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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리 Aug 15. 2024

누구에게나 '인생 그림' 하나는 있다

정여울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

그림 보는 걸 좋아한다. 예전처럼 때마다 전시회를 찾을 여유는 없지만, 마음이 지칠 때 그림을 다룬 책을 보는 것만큼 괜찮은 처방도 드물다.


아직은 미술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는 일이 더 급해서, '에세이'에 방점이 찍힌 미술책은 목록의 뒷순위에 있지만 <오직 나를 위한 미술관>은 참을 수가 없었다. 정여울 작가의 책이어서다.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을 읽은 이후 나는 이 작가를 신뢰하게 됐다. 


책은 작가가 '픽'한 그림 50점에 대한 에세이인데, 얼마 전 강원도로 떠난 여름휴가에서 완독했다. 좋은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 호강인데, 그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에 작가만의 따뜻한 해석이 곁들여져 마음도 호강.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그림으로는 뭉크의 <이별>, 카라바조의 <글을 쓰고 있는 성 제롬> 등이 있다. 특히 카라바조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열망, 간절함을 고백하는 작가가 귀엽고 사랑스럽고 마침내 존경스럽다.


"한 문장이라도 더 쓰고 싶은데, 시간은 부족하고, 육체는 말을 듣지 않고,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간다. 영감이 떠오르면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야 영감이 떠오른다. (중략) 아무리 힘들어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쓰면 내 간절함의 온도에 놀라 내 무의식 어딘가가 글쓰기의 스위치를 누르는 것만 같다. 끊임없이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그 알 수 없는 내 안의 목소리를 나침반 삼아 오늘도 글을 쓴다." (p190)


아, 이런 간절함이라니. 반성하게 된다. 숙연해진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발견한 님프들>을 다룬 글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도 있다. 그리스 신화 속 음악가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지하 세계를 찾아간다. 그 깊은 사랑 덕에 아내를 데려오게 되지만, ‘뒤를 돌아보지 마!’라는 금기를 어겨 결국 아내를 다시 잃고 본인도 죽음을 맞는다. 여기까지는 많이들 아는 얘기. 그런데 그의 머리가 묻힌 곳이 그리스 레스보스섬이라는 설명에 깜짝. “오르페우스의 가호를 받은 이 섬에는 수많은 문인이 배출되었다고 한다”(p313)는 부분에서 또 한 번 놀랐다. 


레스보스섬이 어디인가. 장 지글러가 <인간 섬: 장 지글러가 말하는 유럽의 난민 이야기>에서 다룬 바로 그 섬, 난민들의 지옥이 되어버린 섬이다. 수많은 난민이 구명조끼 하나에 의지해 고무보트를 타고 이곳에 도착하는데, 오도 가도 못하고 열악한 난민 수용소에 갇혀 삶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 그런데 이 섬에 그런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단 말인가. 어쩐지 더 마음이 쓰라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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