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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어둠 Feb 01. 2022

케이프타운 여행 ∼뜻밖의 여정∼ <1>

나도 내가 케이프타운 여행을 할 줄은 몰랐지.

때는 12월 말...

나는 한국에 돌아가야 했었다.

사연은 복잡하다.

비자 종류를 바꾸려고 한국에 10월달 쯤 돌아가 보니 해당 비자가 1월 말부터 신청이 가능하다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이미 모든 짐이 남아공에 있고 대부분의 돈이 있고 송금 처리할게 많은데 은행 계좌에 문제가 생겨서 송금을 미루고 있었고, 보험도 다시 갱신해야했고 등등 여러가지 문제가 있어 1월 말에 비자 신청하기 전에 한 달 무비자로 다시 남아공에 왔었다. (여러 문제가 3개월동안 한국에 있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남아공에 다시 도착했을 당시에는 오미크론이 존재하지 않았고 남아공 발 입국자도 자가격리를 해제해(백신 접종자일 경우) 한국에 오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오미크론이 터질때 까지는....


모든 비행기가 다 취소되었고 돌아가는 비행기가 무슨 200-300만원씩이나 되었었다.

그나마 한 달 무비자 입국 만료일 직전에 터키항공이 운행을 한다는 것을 보았고... 그나마도 요하네스버그 출발은(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본인이 거주하는 프레토리아에서 가장 가까운 국제 공항은 요하네스버그에 위치해 있습니다.) 거의 100만원(편도)씩이나 되었다. 그래서 머리를 굴리다가 케이프타운에서 출발하면 65만원밖에 안한다는 것을 보았다.

요하네스버그에서 케이프타운까지 편도 비행기는 대략 10만원. 아무리 봐도 케이프타운까지 가서 한국에 가는게 더 싼 방법이어서 이 방법을 택했다.


어짜피 비행 시간이 케이프타운에 도착하면 대략 12시, 케이프타운에서 이스탄불로 가는 비행기는 6시, 대략 4시간 정도가 비어 케이프타운에서 꼭 가보고 싶었던 캠스베이 비치만 딱 들리고 다시 공항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전 날 다녀온 페어리 글렌과 공항에서 먹은 난도스 핫 팟

출발하기 전 날에는 남자친구와 가고싶었던 페어리 글렌도 다녀오고 맛있는 모잠비크 치킨도 먹고... 당일에는 요하네스버그 공항(OR 탐보 공항)까지 남자친구가 태워줬고 우리는 눈물의 작별을 했다. 한 달 뒤에 보자고 하면서... 정말 게이트 앞에서 계속 껴안고 있었다.


그렇게 케이프 타운에 도착했다.

우버 택시 안에서 본 케이프타운 풍경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정말 동양인은 나 뿐이었고 그래서인지 모든 택시 기사들이 나를 평범한 여행객인 줄 알고 미친듯이 접근했다.

하지만 나는...남아공 거주민이다. 절대 안속는다.

유난히 쫓아오던 택시 기사가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봐서 그냥 하는 수 없이 캠스베이까지 간다고 하니 400랜드(한화 약 32,000원)를 불렀다. 나는 안쫄고 "님아 나 프레토리아에서 왔다. 너무 비싸다. 우버 보니 180랜드다(한화 약 14,000원)" 하니까 바로 250랜드로 내렸다. 더 편할거라고 하면서.

하지만 나는 여기서도 안쫀다. 바로 "ㅈㅅ 저 우버타러 갈거라서요"하고 가버렸다.

그리고 180랜드로 캠스베이에 갈 수 있었다.


우버 안에서 본 케이프타운 풍경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말로만 듣고 사진이나 영상에서만 보던 테이블마운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고 조금 더 해안선까지 가니 정말 너무 예쁜 바다가 보였다. 왜 다들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캠스베이는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온다면 꼭 차를 갖고 와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블랙미러를 보신 분들이라면 산 주니페로(San Junipero)라는 에피소드를 기억할 것이다.

이 곳에서 나오는 배경이 바로 캠스베이다.

저 스팟은 차로밖에 못가는데, 나같은 뚜벅이는 우버로 저기 보이는 해변에 갈 수 있다.


그렇게 해변 주변을 걸어다녔다.

