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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철원 Mar 28. 2021

첫 번째 복지 민원

논픽션 소설 / 슬기로운 공무원 생활

사회복지과로 출근한 첫 날. 차 주사보는 앞으로 자신이 맡아서 해야 할 일을 그날 아침에 알게 되었다. 임대주택 일이었다. 자신이 오기 전까지 이 일을 했던 전임자가 누구였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침 아홉 시가 넘어서자 전화벨이 울렸다. 난 아무것도 모르는데.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하지만 자신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는데 대신 전화를 받아 줄 사람은 없다.


"감사합니다. 사회복지과 차명훈입니다."

"임대주택 문의 좀 하려 합니다."

"네, 선생님. 말씀 주세요."

'무엇이든 물어 보세요'라는 어조로 말했지만, 역시나 그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임대주택과 관련한 민원인의 질문에 응대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제가 LH가 준 보증금으로 전세임대를 살고 있는데요, 감옥에 가 있는 동안 LH에 월세를 내지 않았다고 소송을 당했어요."


감옥. 소심한 차 주사보의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상대방의 목소리와 말투가 거칠지 않았음에도 그는 큰 부담을 느꼈다. 사회복지과에 출근한 첫 날, 첫 민원 전화가 출소자의 전화라니.

"네, 선생님."

태연하려 노력했지만, 가슴은 이미 콩닥거리고 있었고, 심장이 조여오는 느낌이 들었다.

"소송에서 지고, 지금까지 밀린 월세를 다 내고 나가라고 하는데, 방법이 없나요?"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게 이런 거겠지, 차 주사보는 생각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가 방법을 알 리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전 아무것도 모릅니다'라고 답할 수는 없는 일. 그는 자신의 상황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차분하게 민원인에게 설명했다.


"선생님. 제가 오늘부터 이 업무를 맡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아는 게 많지 않습니다. 선생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하게 알려 주시고 대략적인 인적사항을 알려 주시면…… 제가 규정도 살펴보고 전임자에게 물어 봐서, 선생님께 도움이 되는 게 뭐가 있는지 한번 확인해서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민원인은 말이 없었다. 그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수화기 너머로 전해져 왔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요?"

그의 목소리는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보다 얇아져 있었다. 실망에 짜증이 더해진 목소리. 모든 일을 다 꿰차고 있는 사람에게 안내를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하필 통화가 된 사람이 오늘 일을 시작한 풋내기라니. 민원인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차 주사보는 혼자서 그렇게 느꼈다.

"오늘이 월요일이니까 제가 수요일까지 알아보고, 목요일쯤에 전화 드리겠습니다."


차 주사보는 민원인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다. 민원인이 어떤 상태인지 알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관계 규정으로 어떤 법률이 있는지도 모르고, 상담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도 받아 본 적이 없는 그였다. 군사훈련을 받지 않고 최전선에 투입되는 소년병의 마음이 이런 것이겠지, 그는 생각했다.


민원인은 LH공사로부터 전세보증금을 지원받아서 민간인이 집주인인 집에 살고 있다.*1 매달 공사에 내야 하는 임차료가 있는데, 교도소에 가 있는 동안 그 금액을 내지 못해서 소송을 당했다고 한다. 복역 중에도 잠시 법원에 나와서 재판을 받았다고 했다. 결과는 패소. 복역을 마치고 출소해서 그 집에 살고 있지만, LH공사로부터 퇴거 공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긴급 복지 지원*2을 받고 있다고 했다.


임대주택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많지는 않겠지만, 짧게 설명해 보자. 자신이 소유한 집이 아니라 남이 소유한 집을 빌려 쓰는 것이다. 주거의 권리는 사람이 마땅히 누려야 할 보편적인 권리로 인식된다. 하지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 집은 재화이기도 하다. 게다가 한국에서 집은 무척이나 비싼 상품이다. 사는 데도 돈이 많이 들고, 빌리는 데도 돈이 많이 든다. 그리고 공공기관이 지어서 제공하는 임대주택의 공급 물량은 수요에 비해 항상 부족하다.


사회복지과에서 임대주택 일을 다룬다면, 그 대상자는 당연히 임대주택에 입주해서 그 집에서 안정적으로 기거하기를 원하는 저소득 계층이 된다. 앞으로 차 주사보가 들어야 할 민원은 대략 이러한 것이었다.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는데, 월세가 너무 많이 나갑니다. 많이 힘듭니다. 갈 곳이 없습니다. 방법이 없을까요.


임대주택을 짓는 공공기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같은 기관이다. 법과 규정에서는 이들을 '사업시행자'라고 부른다. 구청 사회복지과는 집을 짓지 않는다. 집 지을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공고를 내서 그 집에 들어올 입주자를 모집하고, 입주자와 임대차 계약을 맺고, 집주인으로서 집을 관리하고 월세를 받는 일은 모두 공사가 한다.


그러면 구청 사회복지과는 무슨 일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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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처럼 국가의 주택공사인 LH공사나 서울특별시의 주택공사인 SH공사가 저소득 계층에게 전세보증금을 지원해 주는 서비스를 '기존주택 전세임대'라고 표현한다. 근거규정은 <기존주택 전세임대주택 업무처리지침>이라는 국토교통부 훈령이다. 저소득 계층인 임차인에게 공사가 전세보증금 1억 천만 원(수도권 기준)을 지원해 준다 해도 일정 부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자부담액이 있고, 매달 공사에 내야 하는 임차료가 있다.

*2 생계 곤란, 위기상황에 처한 이들을 돕기 위한 복지 서비스. 근거규정은 <긴급복지지원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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