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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미술사학도 Feb 17. 2024

사극 고려거란전쟁의 현종이 황색 용포를 입은 까닭은?

음양오행과 색상

요즘 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32부작으로 편성된 이 드라마는 10세기 고려가 거란이라는 북방의 거대제국과 3차례나 맞서 싸우며 차츰 단단해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고려를 안정기로 접어들게 한 국왕 현종, 그리고 2차 여요 전쟁에서 활약한 장수 양규와 김숙흥 등이 재조명되었다. 


오늘은 드라마 상에서 고려국왕 현종(김동준 배우)이 입는 옷의 색상에 관하여 논해보겠다. 현종은 즉위식과 원구단에 제사를 지낼 때, 전쟁으로 파천을 갈 때를 제외하면 대부분 황색 용포를 입고 있었다. 조선시대 사극에 익숙한 시청자라면 황룡포를 입은 국왕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조선시대 임금은 대부분 붉은색 용포(홍룡포)를 입기 때문이다.   

좌측 : KBS 고려거란전쟁에서 현종이 입는 황룡포,   우측 : KBS 무인시대에서 희종이 입은 황룡포


고려거란전쟁뿐만 아니라 고려시대를 다룬 다른 사극에서도 국왕은 황색 용포를 입었다. 이는 고려가 외왕내제, 즉 대외적으로는 제후국이나 내부적으로는 황제국가를 지향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사실상 황제이므로 황제의 옷인 황룡포를 입는다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 황제들의 초상화를 보면 대부분 황색의 용포를 입은 모습이며, 조선의 고종도 대한제국의 황제가 된 이후 황룡포를 입은 사실이 확인된다. 고종이 제후국의 임금일 때는 홍룡포를 입다가 황제가 되니 황룡포를 입었다는 사실은, 황룡포가 홍룡포보다 위계상 높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고려사』에도 고려 국왕이 황포(黃袍) 내지는 자황포(柘黃袍)를 입었다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여 이를 뒷받침한다.


좌측 : 대한제국 초대황제 고종,    가운데 : 명(明)태조 홍무제(주원장),    우측 : 청(淸)성조 강희제





▶시조복(視朝服)은 국초(國初)에 제정(制定)되었는데, 자황포(柘黃袍)를 쓴다.

                                             -고려사 권72 志 권제 26-


문종(文宗) 12년(1058) 4월 예사(禮司)에서 아뢰기를...... "제왕(帝王)의 복식은 의례에 대비할 때는, 황색과 붉은색, 진홍색의 3색을 쓰며, 연향(宴饗)과 같은 소회(小會)에서는 편의대로 취한다고 하였는데, 지금 복식으로 하고 있는 것은 홍색과 황색 외에 나머지 색은 없습니다.”

                                             -고려사 권72 志 권제 26-


▶의종(毅宗) 대에 상정(詳定)하기를, “무릇 정월 초하루와 동지(冬至), 절일(節日)에 조정(朝廷)에 하례(賀禮)할 때, 대관전(大觀殿)에서 대연(大宴)을 열 때, 의봉문(儀鳳門)에서 사면령(赦免令)을 반포할 때..... 왕비와 왕태자를 책봉하고 임헌(臨軒)하여 책봉문을 발(發)할 때는 자황포(赭黃袍)를 입고, 연등소회(燃燈小會) 때는 치황의(梔黃衣)를 입는다.”라고 하였다.

                                            -고려사 권72 志 권제 26-


공민왕(恭愍王) 21년(1372) 정월 을축 국왕이 황포(黃袍)·원유관(遠遊冠)을 착용하고 태후전으로 가서 옥책(玉冊)과 인장[金寶]을 바쳤으며, 숭경왕태후(崇敬王太后)라는 존호를 올렸다.....

                                           -고려사 권65 志 권제 19-




다만 방송에 선보인 황룡포들은 조선 국왕들이 착용했던 홍룡포에서 바탕천만 황색으로 바꾼 것으로, 당시 고려 국왕들이 입었던 황포라는 복장이 실제 어떠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고, 이 글에서는 고려 국왕의 복식이 황색이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보자. 그렇다면 황제는 왜 황색의 복식을 갖춰입었을까? 이는 음양오행론에 기반한 것으로, 동아시아 문화에 두루 적용되었다. 그래서 음양오행론을 알면 전통문화를 해석하기 쉬워진다는 이점이 있다. 먼저 음양오행론을 살펴보자.




