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줄었는데, 왜 오히려 지금이 더 편할까
올해 만 나이로 38세이고, 몇 달 후면 만 39세가 된다. 한국 나이로는 어느덧 40살이다. 인생의 중반쯤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는 이 시점에 문득 인간관계를 돌아보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 사이에 내 인간관계는 꽤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던 친구들이 있었고, 별다른 약속이 없어도 모임이나 만남이 자주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뚝 끊기고, 나 역시 먼저 누군가를 만나자고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 내 주변에 남아 있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변화가 불편하거나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삶이 훨씬 더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 이유들을 차근차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이유는 내 기질적 성향과 관련이 있다. 나는 원래부터 넓고 얕은 인간관계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모임이 있으면 시간을 내어 어울리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회복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혼자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조용히 음악을 듣는 시간이 편안하다. 자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전형적인 내향적 성향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생활을 피하거나 대인관계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필요한 사회적 관계는 잘 유지하고 있으며, 다만 나만의 여유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인간관계가 줄어든 것은 고립이 아니라, 내 성향에 맞춘 선택이었다.
<외향성과 내향성에 대한 오해>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다. 우리는 흔히 외향성과 내향성을 다소 오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밝고 수다스러운 사람을 외향적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수줍은 사람을 내향적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하지만 외향성과 내향성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의 특성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어떻게 에너지를 회복하는가로 구분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즉, 자유 시간이 주어졌을 때 혼자 또는 소수의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에너지를 회복하는 사람은 내향적인 성향이고, 다수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은 외향적인 성향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처럼 일이 끝난 후 혼자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산책하거나 명상을 하며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은 내향적인 성향에 가깝다. 반면, 자유 시간이 생기면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모이고, 여행을 가거나 술자리를 가지며 활기찬 활동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은 외향적인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외향성과 내향성은 에너지의 ‘방향’과 ‘회복 방식’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물론, 외향적인 사람도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으며, 내향적인 사람도 사교적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자유 시간에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에너지를 채우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더 자세한 외향성과 내향성은 아래 글을 참고해 주세요. ^^
두 번째 이유는 삶의 리듬 자체가 바빠졌기 때문이다. 30대를 지나 40대로 접어들면서, 나도 친구들도 모두 각자의 삶에서 감당해야 할 일들이 많아졌다. 사회적으로나 가정적으로 책임이 늘어나고, 그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나는 자녀를 키우고 있지 않지만, 육아 중인 친구들은 더더욱 바쁘다. 현실적으로 예전처럼 자주 만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바쁨 속에서도 나는 오히려 삶이 재미있다고 느낀다. 지금까지는 누군가를 도와주거나 따라가는(follow) 입장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직접 일과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나의 성향과 이 시기의 리듬이 맞아떨어지는 느낌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의 삶을 8단계로 나누며, 7단계(성인 중기)인 40세에서 65세 사이를 ‘생산성 대 침체’의 시기로 보았다. 이 시기는 자신이 쌓아온 능력과 경험을 후세에 전하거나, 의미 있는 방식으로 사회에 환원하며 자기 삶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시기이다. 내가 지금 느끼는 바쁨과 몰입도 어쩌면 이 ‘생산성’의 시기 한가운데에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에릭 에릭슨(Erik H. Erikson)의 심리사회적 발달 이론>
에릭 에릭슨은 인간이 평생 8단계의 발달 과업을 겪으며, 각 단계마다 중요한 ‘심리사회적 갈등(psychosocial conflict)’을 해결한다고 보았다. 이 갈등을 건강하게 해결하면 성격이 긍정적으로 발달하며, 각 단계에서 해결하지 못한 갈등은 다음 단계에도 영향을 미쳐 이후 삶에서 혼란이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세 번째 이유는 몸의 변화다. 바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어깨, 손목, 허리, 무릎 등 예전에는 별문제 없던 곳들이 하나둘 아프기 시작했다. 큰 병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통증이 신체적 여유를 계속 갉아먹는다. 이제는 운동이나 병원 방문, 스트레칭 같은 활동이 취미가 아니라 생존 조건이 되었다. 앞으로 20~30년은 더 일해야 하기에 체력 관리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런 가운데 인간관계는 자연스럽게 시간과 에너지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래서 요즘에는 누군가를 만나더라도 되도록이면 산책이나 등산처럼 몸을 움직이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남을 조율하게 된다. 나눔과 회복이 동시에 가능한 관계가 더 지속 가능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네 번째 이유는 경제적 부담과 관련이 있다. 체력 관리가 필요해지면서 의료비와 운동비가 늘어났고, 갑자기 실질적인 지출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자녀가 있는 친구들은 교육비가, 부모님이 고령이신 가정은 의료비나 간병비가 늘어나며 지출의 무게감이 현실이 되었다. 돈이 삶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몸으로 체감된다. 삶의 많은 것이 자본과 구조의 흐름 속에서 결정된다는 사실을 이 시기에 들어 비로소 실감하고 있다.
