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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동나동 Dec 10. 2023

시작과 끝, 이어짐과 단절

[수학에세이] 함수의 연속성

연속인 함수는 반드시 사잇값을 지나간다.  


수학사에도 몇 번,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다. 데카르트가 좌표를 도입하면서 함수와 그래프 개념이 생겨나고, 정적인 도형을 움직이는 점의 자취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고전역학과 더불어 수학은 운동을 설명하는 강력한 도구로 발전했고 자연스레 미적분이란 엄청난 발견으로 이어진다. 함수, 그래프, 운동에 대한 이해가 극한 개념을 경유하여 미적분으로 발전하는 과정은 사후적으로 보면 매우 자연스럽다. 결국 순간의 운동방향과 속력이 누적되어 이동경로를 결정짓고 그 자취(발자국)가 바로 그래프니까. 


극한 개념의 발달과 함께 미적분학이 엄밀한 체계를 갖추면서 등장하는 초보적 개념 가운데 하나가 함수의 연속성(Continuity)이다. 깊이 설명하면 굉장히 어려운 이야기인데 직관적으로 얘기하면 그래프가 이어져 있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자. (이 에세이의 목적은 어려운 수학 개념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첫 번째 그래프는 이어져 있으니 연속이고 두 번째, 세 번째 그래프는 x=1에서 불연속


연속인 함수가 갖는 특징이 몇 가지 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는 두 가지 정리가 포함되는데 증명이 까다로워 생략하고 그냥 받아들인다. 그 가운데 사잇값 정리를 보면 다음과 같다. 

이게 뭔 소리냐? 쉽게 말하면 연속함수는 중간을 건너뛸 수 없다는 이야기다. 

빨간색 그래프는 절대 k를 지나지 않고 갈 수 없다. f(a)와 f(b) 사이에 있는 모든 값을 지나가야 한다!


가끔 삶이 단절되어 있다고 느낄 때  


연속함수와 그로부터 도출되는 사잇값 정리를 인생에 비유하자면 이렇다. 

연속함수는 인생의 시작과 끝을 생각했을 때, 그 모든 과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고, 사잇값 정리는 인생의 시작과 끝이 연결되어 있다면 중간과정을 건너뛴 결론은 나올 수 없다는 의미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가끔씩 인생을 수학용어에 빗대보는 건 순전히 전공과 직업 탓일 뿐 수학과 인생에 무슨 대단한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경우에 30대까지도 인생은 대체로 이어져 있지만 몇 번의 큰 단절이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태도를 바꾼 큰 사건이 몇 번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모든 과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현재 내 상황에 대해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어려운 일조차 과연 우연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천재지변이나 불치병처럼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이 들이치기도 하고, 느닷없는 행운이나 불행이 닥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극한 상황에서조차도 사람은 어떤 판단과 선택을 이어간다. 수많은 선택의 결과물로 현재의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이유는 운명 따위에 인생을 맡기고 싶지 않다, 인생을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가고 싶다는 무의식 때문 아닐까? 


과거를 역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고군분투했던 어제의 내가 있다. 현재의 나를 긍정하고 싶다는 마음은 유독 이게 최선이었을까라는 회의가 들 때 더 강해진다. 그런데 정말 죽음이 닥친다면? 종종 거기 생각이 미치면 묘사하기 어려운 심연을 만난듯 두려워진다. 죽음까지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그랬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도 모든 결과를 온전한 자신의 선택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예측할 수 없는데도?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궁극적인 단절 후에는 의지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니까. 무엇도 감각할 수 없는, 감각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감각할 수 없는 근본적인 무(無)의 세계. 


사이와 사이를 잇다, 잇지 못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삶은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어떤 흐름으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은 역설적으로 단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아픈 곳이 늘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언제 어디서 들이닥칠지 모르는 사회적 재난을 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보며, 모든 게 피할 수 없는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 때 삶은 부조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 덕분에 과거에서 오늘까지 이어지는 삶의 전반을 긍정할 수 있다. 여전히 삶의 그래프가 향하고자 하는 곳을 쳐다보며 그곳으로 가기 위한 수많은 다리를 놓는다. 잇고 또 잇고 또 잇고, 완전하게 이어질 때까지, 모든 사이와 사이를 지나 그곳으로 갈 때까지. 지금까지 삶은 항상 그랬다. 목표를 정하고, 목표에 이르는 길을 그리고, 길을 내기 위해 점을 찍고, 그 점을 이어 선을 만드는 일. 그런데 이제는 너무 고단하다. 


이제는 삶을 긍정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져야 할지 모르겠다. 언제나 목표로 설정한 그곳을 상상하되 그곳에 이르지 못하는 삶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곳에 이르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삶은 아니다. 인생이 연속이라면 어떻게든 길은 어디론가 이어져 있으리라. 그곳이 반드시 하나일 필요는 없다. 그곳 언저리에 이르러도 좋다. 어쩌면 사이사이 지나가는 길에 그곳이 이미 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사이와 사이에 만나는 풍경을 즐겨야 한다.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반드시 그곳으로만 이어져야 하는 건 아니다. 


정답이 하나뿐인 인생은 괴롭고, 힘들다. 그러니 인생의 그래프 위에 점 하나를 또 찍자. 그 점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든 맥락 없이 놓인 점이 아니라 이전과 다음을 이어주는 사잇길이라고 생각하면 매번 점을 찍는 일이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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