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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주댁셈 Aug 04. 2022

근진이

엊그제 마당 앞 근진이와 억울이의 대치 이후 어제부터 근진이가 안 보인다. 매일 아침밥과 저녁밥을 먹으러 등장하던 친구였는데 어제 하루 안 나타나니 점점 불안해졌다. 설마 억울이랑 싸우고 데미지가 컸나?ㅠㅠ


녹색창에 고양이 영역싸움이라고 쳐본다. 수컷들 간의 싸움은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만큼 치열하다는 글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다시 마당으로 나가 '근진아~ 밥 먹어~'라고 부르며 밥통을 흔들어봐도 조용하다. 저기 풀숲 어딘가에 근진이가 피 흘리며 있을 거 같아 너무 걱정됐다. 기다리다 못해 항상 등장하는 야외화장실 옥상을 한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그때 홀연히 나타난 근진이!! '근진아~~ㅠㅠ 너 죽은 줄 알았짜나!!!' 걱정과 반가움을 담아 인사를 했다. 외관을 보니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보였다. '너,, 설마 억울이를 이긴 거니? 너가 여기 짱이야?' 아무튼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어제 하루 마음 졸인 걸 보상받으려고 근진이가 밥 먹는 동안 나도 옆에 앉아 뒷모습을 계속 쳐다보았다. 나도 밥 먹으러 가야 하는데 혹시나 또다시 못 볼까 봐 걱정돼서 한참을 앉아있다가 일어났다.


저녁이 되고 퇴근이 좀 늦었다. 어둑어둑 해져서 마당을 한번 쓱 둘러보니 근진이가 저 멀리서 기다렸다는 듯이 '야옹'한다. '그래 근진아 밥 줄게!!' 밥통을 가득 채운다. 살랑거리며 근진이가 온다. 나는 또 퇴근을 하다 말고 근진이 밥 먹는 걸 지켜본다.


어디 진드기 없나 털을 고르고 아픈 다리는 괜찮은지 보고 다리 근육 마사지를 해본다. 이제 경계는 안 하고 몸에 딱 붙어서 바로 벌러덩 한다. 만지는 게 싫은 곳을 만지면 입으로 앙 무는 시늉을 한다. 귀여운 녀석.


나한테 모기가 윙윙거려도 근진이랑 같이 있고 싶어 그냥 눌러앉아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고양이 꼬순내라는 게 은은하게 난다. 밤이 되니 눈동자 가운데가 똥그래진다. 머리를 긁어주면 좋은지 아이컨텍도 가까운 데서 할 수 있다. 턱 아래까지 손이 가서 만져주는데 야생에서는 급소인 부분일 텐데 나를 뭘 믿고 발라당 하고 있나 참 신기하다. 물을 마실 때 찹찹거린다. 더워서 그런가 물을 잘 마신다. 물을 좀 더 리필해준다. 밥과 물을 먹을 때 꼬리를 살랑살랑거리는 게 귀여워서 손가락으로 살짝살짝 쓸어본다. 꼬리도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근진이와의 교감을 한참을 마친 후에야 이제 진짜 퇴근해야지 하고 일어났다. 출입문 쪽에는 냥냥이가 놀러 와서 남편이 대신 반겨준다. 냥냥이는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홀연히 사라진다. 안부 물으러 왔나 보다.


내일도 근진이가 꼭 와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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