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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둠 May 23. 2023

남아공 사람 vs 한국 사람

이 포스트를 쓰게 된 이유는 블로그 서로이웃인 분이 (닉네임 밝혀도 되나 모르겠어서 일단 익명으로 남깁니다!) 블로그에 댓글을 남겨주시고 남편과 이 부분에 대해 1시간동안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어떤 댓글이었냐면,

"남아공은 사상적/윤리적 기준이 한국보다 자유롭나'를 물어보는 댓글이었다.

이 댓글을 달아주신 이웃님...감사합니다...

왜 감사하냐면, 이 질문이 내가 왜 선진국 문턱에 있는 한국을 떠나서 전기도 매 번 끊기고 범죄율도 높은, 통계로만 봤을 때 도무지 왜 사는지 설명이 안되는 나라인 남아공에 사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였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 남아공 사람들이 이해가 절대로 되지 않다가 한 번 이해가 되게 되면 전기 끊기고 번죄율이 높다는 이 곳에 살아도 한국보다 만족하면서 살 수 있게 된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절대로 사상을 강요하는 목적이 아니고, 무엇이 틀리고 정답이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이ㅡ 개인적인 생각이 투영된 경험과 현지인의 자아성찰(?)에 기반한 글일 뿐.

그러니 잘잘못 따지는 것은 머릿속에서만 하자.


자 다음 상황에 대해 한 번 생각을 해보자.

사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입각해서 예시를 만들었다.

당신은 한국 늦여름에(약 6월 말) 한국 어딘가의 산에서 등산을 하고 있다.

한참 등산을 하고 있다가 얕은 계곡을 발견한다. 너무 덥고 목이 마르기도 하고 손도 좀 닦고 싶고 여러모로 흐르고 있는 물은 가뭄의 단비같은 존재인 것임.

근데 그 계곡 입구에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이 있다.

아지만 아무리 봐도 이험이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출구랑도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고, 물가까지 가는 길이 위험한 것도 아니고 야생동물도 없고 멀지 않는 곳에 민가가 있어서 환경오염을 걱정할 것도 아니다.


이 상황에서 당신은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무시하고 들어가서 손을 닦을 것인가?


사실 2020년 까지의 나, 그리고 대다수의 한국인은 아무리 물이 간절해도 안 들어 갈 것이다. 장담함. 님도 지금 그렇게 생각했죠?


이게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물론 들어가지 말라고 하면 들어가지 안흔게 어떻게 보면 맞다.


하지만...대다수의 남아공인들은 그냥 들어갈 것이다.

100% 장담함. 대략 99퍼센트의 남아공 사람들은 위험이 없고 민폐도 없는데 뭐가 문제냐, 팻말이 잘못 되거나 개소리일것 아니냐 라고 생각할 것. (사실 위험해도 그냥 들어갈 남아공 사람들도 많다.)


남아공 사람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판단한다.

물론 나쁘다면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어긴 것은 맞으니까.

하지만 남아공 사람들에게 한국인은 답답해 죽고,

반대로 한국 사람들에게 남아공인은 미친것 같다.


코로나가 한참 창궐할 때 남아공에 왔는데, 한국과 남아공은 전세계가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을거라 생각할 수 있는 코로나에도 분위기가 한참은 달랐다.

한국은 무조건 코로나에 걸리면 집에 쳐 박혀있는다. - 이것이 국룰이자...정말로 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도 대부분이 그냥 무작정 따랐고, 안 따르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했다.


하지만 남아공인 지인중에 하나는 코로나 확진이 되었을 때 캠핑을 하러 나갔다.

물론 납득할만한 이유는 있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기 때문에 혼자 확진이 되었으니 차를 타고 나가서 혼자 캠핑을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하면 그 모든 순간까지 사람들과 접촉할 일이 없기 때문에 민폐도 아니고 무엇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자신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아공은 주택이 대부분이고 차고에 주차를 해 놓기도 하고 땅덩어리가 넓어서 캠핑도 정말 접촉자 0명이 가능하긴 하다.)


법을 준수하고 정석대로 살아온 한국사람들에게는 기함할 일이다.

왜냐하면 코로나 초반에 너무 답답해서 아무도 안 가는 암벽등반 코스에 차를 타고 가서 빠르게 등반만 하고 왔는데, 이 사실과 사진을 sns에 올리자 미친듯이 나를 힐난하는 댓글이 달려씩 때문이다.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자차로 움직이고 암벽등반 코스는 등산 루트가 아니라 아무도 마주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 사실을 아무리 말을 해도 '뭐가 어쨌든 코로나 시국에 밖에 나간 내 잘못'이라는 질책이 들려왔다.