한국에 가려고 케이프타운에 온거라 부츠에 긴바지 차림이라 수영은 커녕 발도 못담구고 있었다.

심지어 선글라스도 가져오지 않아 눈이 너무 부셨다.


조금 거닐다가 앞에 Tigers Milk라는 음식점 겸 바에 들어갔다.

근데 진짜 치킨 타코 진짜 맛있었다.

배가 고파서 치킨 타코와 감자튀김을 시키고 칵테일도 하나 시켰다.

그렇게 한참 먹고있는 도중에... 나는...

남아공에 사는 한국인들과는 별로 인연이 없지만 정보를 위해 남아프리카 단톡방에 있었는데, 그 곳에 딱 2분 전에 올라온 글.

바로 오미크론 때문에 방문비자(무비자도 포함)를 포함해서 모든 비자의 만료일을 2022년 3월 31일까지 연기한다는 소문.

아니 이걸 내가 한 적어도 이틀 전에만 알았어도 케이프타운에 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정말 기적같이 한국으로 향하는(정확히는 경유지인 이스탄불로 향하는)비행기를 타기 딱 3시간 전에 이런 소식을 받은 것이다.


어쩜 내 인생은 하나같이 순탄하게 흘러가지가 않는다. 한국에 가기 정말 너무 싫었는데 지금 안가도 된다니.그리고 그 소식을 케이프타운까지 와서 공항으로 가기 거의 한시간 전에 알게되다니...

하지만 나는 확실히 하고 싶어서 아버지가 외교관인 친구 사힐에게 전화를 걸었고 사힐은 "정확한건 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지만 그거 맞는거 같고, 안그래도 지금 너 말고 모든 외국인들 다 발 묶여서 비자 만료된건 상관없어"라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바로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안은 엄청 기뻐하며 놀라며 또 기뻐하며 놀랐다. 하지만 다음 문제는...

내가 다시 프레토리아로 돌아가냐, 아니면 이안이 케이프타운에 오냐 이 문제였다. 그리고 금방 결론이 났다. 이안이 케이프타운에 오는 것으로.


왜냐하면...이왕 케이프타운까지 왔는데 여행 하나도 안하고 돌아가기 아깝기 때문...

그리고 이 때는 크리스마스가 금방인 때라 프레토리아는 텅텅 비었고 다들 휴가를 떠나기 때문.

그렇게 우리의 케이프타운 여정이 시작되었다.

정말 뜻밖의 여정이다. 나는 정말 캠스베이만 대충 2-3시간 둘러보고 다시 공항에 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케이프타운 여행까지 하게 되다니. 어쩜...내인생...


한국행 비행기표는 바로 취소해버렸다. 비행기 보딩 타임 3시간 전에 취소한 것이지만 코로나 때문에 캔슬 수수료가 거의 없었다. 환불은 90%받았다.


그리고 이안은 바로 몇시간 뒤 케이프타운에 오는 비행기를 바로 예매해버렸고,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나는 정말 들고온 것이 없기에 이안에게 내 옷과 신발, 선글라스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고 이안은 우리집 개를 봐줄 사람을 급히 구하면서 짐도 챙기고 아주 바빴다.


나는 이안이 바쁘게 케이프타운에 올 준비를 하는 동안 숙소를 알아봤고 롱스트리트에 백팩커 호텔을 예약했다. 다행히 두명이 묵을 방이 남아 있었고 나는 치킨 타코를 다 먹고 숙소로 이동, 짐을 풀었다.


정말 몇 시간 전까지 스펙터클한 일이 발생해서 그런지 온몸에 긴장이 탁 풀어지고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니 잠이 왔다.

그렇게 이안이 올 때까지 낮잠을 잤고 9시정도가 되자 이안이 도착했다.

이날 밤은 정말 우리 둘다 감정적으로 너무 피곤해서...(하루에 눈물의 이별과 눈물의 재회를 기적같이 다 했다고 생각해보자) 숙소 바로 밑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고 바로 잠에 들었다.


이렇게 뜻밖의 케이프타운 여행 첫 날이 막이 내린다.

한국에 죽어도 가기 싫었는데 이렇게 풀리다니. 심지어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인사까지 하고 갔단 말이었다. 세상에.

세상일은 역시 요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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