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그러니까 90년대 중반은 삐삐라는 일방향 통신기기의 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삐삐를 한 개씩 가지고 있었고,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공중전화를 찾아 음성을 확인하거나, 남기는데 시간을 쏟았다.
8282,486,7942,1818같은 삐삐용 암호(?)를 섭렵해가면서 직접 사용하는데 재미를더했다. 가끔은 DJ 마냥 적절한 가요를 자신의 음성 대신 남기기도 했다.음악으로 음성을 대신하는 일은 얼마나 로맨틱한지.21세기의 테크놀로지 감성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내가 살았던 20세기에는 그러했다.
우리는 누군가를 호출하는데 공중전화를 찾아, 동전을 넣고, 때로는 번호를 외워 누르고 , 메시지까지 남기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삐삐는 여러모로 그리움과 친근함의 표시였다. 내가 널 이렇게 찾아. 이렇게 성가신일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너를 찾아이런 느낌이었다.
삼성의 위드미S 나도 이걸 썼다지
가끔 답신이 늦어지거나 연락이 소원해져도 핑곗거리들이 많았다.공중전화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동전이 없어서. 실수로 음성을 듣기도 전에 삭제해 버려서. 기계를 잃어버려서. 네 번호를 적어둔 수첩을 잃어버려서. 상대를 찾는 것이몇 단계를 거치는 노동이라는 것을 우리는 서로가 잘 알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자 짧았던 삐삐의 전성시대는 끝났고, 휴대폰이 그 인기를 꿰찼다. 당시 휴대폰은 사람들의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삐삐라는 녀석과는 차원이 달랐다. 앉은자리에서 간단한 텍스트를 전송하거나 전화를 한다니 그 얼마나 혁신적인 신 문물이던지.
휴대폰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지 십 년쯤 지났을 때였던 것 같다. 그간 녀석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다급기야 컴퓨터의 채팅 프로그램을기계 안으로 들여오는 데 성공했다. 전 세계 어디에 있던지 어플리케이션만 깔면 내 메시지가 상대에게 즉각 전송된다니.우리는 도대체 어떤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
휴대폰 안의 대표 채팅 프로그램인 카카오톡은 무섭도록 편리하면서 사정없이 잔인하다. 카카오톡의 친구 목록에는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리스트가 위에서 아래로 정렬돼 있다.이 작은 기계 안에 나의 인간관계가 보기좋게 정리되어 있는것을 의미한다.
메시지를 전송하면 1초도 되지 않아 지인에게 닿는다. 중간에 새는 법은 없다고 봐야한다. 번호를 잘못 눌러서, 메시지를 실수로 삭제해서와 같은 변명은 가당치도 않다.매번 상대의 번호를 누를 필요도, 메시지를 삭제해서 누가 나에게 연락했는지 몰랐다것도 말이 안되는 이야기이다.그럼에도 우리는 누군가의 안부를 묻지 않는다. 마치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서있는데도 서로의 눈길은 옆의 빈 공간을 애써 쳐다보는것과 같다.
예전의삐삐처럼 연락하고픈 사람의 전화번호를 굳이 기억하거나 찾아서 메시지를 전송해야 하는 번거로움조차 없다. 수천 개의 번호를 기계내에 저장할 수 있어, 상대의 번호를 까먹을 리도 없다.휴대폰을 잃어버리다 해도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알면 새 기계에서도 전처럼 똑같은 세팅으로 쓸 수 있다. 더 이상 옛날 삐삐의 변명이 통하지 않는다.
삐삐와 같은 수고로움도 필요 없는데 우리는 더 이상 서로를 찾지 않는다. 이쯤 되면이유는 명확해진다. 내가 너의 안부가 궁금하지 않아. 사는데 바쁜 건 맞는데, 메시지 하나 못 보낼 정도로 바쁘건 아니지만. 그냥 당신한테 관심이 없어서 그래 라고 말하고 있다.
일년 동안 서로 연락이 없던 지인에게 용기를 내어 메시지를 보냈는데 금방 답신이 오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봤을 것이다. 카톡의 허무함이라고 해야 할까. 경이롭게 쉽고 편리한 카톡을 두고도 애써 상대를 외면하는 쿨함이 우리를 더 외롭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