마스크를 쓰라는 정부의 지침에도, 백신을 맞으라는 보건부 장관의 말에도 남아공 사람들은 일단 스스로 판단을 한다.

남아공 사람인 내 곧남편은 마스크도 잘 쓰고 백신도 2차까지 다 맞았지만, 이것도 정부에서 하라고 했으니 해야지-에서 나온 결론이 아닌 스스로 백신에 대한 부작용과 과학적인 사실을 보도하는 공신력 있는 뉴스와 논문 등을 읽고 맞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맞았다고 한다.


물론 그냥 아묻따 안맞겠다는 사람도 속출했다. 실제로 백신을 접종한 인구가 남아공은 65%남짓이다. 한국의 99%에 가까운 숫자와는 상당히 상반이 된다.

확진된 사람도 당시 방역이 빡셌던 한국보다 남아공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무작정 한국이 맞다고 할 수 있을까?


왜 그럴까?

일단 남아공인 곧남편과 얘기를 해서 내린 결론 중에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재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다.


한국도 정치사가 워낙 복잡하기도 했고 독재도 존재했었고 부패도 항상 있어왔지만, 남아공도 한국 못지않게 복잡한 정치사를 갖고 있고 거기에 다민족, 다문화가 갖고 있는 복잡한 이해관계 그리고 아주 부패한 정권이 있다.

특히 정부가 부패하다 못해 국민들에게 신뢰를 잃은지 오래라 일단 정부가 지침을 내려도 남아공인 입장에서는 믿기가 힘들다.

특히 돈만 있으면 모든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고 경찰도 뇌물을 받으니 경찰 말을 정말 다 들어야 할지 의심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법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는, 다민족, 다문화, 다인종 국가라는 점이다.

남아공에 대해 대충이라도 안다면 남아공은 11개의 공용어가 있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사는 나라다.

그래서 인생과 윤리, 그리고 사상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ideal한 삶은 있겠지만(부자가 되서 잘 사는 건 어느 나라나 좋은 거겠지...) 한국처럼 대학에 가서 취업을 하고 그 다음엔 결혼을 하고 애를 낳아야 한다, 연봉은 이 정도를 벌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기준이라는 것은 없다는 얘기다.

미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워낙 인종이 다양하니 한 인종의 미에 기준을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국처럼 투명하고 밝은 피부에 마르고 얼굴이 작은~ 이렇게 구체적이지 않다.


세 번째는 사실 두 번째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법이 윤리의 절대적 기준이라는 생각이 한국보다는 없다.

물론 살인과 폭력, 강간 등 윤리적으로 반드시 지탄을 받아야 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것은 절대로 아님을 미리 밝힌다.

예를 들어, 남아공은 남성에 한 해 여러명의 부인을 두는 것은 법적으로 가능하다. 왜냐면 남아공의 몇 문화권에서는 아주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무슬림은 아니다. 무슬림 인구는 남아공에서 소수다)하지만 남아공의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것과 동시에 남아공은 동성결혼이 법적으로 가능한 나라이기도 하다. 이 또한 어떤 문화권에서는 또 잘못된 것이라 생각을 한다.

반대로, 누군가 불법을 저질러도 도덕적/윤리적으로 무조건 맹비난을 받는 일은 한국에 비해서 없는 편이다.(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마약에 대한 가치관도 한국과 굉장히 다른 편인 점도 상당히 신기하다.

한국은 대마초, 코카인, 펜타닐 등 마약이 무조건 불법이고 어떠한 마약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악마화 하고 사용하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만(연예인들 마약 사용 기사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남아공은 대마초는 의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사용이 전면 합법화 되어있고(하지만 한국인은 속인주의 법 때문에 사용하면 불법이다. 절대로 하지 말자.) 다른 마약은 불법이지만 여가용(recreational-purpose)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않게 존재한다. 아무리 쎈 마약을 해도 그 사람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는 않는다.(물론 아예 그렇다는 건 아님. 대다수가) 쎈 마약을 한 것은 그 사람의 선택이고, 그 선택을 한 과정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주변사람이라면 당연히 걱정하고 만류를 하려고 하겠지...어떻게 그냥 그 단편적인 사실로 다른 사람을 재단하고 감히 judge할 수 있냐-라는 것이 많이들 깔려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예를들어, 제작년에 잠시 가깝게 지냈던 남아공인 친구가 졸업논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당시 친구의 여자친구와도 트러블이 있어 일탈용으로 메스암페타민을 손을 댔었던 적이 있다. 평소에 그런 문제가 없던 친구여서 많이 놀랐는데, 다른 겹친구들도 마찬가지었다. 하지만 가깝던 멀던 모든 친구들은 그 친구를 걱정을 하고 끊어보라 도움을 줬을 뿐(3시간의 긴 대화 끝에 설득해 다른 친구가 수거를 해서 화장실 변기통에 내려버렸다고 한다), 누구도 '너 불법인거 하니까 나쁘다. 너 진짜 나쁘다' 이런식으로 비난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리하자면, 정부에 대한 불신과 다문화, 다인종 국가로 인한 획일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도덕적, 윤리적 기준이 빡센 편도 아니고 누구도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남을 함부로 평가하거나 재단할 확률은 최소 한국보다는 없다.

