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환불하기
며칠 전에 사두었던 치즈를 먹으려고 포장을 벗겼는데 치즈겉에 퍼런색 곰팡이가 군데군데 피었다.
이런 적이 없어서 이게 먹을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사실, 치즈에는 문외한에 가깝고 먹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기에 인터넷에 찾아보았지만 여전히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도려내고 먹기에는 좀 상태가 아니다 싶어서 나는 치즈를 들고 구입한 매장을 방문했다.
고객센터 여직원은 대뜸 영수증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다.(그녀가 보기엔 근거없는 당당함이었을 수도. ㅎㅎ)
한국에서는 영수증이 없어도 내가 여기서 산 정황만 충분히 입증이 되면 그리 까다롭지 않았었기에
여기서도 괜찮겠지 한 것이다. 하지만 직원은 영수증이 없으면 환불해 줄 수 없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럼 이 치즈를 내가 먹어도 되는 거냐? 하고 물으니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가 다음엔 모르겠단다.
결국 입씨름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서 나는 치즈매장의 직원을 찾아갔다.
나는 순수하게 이게 먹을 수 있는 상태의 곰팡인지 아닌지가 궁금해서 물었는데 그녀는 그냥 새 치즈로 바로 바꿔주었다. 뭐지, 이 간단함은....
내가 판단해 보건대 이 곰팡이가 도려내고 먹으면 큰 탈은 없지만 팔기엔 부적합한 상태였기에 아마도 바로 바꿔준 것이 아닌가 싶은 추측을 해보았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직원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바꿔주는 것도, 영수증이 없으면 안 된다고 단호박으로 대답을 한 직원도 뭔가 원칙이 없어 보이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게 또 사람 냄새나는 융통성 아니겠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감사히 새 치즈를 받아 들고 매장을 나왔다.
사실 외국생활이라는 게 매 순간 새로운 해프닝의 연속이다. 한국과 같은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매우 많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친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박 불친절한 사람도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경비원 중 한 명은 내가 아무리 인사를 해도 한 번도 대꾸를 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도 인사를 안 하면 된다. 매장에서도 영수증이 없이는 환불이 안된다고 하면 다른 직원에게 한번 더 물어보면 되고 환불이 안되면 어떤 대안이 있는지 찾아보면 된다. 그러다가 영 안 되겠다 싶으면 빠르게 포기를 하면 된다.
일단은 많은 곳에서 환불이나 교환이 영수증 소지를 기본으로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영수증을 잘 보관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지인이면 모르겠으나 외국인이다 보니 처리에 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영수증을 지참하는 것이 여러모로 간단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서 외국생활을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는 팁이라고 한다면 첫째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다방면으로 찾아볼 것, 둘째는 큰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내려놓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고 너무 애쓰고 속을 끓이다 보면 내 몸만 상한다. 그려려니 하는 자세, 이것이 외국에서 조금이나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포르투갈 마트의 직원들은 의외로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시골도 아니고 대도시에, 관광객이나 외국인 이민자가 많이 사는 도시의 마트에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 놀랍기도 했지만 여기도 마트 직원은 고급인력은 아닌 것이다. 싼 임금으로 쓰다 보니 영어까지 능통하게 하는 사람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구나 싶다. 또한, 나이가 지긋하신 중년의 여성분들은 동양인 여자에게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선입견을 만들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아마도 영어울렁증과 동양인에 대한 낯섦이 만든 반응이지 싶다. 그러니, 포르투갈 마트에서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직원을 만나더라도 너무 당황하지는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