 쓰는 5, 6천 원도 아쉽지만
집에 가서 그냥 시간을 까먹느니 차라리 이런 쓸 데 없는 글이나 쓰면서 보내는 시간이 분명히 나에게 좋겠다는 생각에 다시 카페에 왔다.
대신 머리 아픈 면접 준비는 제쳐두고 한동안 미루고미루고 미뤄서 대체 언제까지 미룰까 생각하던 글이나 쓰기로 맘먹었다.
대체 면접 준비는 언제 할지 모르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글 쓸만한 주제가 없어서, 책을 한 권 씩 읽을 때마다 밑줄 친 문장들을 다시 읽어보면서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들을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 이 글은 대체 뭔 얘기를 쓰는지 나도 모르겠고 읽는 사람도 모를 그냥 뻘글이라는 얘기다.
카페 구석에 앉아서 배터리가 절반 남은 노트북을 다시 키고, 절반 읽은 책을 꺼내 귀퉁이를 접어놓은 장을 다시 펼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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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해봤지. 뿐만 아니라 그 외에 많은 것을 일정한 나이가 되어서야 경험하기 시작했어. 더 이상 뭔가를 제대로 익히기 쉽지 않은 나이에 말이야.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야.”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님 해본 적이 없어서일까. 예전에 처음에 관한 글을 썼던 적이 있다. 어쩌다 글을 다 지워버려서 지금은 어렴풋이 기억만 남는 내용이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사는 게 처음이고 시도하는 것도 처음이라 필연적으로 인생에서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썼었나,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가 처음 살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실패에 필요 이상으로 우울해한다.’고 했었나.
여행에서 썼던 일기 중에 이런 문장이 적혀있다.
‘자기가 그 자리에 영원히 속해있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한 순간이란 걸 깨닫는다면 웃으며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쓴 주제에 자기도 그렇게 마음먹지 못하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지금 내 모습이 조금 한심하긴 하다.
“내가 받는 인상들이라는 게 모두 이미 익히 알려져 있는 인상들의 반복일 뿐이라는 거야. 그 말은 내가 아직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보지 못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조건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음을 의미해. 그러니까 우리가 가난하게 삶을 살았기 때문에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만 경험하게 되었다는 말이지. 우리가 보아온 사물들이 많지 않아서 그만큼 거기에 대해 말할 것도 적은 셈이지. 그래서 우리는 거의 매일같이 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것이고. 따라서 누군가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그는 적어도 그럴 만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일 거야.”
주변에 취업한 친구들을 보면 말은 못 하지만 대략 짐작할 정도로 많은 고민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취업이 끝이 아니란 것도 잘 알고 있다. 취업을 한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와 고민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아야지, 지금 내가 취준생이긴 하지만 지금 보내는 시간이 나에게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
어쩌면 취업을 빨리 해서 보냈을 시간보다 이렇게 보내는 시간이 내 인생에 더 값진 시간일 수도 있잖아.
하고 생각하면서 잘 지내왔잖아. 그런데 왜 요즘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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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별로 안 좋아하는 말이다.
특히 자기 마음에 대해서 모르겠다는 말은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
핸드폰 메모장 상단에는 며칠 전 문득 떠올라 적어둔 ‘거울이 아니라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는 것처럼’ 이란 문장이 떠 있다.
사람들이 거울은 보지 않고 거울 속 자기 모습만 바라보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기 마음 상태에만 관심이 있고 왜 그런 마음을 갖게 됐는지 관심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나.
좋은 음악을 하려면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노래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싶은 노래를 해야 된다고 이적님이 그러셨는데
글도 똑같은 거 같다. 누굴 가르치고 훈계하고 듣기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것보다 그냥 내가 하는 생각, 쓰고 싶은 상황을 쓰는 게 좋은 글을 쓰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쓸 주제도 없이 유야무야 글 쓰는 건 여기까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