법과 지침 이전에 스스로 사고하는 편이고, 그로인해 한국보다는 여러 모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모든 이유에도 '응 어쨌든 남아공 그래서 위험한 나라임'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법적인 기준도 빡빡하지 않고, 불법을 저질러도 빠져나가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에게 한국은 숨이 막힌다.

삶과 성공의 기준이 너무 명확하고 지금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고 하지만 정말 감사하고 이대로 있으면 누군가는 틀렸으니 더 돈을 벌어라/애를 낳아라/결혼을 해라 라고 보이지 않는 채찍질을 해 댄다.

속인주의, 혈통주의적인 한국 법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나는 가능하다면 남아공 이중국적을 하고 싶은데 선택적 복수국적은 한국 법에서 가능하지 않는다.), 에베레스트 등반이라던지 인도 여행이라던지 조금이라도 위험한 행동/취미가 있으면 죽어서 남한테 민폐끼치지 말라고 욕부터 하는 '눈치'문화도 너무 싫다.

미의 기준도 너무 획일화되어 있어서 마르지 않고 흰 피부가 아니면 못생겼다고, 미백수술을 해라, 다이어트를 해라 라고 하나하나 꼬집어서 지적을 한다.

얼마 전에 본 웹툰에서는 작중 교수직에 있는 주인공이 어려운 상황 때문에 낙태를 하려고 하자 그 주인공의 상황적 맥락과 스스로의 사고와 선택에는 안중에도 없고 일단 '교수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면 안된다. 낙태를 선택하려고 하는 주인공이 잘못되었다'라는 웹툰의 댓글을 보면 정말 한국사람이 할 만한 말이다-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작중 시점은 한국에서 낙태가 헌법불합치 되기 이전이었음)


남아공 사람에게 한국은 디스토피아,

한국 사람에게 남아공은 무법지대.


어떤것이 더 나은지는 당신이 선택하고 그 대로 살면 된다.

그것이 님의 가치관임...


여러모로 참 다른 나라다.

남아공에서 산지 얼마 안 됐을 때 한국 sns에서 신박한 욕이라고 '너네 엄마/아빠 맥도날드 케찹도둑'이라는 것에 너무 웃겨서 남아공 사람인 곧남편(당시에는 남자친구)에게 알려준 적이 있었다.

곧남편은 바로 정색을 하고 그게 도대체 뭐가 웃기냐는 말을 했었다.

왜 가난을 희화화하냐 라는 이유였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그냥 신박한 욕으로 다들 웃어 넘기는 그런 말이 사실은 고도로 계급화/서열화된 한국사회를 반영하는 유머로 비추어 질 수 도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부모님이 공짜 케찹을 가져간다 라는 맥락보다 저 욕에는 너네 부모님 째째하다 라는 맥락이 맞긴 하지만, 곧남편은 정말 속사정을 어떻게 아느냐, 돈이 없어서 가져가는거면 어떻게 하려고? 라고 대답했다.


한국처럼 대학의 서열화도 크지 않고(물론 좋은 대학은 있지만 그 대학을 나왔다고 무조건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고 떠받들여주지 않는다-한국처럼 sky나왔다고 와!! 이러는 일은 없음) 가난하다고 누군가를 욕하면 되려 욕을 더 먹을 것이다. (인종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이 것은 나중에 역사/아파르트헤이트 편에서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음)


사람사는 곳이기 때문에 차별은 어디에나 있고 괴롭힘도 부당한 일도 어디에나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은 한국만큼 도덕적 기준이 빡빡하지도 않고, 눈치주는 일도 한국보다는 없다.


하지만 남아공에 비해서 한국은 법 질서가 잘 지켜지는 편이고 그만큼 범죄율도 낮은 편이다. 그만큼 모난돌 싫어하고 윤리적 기준도 빡빡하니까 그런거겠지.

인생에 정답이 존재한다는 것도 누군가에게는 편한 것일수도 있다. 미의 기준도 하나라면 그 기준에 정진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냥 그게 내가 아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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