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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un 04. 2023

에필로그 –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치면서

- 서 시인의 중앙아시아 여행기. 12

  여행은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그러나 반드시 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지구에서의 또 다른 여행, 우리의 일상이 새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길에서 잠든 날까지 포함해 22박 23일의 중앙아시아에서의 여정, 자유여행의 고수들과의 동행이라서 내겐 힘든 일정이었다. 하루 이동, 하루 관광, 하루 휴식 및 글쓰기에 익숙한 내게는 오전 관광, 오후 이동의 방식이 버거울 수밖에 없었다. 3개국을 돌아보는 이번 여행은 이동 시간이 짧게는 4시간이고 길게는 6~8시간이었다. 물론 타슈켄트에서 알마티까지 국제버스는 15시간이 넘게 걸렸지만…

  자유여행의 패턴을, 한곳에 오래 머무는 힐링과 명소나 유적지를 탐방하는 관광으로 나눈다면 나의 방식은 이 둘의 중간쯤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의 멤버 중 나이가 많은 축에 드는 내게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택시 타기, 호텔이나 아파트가 아닌 게스트하우스에서 잠들기, 고산지대에서의 트레킹은 사실 고충이었다. 게다가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호하는 내게 끼니마다 양고기, 소고기를 주재료로 하는 기름진 식단은 위장을 탈 나게 했다.

키르기스스탄의 오쉬에서 사리모굴로 가는 고갯길에서


  나이 탓일까? 코로나가 기승을 부린 기간 동안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탓일까? 가끔 삐걱거리는 무릎, 간헐적인 배탈, 안구 건조증, 입술 부르틈, 피로 누적에 따른 집중력 저하  등은 불편을 초래하기도 했다. 그러나 큰 탈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음을 다행이라고 여긴다.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을 합치면 한국 총면적의 30여 배가 훨씬 넘는다. 그런 넓은 곳을 20여 일에 돌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수박 겉핥기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키르기스스탄 한 나라만을 제대로 보려면 아마 한 달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현실적인 조건과 일상의 틀이 우리의 욕심을 허락지 않으니 말이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상세한 여행안내서가 없어서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여행기, 역사와 문화에 대한 서적, 문명교류사 등 여러 권의 책을 읽었지만,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종족과 왕조, 종교, 지명, 사건과 개념들이 서술되어 있어서 쉽게 읽히지 않았다. 다행히 여행을 마치고 난 다음에야 중앙아시아란 지역과 문화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붉은 꽃의 클로버

  중앙아시아는 지리적, 역사적, 인종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나라이다. 다만 소련연방에 속해 있었기에 그동안 물적, 문화적 교류가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받는 중앙아시아의 나라들… 아마 이곳은, 베트남의 다낭이나 나짱처럼 몇 년 지나면 한국 여행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룰지 모른다. 이곳은 여행자들이 선호하는 조건들을 충분히 구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말하듯, 나의 짧은 소견이지만 그 첫째는 천혜의 자연과 오래된 문화유산이다. 천산산맥과 파미르고원 그 자체만으로도 뛰어난 풍경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수많은 산정 호수들, 평원은 최고의 자원일 것이다. 아울러 실크로드로 이어지는 수 천 년의 역사, 문화적 유적들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둘째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다. 저렴하면서도 풍부한 음식과 풍성한 과일은 여행자들을 즐겁게 할 것이다. 아울러 셋째는 한국이란 나라와 한국인들에게 호감과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다. 손님을 귀하게 대하는 유목민의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곳이라 하지만 한국이라는 나라와 한국의 문화, 한국인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남다른 데가 있다.    

레닌 피크로 가는 길에서 만난 천산 산맥

  여행하는 동안 러시아의 키릴문자만 간신히 익히며 돌아다닌 우리에게 항공권, 호텔 예약의 앱들은 당연히 필수였고 구글 지도, 번역기, 구글 렌즈 등도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소련연방이 해체되면서 각기 독립한 나라들이지만 이 세 나라 모두 러시아어가 필수적이다. 반면 영어에 대한 그들의 능력은 우리의 기대에 전혀 못 미친다. 중앙아시아를 자유 여행하고자 한다면 러시아어에 대한 소양을 어느 정도 갖추든가 아니면 여행에 유용한 앱들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거의 모두가 배낭을 메고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다녀본 고수들이다. 일행 중 서너 명은 중앙아시아만 서너 번 다닌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지면을 통해 리더 윤 선생님과  여행 동료들, 같은 방을 썼던 이 교수님, 키르기스스탄에서 열흘을 함께한 아이잣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한다. 그들과 함께하며 자유여행의 비결을 익힐 수 있었다. 다시 방학이 되면, 그리고 정년퇴직 이후에도 나는 중앙아시아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그때쯤에는 내가 메고 가는 짐도 지금보다는 훨씬 가벼울 것이다. 옷 몇 벌과 기본적인 세면도구와 비상약만을 지참한 채, 또 다른 낯선 땅을 걷고 있을 것이다. 

  돌아오면서 또다시 떠나기를 꿈꾸는 것은 여행중독자들의 증상일 것이다. 인천공항으로 날고 있는 여객기에서 눈을 감고 또다시 떠나는 꿈을 꾸고 있었으니까.      

    

사리모굴로 가는 해바 삼천 정도의 고갯길에 핀 유채꽃 


                     길 위에서 쓰는 편지. 3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산봉우리를 지나 모래와 돌들만 가득한 길을 간다. 잘 있었니? 한참 숨차게 걸어 낯선 곳에 닿았다. 머리 위에는 이글거리는 칠월의 햇빛, 고원지대의 목마른 바람을 맞으며 나는 홀로 서 있다.     

  길고 긴 저녁, 어둠은 오히려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나는 한송이 구름처럼 고개를 넘어왔다. 푸른 하늘로 치솟은 포플러와 목책 너머 흙집들이 보이고 바람은 먼지를 몰아가고 만년설의 눈물 같은 흰 강물이 흐른다. 인적 끊긴 폐가 옆에는 유채꽃이 아우성인데, 산정호수에 주름을 지으며 지나는 바람처럼 다시 떠나간다.


  살아있는 것들의 교만함과 시끄러움을 떠나 죽음과 순종, 인내의 고적함에 잠긴다. 간헐적으로 후둑이는 눈물 같은 빗방울을 받아마시고 기쁘게 피어난 키 작은 풀꽃들을 만난다.     


황량한 들판을 푸른 뱀처럼 기어가는 시냇물처럼 나는 낯선 곳을 지난다. 흔들리는 것은 냇가의 버드나무와 작은 관목 몇 그루, 좌선하듯 앉아있는 산들과 경사면에 서 있는 채로 깎이고 풍화되는 바위들 사이로 나는 오른다. 까마득한 날부터 퇴적되온 산과 들은 거대한 봉분이고 왕릉이다.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 또한 경이로움인 것을, 나는 아직 살아있는 채로 길을 떠난다. 안녕! 다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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