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잉제이 Dec 21. 2019

그녀가 그 승객에게 심쿵한 이유

승무원, 승객에게 심쿵하다.

동료 A와  같은 비행을 게 되었다. 브리핑실에서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당시 사귀던 남자 친구와 헤어 죽을 것 같이 힘들다고 .


그날 그녀의 포지션은 R3 (비행기의 오른쪽 세 번째 문)고 이는  착륙 승객과 마주 보고 앉아는 자리. 나는 A가 혹시나 점싯(Jump seat: 승무원들이 앉는 접히는 의자)에 앉아서 울까 걱정이 되었다. <종종  멘탈 컨트롤에 실패해 의자에 앉아 우는 승무원들이 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그녀는 오히려 앞자리의 승객과 맑게 대화 중이었다. 평소 별명이 쿠크다스 멘탈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사실 꽤 선방 중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서비스를 준비하는데 A의 표정이 심히 밝다. 심지어 콧노래도 부르면서 일을 하고 있다. 별해서 죽겠다던 사람 맞나. 실연의 아픔을 감춘 채 저렇게 프로답게 일하다니. 그녀 멋있어 보였다.



박진감 넘치는 서비스를 마치고 크루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트레이를 들고 모여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기분을 물었다. 그녀는 괜찮다고 말하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 남자 승객 너무 괜찮은 것 같아.
응? 누구?
R3점싯이랑 바로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승객.
그래? 그럼 네 연락처를 은근슬쩍 줘봐.
야! 어떻게 승무원이 먼저 연락처를 줘!


A는 어떻게 승객에게, 그것도 여자가 남자에게 먼저 번호를 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나를 타박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녀가 그에게 엄청나게 반했음을. 호를  주고 싶어 안달이 났음을 말이다. 에 대한 너무나도 후한 평가 그것을 입증했다.


가정교육을 잘 받았는지 예의가 바른 것 같더라.
얼굴도 딱 어른들이 좋아할 상이야.
앉아있는 것 밖에 못 봤는데 키도 클듯해.
대화해보니까 순수한 거 같아.
직장은 모르겠지만 왠지 좋을 것 같고.


십분 정도 대화한 것뿐인데 어찌   만점에 백점을 주는 것일까. 전 남자 친구의 대체재가 시급했던 것 아니면 진짜 꿈에서만 리던 Mr. right을 만난 것인가. 아무튼 A는 그 승객 덕분에  이별의 아픔 따위는 잊고 붕 뜬 기분으로 일할 수 있었다. 그녀는 프로페셔널한 것이 아니 금사빠였던 것이다.



우리는 비행 내내 틈이 날 때마다  승객에게 번호를 주느냐 마느냐의 주제로 토론을 했다. 나는 A에게 너는  여성이니 당당하게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 멋진 여자라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A는 나의 응원에 어깨에 한껏 뽕이 들어갔다가 스스로 정적 축 쳐지길 반복했다.


여자 친구가 있다고 거절하면 어떡하냐. 개망신이다.
승무원이 번호를 주면 회사 이미지가 좀 그렇지 않냐.
번호를 줄 정도로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우리의 열띤 토론 그녀 그에 대한 짧았던 호감을 거둬들이며 끝이 났다.  남자 승객이 A에게 커피를 요구했는데 스타벅스에서 주문하듯이 구체적으로 했다나 어쨌다나. 르게 가진 호감은 그렇게 빠르게 날아가 버렸다.






 

B는 그날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비행을 경험했다. 응급의료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숨쉬기 힘들어하는 승객에게 산소통으로 산소를 공급했다. 그리고 옆에서 그녀를 안정시키고 보살폈다.

식사 서비스가 30분 이상 지연됐지만, 다행히 승객 중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는 부사무장이 메디컬 리포트를 쓰는 것을 돕고, 다른 승객들을 요구에 응대하느라 30초도 못 앉아있고 비행을 마쳤다.




평소보다 몇 배로 힘들었던 비행이 드디어 끝다. 문이 열리고 승객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때 얼굴도 낯선 승객 한 명이  동료 B의 양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오늘 한 사람의 생명을 살렸어.
진짜 잘 해냈고, 정말 멋졌어. 고마워.




그 후 도미노처럼 승객들의 진심 어린 칭찬이 쏟아졌다.

동료 B 눈물을 겨우 참으며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 렇게나 따뜻한 승객들이라니.






동료 A처럼 이성에 대한 호감으로 승객에게 심쿵하는 경우도 있고, B와 같 상황에서의 심쿵도 있다. 수많은 승객을 만나면서 어찌 힘든 일만 있으랴. 가끔은 이런 이유 , 저런 이유로 심쿵하게 하는 승객들이 있어서 다시 수 있는 동력을 얻곤 한다. 뿐만 아니라 그 기억은 선명히 남아 추억의 서랍장을 꺼내볼 때 생생한 감동을 준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이 비행기에서 쫓겨난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