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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혜의 윤슬 Jan 30. 2022

눈 밖에 난다는 것

그냥 누군가의 눈일 뿐인데도


생각해보면 '눈 밖'이라는 건 결국 '누군가의' 눈의 밖이라는 뜻일테니 지극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눈 안에는 들 수도 있다는 말인데, 눈 밖에 난 사람만 이렇게 신경쓰이는 이유는 뭘까.


"...나쁜 평가에 더 큰 중요성을 두고 반응하는 것은 그것이 진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쁜 평가는 듣기에 거북하지만 좀 더 진실한 정보의 원천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더 큰 중요성을 띠게 된다." -<평가받으며 사는 것의 의미: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야드 마라 지음, 현암사-


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본다는 것 자체보다도) 이게 나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 지 계산하게 되니까 머리가 아픈거다. 나랑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건 말 건이지. 하지만 내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다는 사람의 눈 밖에 난다는 건 다른 문제다. 직장인이라면 내 인사고과를 담당하는 상사가, 박사과정생이라면 당장 강의를 줄 수도 뺏을 수도, 학위논문을 통과시킬 수도 보류시킬 수도 있는 교수가, 그래서 내 미래를 열어줄 수도 닫히게 만들 수도 있는 이들이 나를 포기한다면? 단순히 외로운 걸 넘어서 괴로운 경험이다. 뭔가 바로잡고 싶다가도, 이미 나를 포기한 사람들에게 괜히 긁어부스럼인가 싶다가도, 한 편 내가 왜 이 사람을 이렇게까지 신경써야 하나 혼자 억울해해다가도, 결국 이런 상황을 만든 나의 탓을 하게 된다. 내가 잘했으면 이런 사단이 나진 않았을텐데.


이유야 어쨌건 이런 생각에 천착하는 건 건강하지 못한 습관이다. 배울 것만 배우고, 감정(괴로움, 후회, 자책, 두려움, 불안감)은 버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정신승리냐고 할지언정 서밤작가님 말처럼 내가 내 정신에서 패배할 이유는 없으니까. 그래서 기억하면 좋을 건,


1. 이게 다가 아니다.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거라면, 앞으로의 어떤 일을 통해서 상대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다음 번에 잘하면 된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유연하기도 하니까. 다음 번에 잘하면 또 좋게 봐주시겠지. 대신 이번에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내 실수 때문에 나를 낮게 평가한다고 생각된다면) 어렵더라도 솔직하게, 이러이러한 부분은 저러저러해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다음번에는 (구체적으로) 이러이러하게 보완해서 개선하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려서 내 마음의 짐을 덜어버리면 된다. 그리고 다음 번에는 진짜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면 된다. 눈 밖과 눈 안을 나누는 절대적인 선이 있는 게 아니라, 스펙트럼 같은 거니까. 지금까지는 눈에서 -30 정도 났었다면 앞으로는 (아직은 똑같이 눈 밖이어도) -20 정도로 그 폭이 줄어들 수는 있겠지. 그 다음에는 -10, 그 다음엔 0, 하다가 +로 돌아서면 된다. 대부분은 노력이 가상해서 마음을 움직여주실테고, 그렇게 했는데도 계속 나를 안 좋게 보는 사람이라면 그까진 내 몫이 아니니까. 나는 내 몫만 하면 된다.


2. 도망치는 것은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이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인용하고 있는 것일 수는 있지만. 어쨌든 도저히 안 되겠으면 그 사람들의 눈을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여러 번 이직을 하고 나서 느끼는 건 그 좁은 공간 안에 있을땐 그 세계가 다인 것만 같아서, 거기서 누가 나를 조금이라도 오해하거나 안 좋게 보면 세상이 전부 나를 그렇게 보는 것 같았는데, 막상 그 세계를 떠나면 아무 일도 아니게 된다는 것. 내가 왜 굳이 그렇게 그 사람 때문에 아등바등했었나 싶은 생각이 들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그 에너지가 너무 아깝고.


3. 좋은 사람들의 좋은 이야기에 더 주의를 기울일 것.

그 누군가는 나를 눈 밖에 둘 때에도 나를 눈 안에 두고 둥가둥가해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는데, 꼭 전자에 천착한다.


" 같은 맥락에서 별 영향력이 없는 사람들의 좋은 평가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사실은 절망적이다. ...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좋은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예상하고 있을 때 실제로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하다는 듯 하찮게 여긴다. ... 사실 이들의 평가에는 사회적 고통의 위험이 동반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소식도 기쁨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 -<평가받으며 사는 것의 의미: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자야드 마라 지음, 현암사-


4. 눈 밖에 나도 된다.

사실 누가 됐건 누군가의 눈 밖에 나도 된다. 으레 공부밖에 몰랐던 학생들이라면 평생 선생님, 친구, 부모님의 심기를 크게 거슬러본 적이 없었을테고, 그래서 미움을 받아본 적이 없었을테고,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미드나 영드만 봐도 그렇다. 학교에서는 문제아라고 찍히고, 부모님 말씀은 귓등으로 듣고, 다들 쟤는 안 될거라고 하는데도 그랬거나 말았거나, 쏘쿨하게 so what의 자세인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예전에는 한심해보이기도 했었는데 지금 보니 취해야 할 자세다. 그러니까 그냥 누군가의 눈 밖에 나도 괜찮다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 뿐.


5. 나의 눈만 신경쓸 것

같은 맥락에서 다음 번, 다른 세계, 혹은 다른 사람들을 통해 리셋 버튼을 누른다고 해도 그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순 없다. 또 남의 눈에 나를 맡기는 거니까. 결국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 언젠가 또 다른 상황에서, 또 다른 세계에서 '잘 안 보이게' 되었을때, 혹은  중요한 그 누군가에게 나보다 더 눈에 드는 사람이 생겨서 내가 상대적으로 눈 밖에 나게 되었을 때, 또 자괴감에 빠지기 마련일테니까. 그래서 근본적으로는 나의 눈 안에 드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흔들릴거면 내 기준에서 흔들리는 게 낫지. 하루에도 수십번씩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인데 지금 그 사람 기준이 뭔줄 알고 거기 맞추려다 내 에너지를 다 낭비할 순 없지. 내 인생은 내 건데 남 눈치보고 사는 거 그만해야겠다.


"이불킥도 하지 마시고, 그냥 거기서부터 내 인생을 새로 그려가면 됩니다.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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