음양오행


1) 음양

음양오행은 음양과 오행을 합한 말이다. 먼저 음양(陰陽)은 사전적으로 그늘진 음지(陰)와 볕이 드는 양지(陽)를 말한다. 음을 달로보고 양을 태양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음과 양은 서로 대비되는 성격을 지닌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깔리면 만물이 잠들어 조용해지듯이, 음은 차갑고 서늘하며, 어둡고 습한 성질이 있다. 반대로 볕이 들면 만물이 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하듯, 양은 따뜻하고 포근하며, 밝고 건조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주의 모든 존재를 음과 양으로 구분하려 하였다. 예를 들면 사계절 중 음의 계절은 가을과 겨울이며, 양의 계절은 봄과 여름이다. 하루 중 음의 시간은 밤과 새벽이며 양의 시간은 아침과 낮이다. 동식물 중 식물은 음이며 동물은 양이다. 그 이유는 동물이 양지에서 주로 살며, 따뜻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식물은 동물보다 활동량은 떨어지나 추위에 잘 견딘다. 남녀를 음양으로 나눈다면 남자가 양, 여자가 음이 된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활동적이기 때문이다. 노인과 청년 중에서는 노인이 음, 청년이 양이다. 사람과 귀신 중에서는 귀신이 음이요, 사람이 양이다. 문관과 무관 중에서는 문관이 양, 무관이 음이다(무관은 생명을 해치는 일을 하므로). 하늘과 땅에서는 하늘이 양이되며 땅이 음이 된다.


이렇게 음양은 서로 대비되는 성격을 지니는데, 음은 대체로 정적이고 차갑고 어두운 성격을 띠나 땅과 여자가 음인데서 알 수 있듯 만물을 잉태하고 소생시키는 힘이 있다. 반면 양은 활동적이고 따뜻하고 밝은 성격을 띤다. 음양은 서로 대비되는 관념이므로 우열이 없으며, 상대적으로 정해진다. 예를 들어 같은 여자라도 성격에 따라 음양으로 구분할 수 있고, 부부도 예외적으로 소극적인 남편과 적극적인 아내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윗 문단의 설명은 그저 일반적인 통념에 따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리고 음양은 서로 대립하지만 한편으로는 조화를 이루며 만물에 깃들어있다. 예를들어 우리 몸은 부드러운 살과 단단한 뼈로 이루어져 있는데, 살을 음으로 보고 뼈를 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음양은 반대되는 성질을 지녔으나 서로를 필요로 하며 항상 가까이 있으려 한다.


옛 사상가들은 태초에(우주탄생이전) 아무것도 없이 공허한 상태에서 음과 양이 생겨났고, 이렇게 생성된 음과 양이 서로 순환하며 만물이 이룬다고 생각하였다. 이렇게 음과 양이 서로 순환하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문양이 태극이다. 

태극문양. 음양의 어우러짐을 의미한다.


2) 오행

음양의 작용으로 오행(五行)이 생겨나는데, 이는 우주만물을 구성하는 다섯가지 원리 내지는 성질(개념), 또는 물질을 의미한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가 있다. 


① 목(木)

먼저 목은 사전적으로 나무를 뜻하는데,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계절로는 봄, 방위로는 동쪽이다. 사신(四神) 중에는 청룡이며, 유가에서는 오상(五常, 다섯가지 덕목) 중에 인(仁)을 목에 배당한다. 숫자로는 3과 8이 해당하며, 색상은 푸른색이다.


② 화(火)

화는 사전적으로 불을 뜻하며, 번성을 의미한다. 따라서 계절로는 여름이며, 방위는 남쪽이다. 사신(四神) 중에는 주작(朱雀)이며, 오상(五常) 중에는 예(禮)이다. 숫자로는 2와 7이며, 색상은 붉은색이다.


③ 토(土)

토는 사전적으로 흙을 뜻하며, 조화를 의미한다. 따라서 계절로는 환절기에 해당하며, 방위는 중앙이다. 사신(四神)은 따로 없다. 오상(五常) 중에는 신(信)이 해당한다. 숫자로는 5와 10이며, 색상은 황색이다.


④ 금(金)

금은 사전적으로 금속을 뜻하며, 결실이 맺힘을 의미한다. 따라서 계절로는 가을에 해당하며, 방위는 서쪽이다. 사신(四神)은 백호(白虎)가 해당되며, 오상(五常)은 의(義)다. 숫자는 4와 9, 색상은 백색이다. 


⑤ 수(水)

수는 사전적으로 물을 뜻하며, 응축 또는 결속을 의미한다. 계절로는 겨울이며, 방위는 북쪽이다. 사신(四神)은 현무(玄武)가 해당되며, 오상(五常)은 지(智)다. 숫자는 1과 6, 색상은 검은색이다.