물론 이상과 가치를 여전히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 사회가 얼마나 불공평하고 변화가 더딘지도 인정하게 된다. 예전처럼 ‘나는 옳고, 세상이 틀렸다’는 성급한 이분법적 분노보다는, ‘이런 세상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실적이고 입체적인 고민을 하게 된다. 이런 사고방식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보는 시선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상에 매몰돼 현실을 무시하고 자기 연민에 빠져 있는 사람보다는, 불완전한 현실 안에서도 실질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살아가려는 사람에게 더 끌리게 된다. 그런 가치관의 변화가 관계의 재편으로 이어진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지금도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로 바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더더욱, 마음만은 놓지 않으려 애쓴다. 가끔 시간을 내어 안부를 묻고, 요즘 어떤 고민이 있는지 살피려 노력한다. 그렇다고 해서 관계에 무리하게 집착하지는 않는다. 이어질 인연은 이어지고, 멀어질 인연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감정적으로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그 말을 계속 곱씹으며 괴로워할 여유도, 체력도 없다. 경험이 쌓이며 나도 모르게, ‘그럴 사람은 그런가 보다’ 하고 훌훌 털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것은 무심함이 아니라, 삶의 여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다.
지금까지 마흔 언저리에서 인간관계가 줄어든 이유를 돌아보았다. 이 이야기에서 여러분도 스스로의 관계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오늘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이렇다. 사람을 만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누가 내게 소중한 사람인지 알아보는 눈을 갖는 일이다. 그 사람을 정말로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는 일이다. 관계의 수보다 관계의 ‘밀도’가 중요해지는 시기. 그 깊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누군가와, 또 나 자신과 정직하고 충만한 관계를 맺는 나날이 되기를 바란다.
*이 내용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제가 2003년 6월 첫 책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출간 이후, 처음으로 독자 여러분과 이 책을 같이 이야기 나누는 독서 모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또는 가족, 부부/연인, 친한 친구, 회사 동료와 상사 등 가깝고 친밀한 인간관계에서 고민과 갈등을 겪고 계신 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주제: 착한 아이 굴레에서 벗어나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 일시: 2025년 8월 23일(토) 오전 10시~오후 1시 (3시간)
■ 장소: 공간 사계절(2, 5호선 영등포구청역 3번 출구에서 약 150m)
■ 인원: 10명
■ 프로그램:
- 현장에서 바로 수령한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읽기(약 1시간)
- 저자가 준비한 발제문 토대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 나누기(약 2시간)
*저자가 모임장으로서 독서 모임을 직접 이끌고 조율합니다.
*현장에서 책을 바로 수령해 읽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오시면 됩니다.
■ 참가비: 39,000원 (<부모님과 헤어지는 중입니다> 도서 1권 포함. 책은 현장 수령)
■ 신청방법: 네이버 '공간 사계절' 예약 신청 (https://naver.me/xWTA44hs)
*예약 과정에서 이용 시간이 1시간으로 표기되는데 시스템상 표기이며, 실제 독서 모임은 3시간 동안 진행됩니다.
■ 더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