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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un 04. 2023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히바(Khiva)에 닿다

-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8

 1. 성채 도시 히바를 거닐다.     


  모래사막을 강렬하게 내리쬐던 한여름 태양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누쿠스에서 세 시간 택시를 타고나서 히바(Khiva)에 도착했다. 우리 앞에 황톳빛 거대한 성채가 나타났다. 마치 실크로드를 지나던 목마른 대상들 앞에 나타난 오아시스처럼 한국이란 먼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 앞에 등장한 히바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5세기 무렵부터 번성했다는 히바는 내성인 ‘이찬 칼라’와 외성 ‘다산 칼라’라는 두 성벽이 감싸고 있는 성채였으며 황토벽돌로 만들어진 도시였다. 히바가 주는 강렬한 인상은 이전에는 접할 수 없었던 색과 형태를 지닌 도시였기 때문일 것이다. 8미터에서 10미터에 이르는 아득한 이찬 칼라의 성벽, 그 위에 얹힌 방어용 둥근 탑들은 세월의 풍파를 무시한 듯 아직 견고해 보였다.

  히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로 호레즘의 중심도시라고 할 수 있다. 기원전 5세기경부터 중앙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한 곳인 히바는 그 이후 비단길을 횡단하던 대상들이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던 오아시스였다. 히바가 위치한 지역은 원래는 사막이었는데 우물이 발견되어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우물을 발견한 사람들은 신에게 감사하고 그 우물을 ‘신성한 물’로 여겼다고 한다. 또한 ‘신성한 물’을 지칭하는 아랍어 ‘헤이박’에서 오늘날의 히바(Khiva)란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찬 칼라는 1991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찬 칼라의 성문은 넷이라고 들었다. 그림자의 방향을 볼 때 우리가 입장한 문은 서문인 것 같았다. 숙소가 성안이라서 입장료 없이 성안으로 들어가자 우리를 압도한 것은 푸른색의 칼타 미나레트였다. 우리의 숙소인 오리엔트 스타 호텔은 칼타 미나레트와 붙어 있는 건물이다. 윤 선생님은 이곳이 예전에는 신학교였다고 한다. 기록을 검색해 보니 그곳은 신학교로 활용되기 전에는 ‘쿠냐 아르크’란 궁전이었던 곳으로 추측된다. 궁전에서 다시 신학교로 그리고 오늘날은 호텔로 쓰는 것 같았다. 2층으로 된 숙소는 규모가 꽤 컸으며 수십여 개의 방이 있다. 아마 과거에 그 방들은 여성들만이 머무는 하렘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코로나19 덕분(?)에 관광객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외국인 관광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의 숙소는 평소에는 거의 예약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숙박비도 아주 비싸고… 코로나 19만 아니었다면 아마 히바 성채 곳곳은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건물에서 하룻밤은 영광이다. 1층의 우리 숙소는 육중한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카펫이 깔린 작은 공간에 침대 둘이 있다. 둘러보니 화장실에는 비누가 없고 견고한 벽돌로 세워진 벽들 때문인지 와이파이도 불가능하다. 그래도 괜찮다. 마치 영화 속에서만 만날 수 그런 공간을 할애받았다는 사실이 그런 사소함은 다 지워버리고 있었다.   

  해가 뉘엿해질 무렵, 이 교수와 산책을 나섰다. 우선 숙소의 정문 앞에 있는 칼타 미나레트를 사진 속에 담고, 황톳빛 골목들을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과 음료수를 파는 상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비누와 같은 생필품은 살 수 없다. 한여름인데도 부와 권위를 상징한다는 전통의 모피 털모자를 파는 상인들, 목도리와 수공예 조각 기념품을 진열해 놓은 상점들이 이곳이 유수의 관광지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 같다. 상점의 주인인 듯한 사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교수와 나는 모자와 모피 목도리를 선물로 구입했다. 가격은 20~30달러 선이어서 그리 부담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면으로 된 모자도 그 정도 가격 선회하니까 말이다.

  이찬 칼라에는 궁궐인 ‘쿠냐 아르크’ 외에도 5천 명이 기도를 드릴 수 있는 ‘주마 모스크’ ‘무함마드 영묘’ 그리고 신학교인 메드레세가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나선 시간이 늦어서인지 주마 모스크나 호자 미나레트는 입장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이찬 칼라에 소재하고 있는 고건축물의 대다수는 음식점, 가게, 카페 외에도 주거지로 활용되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비운 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사용하고 있다. 텅 빈 을씨년스러운 공간이 아니라 북적거리고 생동감이 있는 건축과 골목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 히바(Khiva)에서 황홀한 아침을   

  

  해뜨기 전 산책을 나섰다. 코로나19 탓인지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고성 안에는 사람들이 없다. 

  칼타 미나레트 탑이 서 있는 건물, 정문에 들어서면 사각형으로 되어 있는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산책 후 새벽 한 시에 잠이 들었다. 그런데도 다섯 시에 눈이 떴다. 아침 일찍 혼자서  산책을 나섰다. 해가 떠오르면서 햇빛이 건물들을 비추고 있다. 미나레트는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엊저녁 떠들썩하던 골목은 텅 빈 채 아침을 맞고 있다. 한참을 걸었지만 인적이 그친 아침, 돌들이 깔린 길을 청소하는 여성들 외에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침 산책은 황홀했다. 한산하게 비어 있는 고성을 아침 햇살이 가볍게 비출 때 연출되는 광경은 아름답다. 혼자서 보기에는 미안한 정경이어서 해 뜨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래된 것이 보여주는 아름다움, 직선의 구도가 풍기는 간결하면서도 강직한 이미지는 신선했다. 이찬 칼라의 곳곳을 다니면서 만나는 형태와 색채와 정취는 매우 이국적이다. 어쩌면 낯설다는 것은 새롭다는 것이고 따라서 낯선 아름다움은 경이로움을 동반한다. 황토벽돌 한 장 한 장으로 세워진 벽, 건물, 도시는 낯설고 신비로웠다. 

  골목을 따라 한참 걷고 있다가 일행인 이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도 홀로 일출 광경을 보러 나왔다고 한다. 호자 미나레트, 무함마드 영묘 등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호자 미나레트 위의 하늘에는 갸름한 얼굴의 반달이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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