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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수강은방학때 Aug 27. 2020

테넷(Tenet, 2020)

크리스토퍼 놀란

이 글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테넷 예고편




영화의 이해를 돕는 수준까지의 사소한 내용은 하단


전까지입니다.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가 보다 보면 그럭저럭 이해가 돼서 끝에 가서는 결국 재미를 느끼는 그런 영화였다면, 이 영화는 분명, 많게는 2명 중 1명, 적게는 3명 중 1명이 이해를 못해 영화 끝에서도 어리둥절해 할 그런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 이해를 돕기 위해 알아두면 좋을 개념이 3가지가 있는데, 이런 정보 없이 영화보기를 원하시는 분은 여기서 창을 끄는 것을 추천한다.

    첫 번째 개념은 엔트로피다. 열역학 법칙에서 나오는 개념인데, 자세한 내용을 알 필요는 없지만 자연 상태에서 에너지는 항상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질은 안정한 상태에서 불안정한 상태로 나아가는 경향성을 뜻하는 단어다. 예를 들면, 폭발이 일어날 때 주변 사물이 그을리거나 불에 타는 이유는 폭발로 발생한 높은 에너지가 주변에 낮은 에너지로 전해지면서 생기는 것이다.

    두 번째 개념은 할아버지의 역설이다. 시간 여행에 대해 들어봤으면 한 번쯤 접했을 이야기다. '만약 내가 과거로 돌아가 조상을 죽인다면 나는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갈등 역시 여기서 시작되는데, 과거를 바꾸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세력 간의 다툼이 큰 흐름이다.

    가장 중요한 세 번째 개념은 인버전(Inversion)이다.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영화 속에 언급되는 이 개념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봐야 한다. 인버전이란, 쉽게 말해서 반대로 되는 것을 뜻한다. 영화 속에서는 엘리베이터 같은 특정한 장치를 통해 인버전 상태로 변하는데, 이 상태에서는 모든 물리 법칙이 거꾸로 작용한다. 중력도 반대로 작용하고 시간도 거꾸로 흐르고, 모든 물리 법칙이 반대로 작용하기 때문에 인버전 된 상태의 총알에 맞아 생긴 상처도 일반적인 경우와 다른 경향을 나타내 치료가 어렵게 된다. 물론 인버전을 두 번 하게 되면 다시 Normal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중요한 점은 인버전 장치를 통해서 특정한 과거 시점으로 순간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장치를 통과하는 그 순간부터 시간이 거꾸로 흐르게 되는 것이다.


Inversion을 하는 시점에서 일어나는 변화


이후부터는 영화 내용에 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영화를 보고 나서 뒤늦게 깨달은 몇몇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 처음 극장 총격전에서 주인공을 구해주는 인버전 요원이 등장하는데 이 요원은 닐(로버트 패틴슨)이다. 의자에 박혀있던 인버전 된 총알을 이용해 주인공을 구해주는 장면.


- 극장에서 임무를 마치고 납치가 된 주인공은 철로 사이에서 깨어나게 되는데, 테넷 요원은 이 일들이 모두 테스트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모호한 점은 알약을 먹은 그 행위가 테스트라는 것인지, 아니면 차량에 탑승해 의식을 잃은 후에 철로에 끌려와 이가 다 뽑히는 상황 전부가 테스트라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 인버전에 대해 설명을 듣기 위해 과학자를 찾아가는 주인공. 여기서 주인공은 인버전 된 총알을 보면서 자유의지에 대해 묻는다. 이 대사는 놀란이 시간과 자유의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하는데,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난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에 대한 놀란의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총알이 손으로 돌아올지 안 올지는 사람의 행동에 달려있다는 것.


- 닐과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닐은 주인공을 위해 다이어트 콜라를 주문하는데, 이는 닐이 주인공에 대해 사전 조사한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서로가 알고 지낸 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 캣(엘리자베스 데비키)은 사토르(케네스 브래너)에게 고야의 위작을 소개시켜줘 약점을 잡혔다. 이 점이 약점으로 잡히는 이유는, 첫째로 위작을 진품으로 소개시켜줬다는 점에서 분노를 샀고, 두 번째로는 미술품 감정사로 일하는 캣 입장에서 위작을 판별하지 못했다는 점이 밝혀진다면 커리어에 큰 오점이 남는다는 점이다.


- 캣이 사토르에게 인버전 총상을 입게 되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 인버전 상태로 나아가는데, 왜 인버전 된 총상이 치명적인지에 대해서는 간단하게 이해가 가능하다. 인버전 된 물질은 물리 법칙이 거꾸로 나아가는데, 그렇다면 인버전 된 총알로 인해 생긴 상처 역시 역방향 흐름에서 생겨난 상처이기 때문에 Normal 상태에서는 치료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캣을 인버전 된 상태로 데려가 치료를 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인버전 상태에서 생긴 상처를 인버전 상태로 가서 치료한다면 그 상처는 Normal한 상태이기 때문에.


- 그렇다면 어째서 다시 돌아올 때 오슬로 공항의 인버전 장치를 이용했을까? 그 이유는 일주일 전 상황에서 가장 이용하기 쉬운 장치가 바로 오픈포트에 위치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공항 경비가 그리 빡빡하지 않은 상태이기도 했고, 사토르의 장치를 이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이 장면에서 사용된 비행기는 CG가 아니라 실제 비행기다.


- 주인공과 닐이 플루토늄-241을 탈취하기 위해 처음 타고 출발하는 차에서 조수석 쪽 사이드 미러가 이미 깨져있다. 이것은 곧 인버전 된 상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복선이다.


