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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실연필 Jan 21. 2022

달팽이 선생님(10화. 특수반 시간표가 왜 이래?)

일반학교 특수학급 시간표의 딜레마

제10화. 특수반 시간표가 왜 이래?
2시 20분. 다행이다. 그래도 늦진 않았다.
조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치료 스케줄을 변경했는데 첫날부터 늦을까 봐 부리나케 달려온 것이다.

아이들 하교 후 첫 타임 수업이라 치료 시간표 변경하기도 어려웠다. 이 시간대로 변경 희망한다고 대기 걸어놓은 것만 1년째였다. 그래도 기다린 보람이 있었는지 자리가 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조이이 치료 세션이 시작되고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조이는 치료 시작, 나는 조이의 책가방 검사 시작.

3월은 엄마 몫이 반이라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날마다 오는 안내장은 왜 이리 많은지, 1학년 통합반에 제출해야 할 서류, 특수반에 제출해야 할 서류, 내야 할 것도 읽어볼 것도 너무 많다.

오늘이 금요일이구나. 금요일엔 주간 학습 예고안도 함께 온다. 물론 두 장이다. 한 장은 1학년 주간 학습, 또 한 장은 특수반 주간 학습.

근데 특수반 주간 학습 예고는 볼 때마다 조금 이상하다. 조이네반 국어, 수학 시간에 특수반에 가는 것은 알겠는데 그 시간에 조이만 가는 것이 아닌 가보다. 조이 이름 말고 4학년 형아, 6학년 누나의 이름도 함께 쓰여 있다.

월요일, 금요일 한 시간은 조이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특수반에 가는 것 같다. 1학년과 4, 5, 6학년 아이들은 학년 차도 너무 나는데 그 시간에 함께 있어도 될까?

조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있는 건 알았지만 시간표가 조금 이상한 것 같다.
도대체 특수반 시간표가 왜 이런 거지?

오늘 조이 엄마는 다음 주 특수반의 주간 학습 예고안을 보시면서 약간 의아한 생각이 드셨던 것 같습니다.


특수반에 조이 말고도 다른 아이들이 있는 건 이미 알고 계셨지만 이 아이들이 한 번에 특수반에 가서 공부하는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건 모르셨던 것 같아요.


개별화교육을 위해서라면 아이들이 한 번에 이렇게 많이 수업을 받는 게 어려울 수도 있는데 왜 이런 시간표 일지 궁금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그래서 오늘은 일반학교 특수학급의 시간표가 어떻게 작성되는지, 왜 아이들이 이렇게 한 번에 몰리는 시간이 생기는지 말씀드리려 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특수학급 시간표의 딜레마'입니다.


특수교사 일을 하면서 뭐가 제일 어려웠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단연코 이걸 말하고 싶습니다.

그건 바로 특수학급에서 시간표를 조정하는 일이라고 말이죠.

 

저는 현장에서 특수학급 근무를 12년 했는데 특수학급 시간표 운영에 대해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특수교사가 아니라면 잘 체감하지 못하는 부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학부모님들께서도 이 부분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더 많고요.


오늘은 특수학급에서 왜 시간표 조정이 어려운지,

또 현재 특수학급 운영 시스템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현직 특수교사의 시선으로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1. 특수학급이란 이름으로 묶인, 달라도 너무 다른 우리 아이들

본래 특수교육의 의미는 아이들의 장애 유형과 특성에 맞는 개별적 지원을 전제로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 특수학급은 이러한 장애 유형과 상관없이 일단 특수교육대상 학생으로 선정되기만 하면 일반학교에 설치된 특수학급으로 배치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 발달지체뿐 아니라 시각장애, 청각장애, 의사소통 장애, 학습 장애, 정서·행동 장애까지 모두 "특수교육대상 학생"이라는 단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여버린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 학생과 청각 장애 학생이 필요로 하는 교육적 지원과 교육 방법이 발달 장애 학생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음에도 "장애"라는 말로 그 특수성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맙니다.


또 자폐성 장애 학생에 대한 교육과 지원이 학습 장애 학생의 그것과는 아무리 상이하게 다르더라도 시스템 상으로는 한 특수학급에 구성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생기는 것입니다.


발달 장애 범주에서도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는 장애 특성이 너무나 다르지만, 이에 대한 교육적 처치나 환경의 제공은 이를 배려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시각장애 학생과 지적장애, 자폐성 학생들이 함께 배치된 특수학급에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요.


시각장애 학생에게는 시각보조기기 등을 지원하고 시각의 손상으로 놓친 학습 부분을 제공하면서도 바로 같은 시간 지적장애 학생에 한글을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시각장애 학생은 시각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청각에 더 많이 의존해야 집중할 수 있는데 반해, 지적 장애 학생은 한글을 소리를 내어 연습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두 아이 모두에게 힘든 시간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다 보니 발달 장애 학생들을 더 세심히 반복해서 지도하면 시각 장애 학생은 혼자서 고군분투를 하게 되고, 시각 장애 학생에게 집중하면 발달장애 학생은 어느새 학습에 집중을 놓쳐버리게 되는 수업 진행이 다반사였습니다.


