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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찬준 Dec 11. 2019

가격 협상에 다음은 없다

#사장일기, 지금 잘주세요.

사장님, 오늘 서비스 잘해주시면 다음에 사람들 많이 데리고 올께요.”


나이가 들면서 오지랖만 넓어지는건지, 얼마 전 손님과 함께 저녁 식사하러 처음 방문한 식당에서 사장님께 이렇게 말을 했다. 몇 달 전 문을 연 회사 근처 곱창집인데, 사장님은 내 말을 듣고 그러시는건지, 아니면 원래 그러시는지 모르겠지만, 양도 많이 주시고 추가로 버섯, 감자 같은 것들을 서비스로 주셨다. 빈 말로 한 것도 아니었지만, 깔끔하고 맛도 좋아서 이후에 직원들과 점심도 먹으러 갔고, 조만간 회식도 할 예정이다.


가산동 곱창집, 소곱창, 차돌박이, 관자를 묶어서 곱창삼합이라 부르는.. PPL 아님


우리 회사가 식당은 아니지만, 이런 비슷한 말은 비즈니스에서도 종종 듣곤 한다.

대표님, 이번에 예산이 얼마 안되서, 가격 잘 맞춰 주시면 다음 프로젝트 때 좀 더 추가해서 예산 잡겠습니다.”

왜, 고객사의 예산은 항상 부족하고, 일정은 늘 타이트한 것인지.. 고객사 담당자의 이런 요청이 있는 경우, 대부분 최대한 맞춰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실제로 다음 프로젝트에 이번에 할인했던 금액을 다시 반영하여 예산이 집행된 사례는, 없다. 그 이유는 다음의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프로젝트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이번에 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도 매끄럽고, 결과도 좋아야 다음 프로젝트를 기약할 수 있는 법인데, 견적을 협의하는 초기 단계에 프로젝트의 성공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실제로 고객사 담당자가 그런 의지와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건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의 일이다. 진행과 결과가 모두 만족스러운 프로젝트,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다음 프로젝트가 연결이 되어도 가격은 새로운 협상 테이블에서 다시 논의한다.


둘째, 담당자가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이런 요청을 하신 분이 사장님이 아니라면, 예산이나 가격은 담당자의 의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재무부서, 임원, 사장님 등 층층이 거쳐야 할 단계들이 놓여 있다. 아울러 담당자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회사라면, 그 또한 문제가 아닐까.


셋째, 담당자는 바뀔 수 있다.

프로젝트가 짧으면 3~6개월, 길면 8개월, 그 이상 해를 넘기는 경우도 많다. 담당자가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로 영원히 가지 않는다. 실제로 프로젝트 중간에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담당자는 가도, 협력사와 프로젝트는 남는다. 


그러니, 고객사 담당자분들이나, 협력업체 사장님 또는 영업 담당자분들은 ‘다음’을 놓고 무언가 협상하지 말자.

입장을 바꿔서, “아, 그럼 이번 프로젝트는 예산에 맞춰서 딱 주신 만큼만 작업하고, 다음에 더 많이 잘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기분 좋게 오케이 하시겠는가..


이럴 수는 없지 않은가..  출처 : 양경수 일러스트




곱창집에서 버섯과 감자를 서비스로 주고도 돈을 더 받지 않는 것처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요구 사항이 변경되고, 기능이 추가되어도 대금을 (어지간해서는)더 받지 않으니, 부디 다음을 기약하지 말고, 지금, 이번 프로젝트에 예산을 최대한 반영해주시길. 그게 프로젝트도 살고, 협력업체도 사는 길이다.


나도 이제 식당에 가서 오지랖 그만 부리고, 그날 많이 먹어야겠다,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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