- 주인공은 사토르에게서 플루토늄-241을 되찾기 위해서 인버전 상태로 다시 차량에 탑승해 사토르를 쫒는데, 사실 주인공이 탄 회색 차량에는 처음부터 뒷좌석에 플루토늄-241이 있었다. 정방향에서 주인공이 사토르에게 케이스를 던져주면서 알고리즘은 앞에 있던 차량에 던져둔 것. 이것 때문에 인버전 상태인 주인공은 사토르에게 쫓겨 차량과 함께 폭발하게 된다.


- 마지막 전투씬에서 레드팀은 정방향, 블루팀은 인버전 상태로 작전에 투입된다. 레드팀의 임무는 알고리즘의 회수, 블루팀의 임무는 레드팀의 엄호와 사전 정보를 레드팀에게 넘겨주는 것. 블루팀의 작전 종료는 레드팀의 작전 시작 시점과 동일하다.



블루팀은 인버전 상태, 레드팀은 노멀 상태


- 블루팀인 닐은 부비트랩이 설치되는 것을 미리 보고서는 주변에 있던 인버전 장치를 통해 정방향으로 돌아온다. 정방향으로 돌아온 닐은 차를 타고 경적을 울리면서 주인공에게 위험을 알리지만 실패한다. 그리고는 시간에 맞춰 차량에 연결되어 있는 밧줄을 주인공이 내려간 구멍으로 내려보내 주인공이 타고 올라오길 운에 맡긴다. 종료 시간에 맞춰 액셀을 밟은 닐의 차량에는 주인공이 매달려 올라오고 임무는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는데, 이때 아이브스는 알고리즘을 알게 된 주인공을 죽이지 않고 알고리즘을 3등분 해 나눠 갖는다. 아이브스가 주인공과 닐을 죽이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이 테넷의 설립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인버전 장치를 찾아가는 닐


-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닐은 주인공에게 아래에서 있었던 일을 묻고서는 자신이 들고 있던 알고리즘을 주인공에게 건네주고 돌아서는데, 이 순간에 닐은 주인공 대신 죽기를 결심한다. 지하에서 사토르의 부하와 대면해 위험했던 순간을 알아챈 닐은 다시 인버전 상태로 돌아간 후 작전 지역으로 돌아와 주인공에게 향하는 총알을 대신 맞아준 것이다. 이 대목은 주인공과 닐이 나누는 대화에서도 추론할 수 있는데, 닐의 가방고리를 보고서 닐의 희생을 알아챈 주인공은 닐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어쩌면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일어날 일은 결국엔 일어나"

"그런 걸 운명이라고 하나?"

"현실"



- 처음부터 닐의 정체를 궁금해했던 주인공은 마지막 장면에서도 닐에게 누구와 함께 일하냐고 다시 묻는다. 닐은 그 물음에 아직도 모르겠느냐고, 바로 너라고 대답한다. 즉, 닐은 주인공이 미래에 테넷을 설립하고 선발한 요원들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 닐은 "이것이 나에게는 우리의 마지막이지만, 당신에게는 우리 인연의 시작점이야."라는 말을 건네는 것이다.




    같이 영화를 본 친구와 영화 설정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에 떠올렸던 몇 가지 부족했던 영화 속 설정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중력이 반대로 작용한다면 인버전 된 모든 물체와 사람들은 무중력 상태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이 맞다. 정확하게 말하면 무중력이 아니라 척력과 비슷한 반중력이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는 영화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고 넘어가자.

    그다음 설정은, 할아버지의 역설이 사실인지 아닌지 왜 미래에서 확인을 하지 않았느냐 하는 물음이 남는다. 테넷의 존재 이유는 과거의 엔트로피 흐름을 정방향으로 지켜 과거를 지키고 결국엔 미래까지 지켜낸다는 설정인데, 그렇다면 영화 상에서 할아버지의 역설은 역설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점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

    그리고 사소한 부분이지만, 마지막 전투 씬에서 폭발이 거꾸로 일어나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군인들의 걸음걸이나 뛰는 자세를 보면 비디오를 되감은 티가 굉장히 많이 난다. 아무리 놀란 감독이라지만, 되감기 장면에서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출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또한, 영화 속 설정 상 인버전 장치를 타는 그 순간 이후부터는 Normal 세계에서 더 이상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A가 인버전을 타는 순간 그 이후 미래에는 A가 없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A입장에서 이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제3자 입장에서는 큰 변화다. 인버전을 할 때마다 인버전을 하는 그 대상은 미래에 절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 대해서, 평행우주에 관한 개념을 다루는 장면을 더 넣어줬더라면, 인버전 이후에도 계속 흘러가는 지금 당장의 현실에 대해서 더 자세히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더라면 영화의 완성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영화 속에서도 타임 패러독스가 여전히 나타난다. 캣이 사토르를 죽인 이후에 등장하는 사토르는 어디서 나온 사토르인가? 캣이 사토르를 죽인 후 보트에서 뛰어내려 모습을 감추지만 그 시간 이후에 여전히 악역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사토르로 인해 이야기는 흘러간다. 분명 사토르가 죽었는데 사토르가 어디선가 튀어나와서 영화가 진행됐단 얘기다. 이렇듯이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스토리는 여러 모순들을 아주 얕게 묻어둔 채 외면해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을 소재로 한 영화에 대해서 완벽한 영화적 설정을 기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애초에 영화의 베이스가 타임 패러독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영화의 스토리가 허술하다거나 놀란 감독의 자질이 부족하다느니 하는 비평들은 동의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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