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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un 04. 2023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사마르칸트(Samarkand)에서

-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10

   1.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에    

  

  부하라에서 사마르칸트로 왔다. 택시로 뜨겁게 달구어진 대지를 가로질러 닿은 역사적인 도시다.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의 3대 유적 도시들이다.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히바나 부하라는 사마르칸트만큼 잘 알려 있지 않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기 전에도 사마르칸트에 대해서는 조금은 알고 있었다. 고대와 중세에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교역로로 번성했던 도시이고,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기에 역사적, 문화적으로 자주 언급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마르칸트는 오랫동안 흥망성쇠를 거듭한 지역이다. BC 329년 알렉산더에 의한 정복 이후 투르크인 아랍인들의 지배를 받다가 1220년 칭기즈칸에 의해 초토화되었으나 1365년 이후 티무르 제국의 수도로서 중앙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대두된다. 그러나 다시 부하라 칸국에 의해 점령당하고, 17세기 무렵 침체기를 거쳐 한 때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였다가 사마르칸트 주의 주도로 자리 잡게 된다. 

  우리 일행이 숙소로 정한 곳은 구르 에미르가 훤히 보이는 공원 옆의 호텔이다. 오후 여장을 풀고 나니 금세 저녁때가 되었다. 저녁도 먹을 겸 산책 삼아 시내로 나섰다. 사마르칸트는 역시 부하라보다는 곱절 이상 큰 도시다. 뜨겁던 햇볕도 열기가 가시자 그래도 그늘 쪽으로는 시원한 느낌도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플라반(plaban)이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이 식당은 작은 정원을 옆에 끼고 있었다. 비교적 깔끔하고 안락한 분위기였다. 메뉴를 보니 주로 스테이크이다. 나는 버섯 소스를 곁들인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가격은 1만 숨 대략 10달러에 못 미치는 가격이다. 현지에서는 비싼 음식이고 높은 가격이지만 이 분위기에 버금가는 한국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시켰다면 과연 얼마일까?

  간단한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의 작은 창문 너머로 구르 아미르의 지붕이 보인다. 메인 돔은 천막으로 둘러 있다. 공사 중이라는 의미다. 오는 길에 잠시 출입문만 사진으로 담았다. 내일 아침 제일 먼저 갈 곳이다. 옥상에 널어 둔 빨래들이 벌써 말랐다. 기온은 높지만 습도가 낮다는 것을 다시 실감한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의 충전을 마치고 곧장 잠이 든다.

  아침 일찍 잠이 깨어 호텔 옥상으로 올라갔다. 여명 속에서 구르 에미르의 지붕과 티무르의 스승이었다는 루하바드의 무덤의 둥근 지붕도 보인다. 오늘은 일정이 바쁘다. 오전 시간 동안만 유적지를 돌아보고 곧바로 타슈켄트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간단히 조식을 끝내고 이 교수와 함께 구르 에미르로 향한다. 무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이다. 푸른색이 주조를 이룬 입구부터 황금색으로 치장된 내부에 이르기까지 정교함과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건물 안에는 티무르의 흑녹색 관과 스승과 가족들의 관이 놓여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관에도 무늬가 부조되어 있다. 구르 에미르는 묘지가 아니라 금으로 치장된 사후의 궁전 같다. 

  서둘러서 우리는 루하바드 무덤 앞에서 사진만 찍고, 레기스탄으로 이동한다. 넓은 광장에는 간간이 관광객이 보일 뿐 한산한 편이다. 입장료를 내고 우리는 오른편으로 돌아서 쉐르도르 메드레세부터 둘러본다. 입구의 문에 새겨진 사슴과 사자,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태양을 마주 본다. 보라색이 주조를 이룬 타일로 꾸며진 문양들이 아름답다. 다시 정면에 위치한 틸라코리 메드레세로 간다. ‘틸라코리’란 말은 ‘황금을 입힌’이란 뜻이란다. 그래선지 그 내부의 벽과 창문 천장 모두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 메드레세는 17세기에 레기스탄 광장에서는 제일 늦게 지어진 건물이다. 청색 타일과 황금으로 치장된 꽃과 나뭇잎의 문양을 한참 바라보다가 몇 장의 사진을 찍는다. 

