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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Aug 31. 2022

우영우는 수학을 잘했을까?

수학적 사고란 뭘까?

우영우에게 강력한 모티브를 제공한 템플 그랜딘


인기 폭발 드라마 우영우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영화 <템플 그랜딘>   

영화와 동명의 실존인물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영우가 겹쳐 보일 것이다.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에 가까운 <나는 그림으로 생각한다>


드라마 우영우를 보면서 템플 그랜딘과 겹쳐 보였던 장면을 나열해보자. 템플 그랜딘이란 이름 대신 우영우를 넣어도 큰 무리가 없는 내용만 추려봤다.


템플 그랜딘은

- 4살 때 자폐 진단을 받았다.

- 타인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려한다.

- 사람보다 동물과 교감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난다. (템플은 소나 말, 우영우는 고래)

- 소리(청각), 빛(시각)과 같은 자극에 매우 예민하다.

- 정서가 불안정해졌을 때 몸에 일정한 압력이 가해지면 편안함을 느낀다.

- 특정한 시각 이미지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 외부정보를 시각화시켜 사진처럼 기억한다.

- 일단 시각화된 기억은 거의 지워지지 않는다.

- 시각화된 정보를 이어 붙여 형상화하는 능력이 뛰어난다.

- 책을 읽으면 부분, 부분을 사진처럼 찍어 저장하고 이어 붙여 바로 텍스트 변환이 가능하다.

- 따라서 구체적으로 시각화가 가능한 생물, 공작, 미술과 같은 과목에 뛰어났다.

우영우와 템플 그랜딘은 외부정보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뛰어난 반면, 사람의 일반적인 감정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의 감정을 사진으로 이미지화해서 학습한다.  


우영우는 회전문을, 템플 그랜딘은 자동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모든 상황을 시각화해 이해하는 특성이 있는 템플은 자동문을 볼 때마다 단두대를 떠올린다.


템플 그랜딘은

- 자폐 진단을 받고 폐쇄적인 의료시설에 맡기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엄마가 이를 계속 거절했다.

-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학교에서 적응하는 길을 택했다.   

- 특성을 이해한 엄마, 이모, 과학 선생님과 같은 존재들 덕에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전을 이어간다.

- 두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통해 극복하는 훈련을 한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문을 통과하는 상상을 한다. 과학선생님이 가르쳐 준 방법이다.)  

- 일상적인 규칙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 그래서 식사할 때도 늘 같은 음식만 먹는다.

우영우와 템플 그랜딘, 편견 없이 이해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갈 수 있었다


우영우는 수학을 잘했을까?  


TED 강연을 보면 나오듯 템플이 가진 뛰어난 시각화 능력은 뇌구조에서도 드러난다. 템플은 구체적으로 감각할 수 있는 영역에서는 엄청난 학습능력을 발휘하는 반면, 어떤 개념을 일반화/추상화하는 능력은 매우 떨어진다.

<템플 그랜딘 TED 강연, "세상은 왜 자폐를 필요로 하는가">
시각 담당 부위가 유난히 발달한 템플의 뇌(우측)


가령 ‘구두’라는 단어를 들으면 마치 구글 이미지를 검색하듯 지금까지 자기가 봤던 수많은 구두의 이미지를 동시에 기억해 내지만 일반적인 구두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사고하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구와 연결 상태가 동일한 입체도형에 대해 꼭짓점(v), 모서리(e), 면(f) 사이에 v-e+f=2라는 관계가 성립한다는 오일러 정리를 이해할 수 없다.  

시각화 가능한 도형에 대해서는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정사면체나 정육면체처럼 쉽게 시각화가 가능한 도형에 대해서는 금방 이해할 수 있지만 120개의 면을 가진 다면체처럼 쉽게 시각화하기 어려운 도형에 대해서는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템플은 당연히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한 번 본 책은 사진처럼 저장했다가 언제든 불러와 텍스트로 변환 가능한 템플 그랜딘은 수학도 잘했을 것 같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렇다면 우영우는 수학을 잘 했을까? 드라마 설정상 학부를 경제학과로 졸업했으니 수학을 꽤 잘 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우영우와 비슷한 특징을 보였던 템플은 좀 달랐다. 꼭 우영우와 템플이 모든 면에서 같은 특징을 공유해야 할 이유는 없다. 드라마 대사처럼 자폐인 역시 “모두 다른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 궁금하기는 하다. 템플과 많은 특징을 공유하는 우영우가 어떻게 수학을 잘했을까? 수학적 사고란 어떻게 구성되는 것일까?


템플과 우영우를 비교해보면 논리적 사고라는 것도 그렇게 단순하게 구성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우영우나 템플에게도 정서적 안정을 가능하게 해주는 여러 수단이 존재하고, 일정하게 분석 또한 가능하다는 것은 이성과 감성, 물질과 정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는 현대 과학의 문제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천재 서사를 넘어   


결국 한 인간을 편견 없이 대하자는 말은 단순히 타인에게 포용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하며, 과거에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생각해왔던 여러 영역이 서로 얽혀 있음을 이해하는 일과도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어떤 기능에 손상이 오면 삶에도 결핍이 온다고 생각하지만, 관점을 바꿔보면 그 결핍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능력이 발달하기도 해.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결핍을 보완하고 대체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게 되지.
<공부하는 이유 : 수학> 중에서

우영우와 템플 그랜딘의 서사에서 천재성을 자주 강조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나는 천재 서사에서 언제나 천재 그 너머의 서사를 본다. 단지 천재이기 때문에 다르게 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우영우와 템플 그랜딘이 천재가 아니어도 충분하다.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한 사람들이 있어 사회적 존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사실, 특별한 천재성을 갖지 않아도 누구나 존중받아야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한 노력에는 개인과 가족을 넘어서는 사회적 몫이 있다는 사실,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일이 단순히 감정적 배려 차원의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하며 글을 맺는다.

문을 열고 나아가는 장면을 상상하며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이는 템플 그랜딘의 모습은 우리 모두와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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