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는 건 밥 먹는 일과 같았다. 어린 내게는 별다른 특기나 취미가 없었다. 그저 잘 먹이고 잘 입히는 일에만 정성을 기울였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젊고 순진했던 엄마는 방문판매원에게 문을 잘 열어줬다. 비말을 서 말 튀기고 겨드랑이가 흥건히 젖은 채 뿌듯한 표정으로 집을 나서던 방문판매원 아저씨들. 그 덕분에 나는 책에 빠져들었다.
동화책을 읽고 나면 아무도 말 걸지 못하게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는 했다. 에니드 블라이튼의 책들을 특히 좋아했다. 주근깨 가득한 영국 소녀들이 기숙사에서 온갖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들. 나는 베개 밑에서 패트가 되고 때로는 안젤라가 됐다. 언젠가 영국 기숙사에서 공부하며 엔쵸비를 먹고 라크로스를 쳐야지.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소녀가 된 나는 영국 기숙사가 아니라 잠실의 한 여고에 앉아있었다. 숨 막히는 공부를 하며 종종 소설책을 한아름 빌려와 읽었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고전도 아니고 또래가 열광하는 만화책도 아니었다. 이를테면 <별을 쥐고 있는 여자> 같은 대중소설이었다. 그 뻘짓의 힘으로 나는 고3 시절을 무사히 통과했다.
일과 씨름할 때도 실연을 당해서도 늘 그랬다. 어김없이 책 속으로 숨어들었다. 두꺼운 고전들을 읽기도 했지만 나를 위로한 건 대개 1쇄만 찍고 사라진 에세이, 허름하고 잡스러운 자기계발서, 조악한 소설들이었다.
책이 밥도 물도 아니란 걸 깨닫게 된 건 아이를 낳고 나서였다. 읽을 시간이란 게 없었다. 책 없이 어떻게 살아, 밥 없이 어떻게 사냐고. 커다란 지적 허영이자 자만이었다. 미술사나 유럽의 국지전을 다룬 책들이 어이쿠, 밥이라뇨. 호텔 뷔페에 나오는 다디단 치즈케이크였다. 치즈케이크 없이도 아이는 자랐다.
별 것 아닌 일로 남편에게 지나치게 화를 내고 혼자 아이를 보던 날. 자괴감이 밀려들어왔다. 내 인격의 바닥을 보는 기분. 내 그릇에 육아라니.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인 것만 같아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그때 후배가 선물해 준 에세이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가 잘 때 빨리 밥 먹어야 하는데 빨래 돌려야 하는데 하는데 하는데 허겁지겁 걸신들린 사람처럼 책을 읽었다. 아가가 깨어났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딸랑이 하나 쥐어주고 엎어져 읽었다. 슬픈 얘기가 아닌데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웨이트리스'라는 뮤지컬이 있다. 3년 전 런던에서 봤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는 웨이트리스 제나가 각성하고 자기 자신을 찾아 나선단 얘기다. 캐릭터는 고구마에 김 빠진 사이다는 너무 늦게 나오는데도 나는 이 뮤지컬이 참 좋았다. 노래, 한 곡의 노래 때문이었다.
제나는 슬프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파이를 굽는다. 새로운 파이에 대한 아이디어가 반짝- 떠오르는 순간, 딩- 벨소리가 울리고 제나가 파이를 구우며 노래를 부른다. "슈가, 버터, 플라워"로 시작하는 노래(What's Inside: Sugar, Butter, Flour). 답답하게 흐르는 극에서 제나가 이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넋을 잃었다.
슈가 버터 플라워. 슈가 버터 플라워 ... 슬프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나는 파이를 구워. 설탕과 버터와 밀가루를 넣고 새로운 맛을 상상하는 거지. 그날의 힘듦이 반죽 속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거야.
뮤지컬 '웨이트리스'
마음이 무너져 내렸던 그날. 에세이를 덮고 아이를 안은 채 거실 커튼을 활짝 열었다. 햇볕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눈을 감고 아이를 꼭 껴안는데 숨이 확 트였다. 머릿속에서 벨이 울리는 것 같았다. "슈가 버터 플라워. 슈가 버터 플라워..." 내게도 필요했던 거구나. 나만의 파이가. 나만의 파이를 굽는 시간이. 그래서 눈물이 난 거였다.
피아노를 잘 친다거나 뜨개질에 소질이 있다거나 꽃꽂이를 예쁘게 할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멋지고 예쁜 것들이 나의 파이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읽고 쓰는 일을 빼면 참 빈한한 나는 돌고 돌아 결국 책 앞에 선다. 영원히 읽지 못할 세계문학전집을 보기 좋게 꽂아놓고 <수학의 정석>처럼 앞부분만 새까만 주식 책을 내버려 둔 채, 1쇄로 끝날 것 같은 에세이와 올해 안에 매대에서 사라질 게 분명한 소설로 눈을 돌린다.
'딩동' 벨이 울리면 뮤지컬 속 주인공은 "슈가 버터 플라워"를 읊조리며 밀가루 반죽을 패대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