레기스탄 광장의 세 고건축물

  세 번째로 울루그벡 메드레세로 간다. 울루그벡은 티무르의 손자인 무함마드 타라카이의 어릴 적 이름이라고 한다. 그는 한때 사마르칸트를 다스렸던 군주이었으며 학문과 예술에도 조예가 있어서 메드레세 외에도 많은 건축물을 조성했다. 그리고 1420년에 이 메드레세를 세웠다고 알려져 있다. 각 메드레세의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가 심어진 넓은 공간이 나오고 그 안에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이는 여타 메드레세도 마찬가지다. 울루그벡 메드레세 안으로 접어들면 이층에는 50개의 공부방이 있으며 33미터 높이의 두 개의 미나레트가 서 있다.

  우리는 서둘러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중간에 비비하눔 모스크는 지나치고 샤흐이진다(Shah-i-Zinda)로 발길을 향했다. 샤흐이진다는 ‘살아있는 왕’이란 뜻으로 이곳은 사마르칸트에서 손꼽히는 이슬람 성지라고 한다. 이곳에는 종교 지도자, 순교자, 왕족의 영묘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묘 하나하나마다 다양하고 뛰어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천국으로 가는 계단’으로 불리는 언덕이 나온다. 그리고 언덕 양쪽에는 묘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연이어 있다.

   샤흐이진다에는 다른 유적지보다 사람들이 많다. 대다수의 경우는 참배객들로 보인다. 우리에게는 문화유산으로 여겨지지만, 그들에게 이곳은 신성한 공간이고 유적들일 것이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다가 푸른색 타일로 장식된 문으로 잠시 들어서다가 나는 돌아섰다. 그 안에는 현지인들이 진지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덕을 오르자 하늘색 돔이 보이고 멀리 레기스탄의 미나레트와 주위의 무덤군들도 눈에 들어온다.

  아프라시압 언덕은 샤흐이진다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없었기에 신 선생님을 포함한 우리 셋은 택시를 탔다. 아프라시압은 기원전 6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동북 사마르칸트의 중요한 지역이었음에도 몽골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한때 이곳은 소그드인들이 살았던 지역으로 1880년대에 와서야 유적과 유물들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언덕에는 오르지 못하고 그 앞 역사박물관에서 아프라시압의 유물들을 관람했다. 그리고 벽화 속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깃털을 머리에 꽂은 고구려 사신 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2. 우즈베키스탄을 떠나며     

우즈베키스탄을 떠나기 전 들른 식당에서

   화려한 문양이 새겨진 타일로 치장된 출입문과 탑, 구운 벽돌로 지어진 사원과 메드레세 및 여타 유적들은 서로들 비슷한 형태이기에 한 곳을 가면 다른 곳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질감이 주는 자극 즉 새로운 감동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수박 겉핥기식의 관람이었기에 하는 말일 수도 있다. 각기 건물과 유적에 대한 역사와 유래, 건축에 사용된 기법, 장식된 색채와 무늬의 상징성 등을 알고 나면 모든 건축물과 유물들이 새로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해의 단계까지 이르기 위해선 더 많은 탐색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를 떠나올 때 드는 아쉬움은 어쩌면 자책감으로 다가온다. “더 많이 공부하고 올 것을, 시간이 넉넉했다면, 조금 더 자세히 볼 것을”과 같은, 하지만 어쩌랴! 이번 여정의 한계인 것을…

  우즈베키스탄의 일정은 너무 바빴다. 오전 관광, 오후 이동으로 이어지다 보니 여유가 없다. 이는 동행 멤버 중 대다수가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PCR 검사를 받고 24일 출국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수와 나는 29일 알마티에서 출국하기 때문에 여유가 있는 편이지만 바쁜 일정을 같이 할 수밖에… 사마르칸트에서 오전 관광을 하고 다시 타슈켄트로 돌아간다. 

  만약에 나 혼자의 여행이었다면 사마르칸트에서 4~5일은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이 도시가 지닌 굴곡의 역사, 유물 하나 하나에 깃든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겉만 보고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마르칸트의 유적들의 던지는 메시지를 듣지 못하고 떠나는 것에 아쉽고 미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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