이렇듯 오행의 성격에 따라 여러가지 개념이나 물질을 분류하고 규정할 수 있다. 그중에서 오행마다 색상과 방위가 각기 배당되었음을 설명하였는데,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오행과 방위, 색채 개념도


오행의 방위와 색상이 중요한 이유는 황제가 입는 황색 용포가 오행의 원리를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황제는 이 세상의 중심이며, 만물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역할을 맡는다. 따라서 황제를 오행에 비유하면 土가 된다. 그런 이유로 황제가 황색의 용포를 입게 된 것이다. 고려도 외교관계야 어찌되었든 내부적으로는 황제국이라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국왕이 황색 용포를 입을 수 있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중국은 북방계 유목국가인 거란(遼)과 서하(西夏), 농경국가인 송(宋)이 대치하며 서로를 견제하는 형국이었다. 동아시아를 휘어잡을 이렇다 할 실력자가 없으니 고려로서는 주변국의 눈치를 덜 봐도 되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임금은 왜 붉은색 용포를 입게 되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의 세종 26년(1444) 3월 26일 기사에 의하면, 명나라에서 상복(常服, 일상에서 입는 옷)으로 익선관 1정과 옥대 1개, 포복 3습을 하사하였다. 이때 내린 포복 3습은 '저사대홍직금 곤룡암 골타운포(紵絲大紅織金袞龍暗骨朶雲袍)', '사대홍직금 곤룡암골타운포(紗大紅織金袞龍暗骨朶雲袍)', '나대홍직금 곤룡포(羅大紅織金袞龍袍)'로 홍직(紅織)이라는 글자로 보아 붉은색으로 짠 의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선조 27년(1594) 12월 25일 기사에는 선조가 세자의 복제에 대하여 물으니 예조에서 다음과 같이 답변한 기록이 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에는, 황제·황태자와 친군왕세자(親郡王世子)는 모두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는데 황제의 곤룡포는 황색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적색인 것으로 되어 있고....."


명나라의 법제에 따르면, 황제는 황색 곤룡포, 그 아래의 친왕이나 군왕, 왕세자 등은 적색(붉은색) 곤룡포를 입는다고 한다. 조선 국왕은 명나라의 친왕에 해당하는 지위였으므로 붉은색 곤룡포를 입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명나라에서는 왜 이들에게 붉은색 옷을 입게 했을까? 명확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추정할 수밖에 없으나, 이 역시 오행과 관련 있다는 생각이다. 붉은색은 오행에서 火이다. 그리고 火는 土와 상생의 관계이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오행끼리의 상생, 상극의 관계를 살펴보자. 구체적인 양상은 다음과 같다.


상생의 관계(서로 돕는 관계)

목생화(木生火) : 나무에 불이 붙는다.

화생토(火生土) : 불이 타고나면 재가 되고, 결국 이것이 흙으로 된다.

토생금(土生金) : 흙에서 금속이 생겨난다. (금속 광산은 땅 속에 있다)

금생수(金生水) : 금속에 이슬이 맺혀 물이 된다.

수생목(水生木) : 물이 나무를 자라게 한다.


상극의 관계(서로 해치는 관계)

목극토(木土) : 나무의 뿌리가 흙을 파고들며 괴롭힌다.

화극금(火尅金) : 뜨거운 불이 금속을 녹여버린다.

토극수(土尅水) : 흙으로 쌓은 둑이 물의 흐름을 막아버린다.

금극목(金尅木) : 쇠로 만든 도끼로 나무를 찍어서 베어낸다.

수극화(水尅火) : 물이 불을 꺼버린다.

좌측 그림 : 오행 상생의 원리(녹색 화살표로 표현),   우측 그림 : 오행 상극의 원리(검은 화살표로 표현)


불은 다 타고나면 재가 남는데, 이러한 재가 부스러지면 결국 흙이 된다. 따라서 불(火)은 흙(土)의 생성을 돕는다. 따라서 불과 흙은 상생의 관계에 있게 된다. 명나라는 土에 해당하는 황제와 황태자가 이러한 상생의 기운을 바탕으로 태평성대를 열고자 한 단계 낮은 지위의 친왕이나 군왕으로 하여금 火를 상징하는 붉은색 용포를 입게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훗날 대한제국의 고종과 순종이 황룡포를 입고 영친왕은 홍룡포를 입었던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의 미술과 문화유산을 이해하는데 있어 음양과 오행의 원리를 알면 큰 도움이 된다. 합리적 사고가 지배하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는 다소 미신적인 요소가 가득하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근대 미술은 당시 사람들의 사고 체계를 기반으로 제작되었기에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쉽지않은 일이지만 하나씩 알고나면 미술을 감상하는 일이 보다 수월해지고 즐거워지리라 믿는다.


좌측 : 순종황제가 입었던 황룡포(세종대학교 박물관),   우측 : 영친왕이 입었던 홍룡포(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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