어른들도 업무를 하면서 옆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거나 방해를 받으면 짜증이 나기 마련인데 장애의 특성도 다르고 필요한 지원도 상이한 이 아이들을 단지 "특수", "장애"라는 카테고리로 묶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에 대해 교사로서 느끼는 회의감이 많았습니다.


문제는 제가 경험한 학급이 특별하거나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 거의 모든 특수학급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동소이한 학급 구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한계들이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특수학급에 배치되었다."라는 말로 교육의 책무성을 모두 완수하였다고 할 수 있을지 저는 의문이 들곤 합니다.


그동안 특수교육의 양적인 발전은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특수학급 운영의 측면에서 질적인 면을 제고할 필요가 분명 하단 생각이 드는 까닭입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의문점이 생기실 수도 있을 텐데요. 특수학급에 소속된 아이들을 모두 다른 시간으로 수업을 짜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저에게 이렇게 물으신다면 저의 대답은 "저도 그러고 싶지만 어렵습니다."라고 말씀드릴 겁니다.


시간표를 그렇게 짜면 간단할 것 같은데 이게 왜 어려울까요?


2. 시간표 작성의 한계

가장 일반적인 경우로 예시를 들어보려 합니다. 만약 일반초등학교 특수학급에 6명의 아이들이 배치되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 6명의 아이들은 모두 통합학급이 있고 국어, 수학에만 특수학급에 옵니다.

1학년부터 6학년 학생들이 한 명씩 특수학급에 배치되었다고 가정했을 때의 시간표입니다.


자, 월요일을 살펴보면 2교시에 1, 3, 5학년이 국어 수업을 하러 특수학급에 옵니다. 아이들의 장애 유형과 정도는 고사하고 국어 수준에 대한 학년 교육과정이 모두 다르고 아이들의 현재 수준도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에 세 수준의 아이가 함께 공부하게 됩니다.


월요일 3교시는 더 심합니다. 2, 3, 6학년은 수학 수업을 4학년은 국어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지요. 가뜩이나 주의 집중이 어렵고 작은 자극에도 예민해지는 아이들이 이렇게 한 시간에 수업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위의 시간표 상 수업이 없는 공강 시간(화요일 4교시, 목요일 3교시)에 수업을 조정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실 수 있을 텐데요. 그것도 현행 교육과정 운영 상 어렵습니다.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에 따라 국어, 수학 시간만 특수학급에서 수업하기 때문에 이 외의 모든 과목은 통합학급에서 이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통합학급의 과학, 사회 과목 시간에 특수학급에 와서 국어, 수학을 공부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때문에 통합학급의 시간표가 조정되지 않는 한 특수학급 시간표를 임의대로 변경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시골 분교에서 복식학급을 운영하더라도 두 학년 이상을 묶는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특수교육대상 학생으로 배치된 아이들이 이렇게 시간표를 운영하면서 개별화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특수교육계에서도 이러한 현실적 한계를 타파하기 위해 교수적 수정이나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할 수 있는 수업을 고안하고 실행하기도 합니다.


예시로 학년 중심이 아닌 주제, 생활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 과정이 개별 아이들에게 정말 제일 적합하고 필요한 교육과정인가를 고민한다면 저는 확실하게 그렇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한글을 떼지 못한 아이의 국어 수업과 짧은 문장을 스스로 읽을 수 있는 아이의 국어 수업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같은 주제를 가지고 다른 수준으로 공부할 수는 있겠지만 그 깊이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학기 초마다 개별화교육지원팀 회의를 통해 각 학년 선생님들께 가급적 시간표 조정을 부탁드리곤 합니다. 적어도 저학년과 고학년 정도는 수준을 나누고 한글 미해득, 한글 해득 수준의 아이들은 시간표를 분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 학년의 시간표도 통합반 담임 선생님이 혼자 짜시는 게 아니라 소속된 학년 교육과정과 전담 시간표에 따라 운영되는 것이라 선생님께서는 맞춰주고 싶으셔도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을 때가 더 많습니다.


그렇다면 현실적으로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까요?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개선에 대한 노력을 해야 조금씩이라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 특수 교사 : 장애 특성 및 수준에 맞는 수업 지도 방법 개선하기, 시간표 작성 시 학생이 소속된 학년의 협조 구하기

2. 일반 교사 : 특수학급 시간표에 대해 이해하기, 수정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시간표 변경하기

3. 특수교육 운영 시스템 전환하기
이것은 교사들의 측면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변화일 텐데요. 궁극적으로는 특수학급 인원을 법제상으로 줄이고, 과밀 특수학급은 적극적으로 증설하여 학습 수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지금의 대단위 특수학교보다 작은 병설 단위의 특수학교를 보다 많이 설립하는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위에 제시한 노력들이 현실에서 적용되기 위해 특수교육법 개정이나 특수학교 시범 운영 등의 측면에서 시도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어서 현실화되어 특수학급의 수업이 개선되고 아이들에게 실제적인 개별화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새 학기를 준비하는 평범한 특수교사는 오늘도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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