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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유효기간을 직감하는 순간들

연인/친구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신호들

by 스마일펄

친밀했던 사람과의 관계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시점은 생각보다 사소한 순간에서 비롯한다. 이른바 ‘손절 징후’라고 할 수 있는데, 항상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거나 나를 자기를 빛내는 도구로 활용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끊임없이 하소연하거나 부정적이고 남탓하는 말을 반복하거나 심지어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하는 등 명백히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에는 유효기간이 존재해 그 끝을 직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를테면 약속을 잡는 과정부터 달라진다. 예전에는 채팅창에서 "오랜만에 다 같이 만날까?"라는 말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모임이 성사되곤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사람들이 쉽게 나서지 않고, 간신히 일정을 맞춰 약속을 정하더라도 막상 다가오는 날이면 한두 명씩 불참 의사를 밝힌다. 결국 자리에 모이는 사람은 절반 혹은 그 이하에 불과하고, 그 자리에 나온 사람들마저도 기운이 빠지는 분위기를 느낀다. 겉으로는 여전히 활발한 대화가 이어지지만, 실제로는 관계가 예전처럼 단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일대일 친구 관계에서도 나타난다. 평소에는 전혀 그러지 않던 친구가 약속 시간 직전에 “우리 오늘 약속 맞지?”라며 확인 문자를 보낼 때가 있다. 물론 이 문자가 단순한 확인일 수도 있지만, 받는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고, ‘혹시 나를 만나기 싫은 건가?’, ‘다른 일이 생긴 건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더 나아가서는, ‘혹시 내가 이 만남을 억지로 유지하려 하고 있는 건가?’ 하는 의문까지 들게 된다. 이런 감정은 과민 반응일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예전에는 한 번도 그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나고 나면, 그때부터 이미 우리 관계에 작은 틈이 생겨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직접 만났을 때도 미묘한 불편함은 계속된다. 표면적으로는 여전히 친밀하다고 믿지만, 문득 ‘왜 이렇게 지루하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네’, ‘얘는 무슨 말을 이렇게 길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런 감정이 계속 이어지는 건 아니지만, 예전에는 없었던 불편함이 순간순간 고개를 든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친하다'라고 믿고 싶어 하기에, 그 감정을 억누르고 ‘내가 오늘 좀 피곤해서 그렇겠지’라며 스스로를 설득하고 합리회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예전과 다르게 관계의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감지하고 있다.

나는 모든 인간관계, 심지어 부모 자식 간이나 우정처럼 순수하다고 여겨지는 관계조차도 기본적으로는 이해관계를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계산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실은 부부와 가족이야 말로 사랑 이면의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으로 가장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평소 인간관계에서 “그 사람이 그냥 좋아서”, “우리는 마음이 맞아서”라는 이유로 관계를 유지한다고 믿지만, 때로는 내가 이 관계에서 무엇을 얻고 있는지, 또 상대는 나를 통해 무엇을 얻는지를 이해타산을 따져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결과, 이 관계에서 내가 손해라고 느끼는 그 순간부터 관계는 돌변한다. 예전에는 감싸주고 싶었던 단점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 사람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지지하고 싶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 단점이 불편하고, 지적하고 싶은 충동으로 바뀐다. 그러다 보면 갈등이 생기게 되고, 스스로도 ‘내가 이 관계에서 상처를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라는 자각에 이른다.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나는 상대에게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마음속으로는 관계의 끝을 받아들인다. ‘나는 이 사람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구나’, ‘이 관계는 이제 끝났구나’라는 인식과 함께, 상대를 위해서라도 서서히 거리를 둔다. 우리는 누구도 함부로 상처를 주고 단점을 지적할 권리 따위는 없으니까.


이러한 감정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자기 공개를 꺼리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난다. 연락을 피하거나, 문자의 답장을 늦게 하거나, 응답이 간단하고 모호해지는 식이다. 상대가 “왜 연락이 없었어?”라고 묻더라도, “그냥 좀 바빴어”, “요즘 피곤해서 그래”라는 애매한 말로 답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SNS에는 활발하게 접속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사진을 올리고 있다면, 그 친구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는 너와의 관계를 더 이상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거리를 두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연락을 무심하게 대하고, 내 이야기를 더 이상 털어놓지 않는다. 내면을 감추고 서서히 관계에서 물러나곤 한다.


요즘 ‘손절’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손절해야 할 사람들의 유형을 나열하는 콘텐츠들도 자주 눈에 띈다. 물론 실제로 관계를 끊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존재한다. 하지만 많은 인간관계에서는 우리가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면서도 가해자이기도 하다. 모든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관계 속 역할은 종종 뒤바뀐다. 이 이야기들이 누군가와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자신 안에서 어떤 심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의 인간관계에서 거리를 조율하고, 감정의 밀고 당기기를 건강하게 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이 내용을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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