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Aug 14. 2023

만원(滿願)

불안은 끝끝내 해소될 것이다

병원 로비에 앉아 있으면, 괜스레 마음이 이상해진다.

똑같은 옷으로 환복한 사람들은 모두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다. 불안 때문에.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커버, 마음에 든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디 에센셜 시리즈에서 다자이 오사무 편을 가장 먼저 산 것은, 그의 수필 몇 개와 그간 보지 못한 단편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의 글은 수수께끼 같지만 나는 수수께끼를 내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쉽게 알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오직 찬찬히 애정 있게 봐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게다가 다섯 번이나 시도한 끝에 원하는 결과를 얻었지만, 그의 글처럼 수수께끼 같은 본인의 삶을 영영 포기한 채로 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아주 짧은 단편인 '만원'이 마음에 남는다. 


모니터를 보고 있으면 내 몸이 낯설기만 하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상한 고통도 없다. 의사 선생님은 예후가 좋다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수술 동의서를 쓰거나 수술 내용을 듣거나 피를 뽑거나 한다. 나는 병원에 올 때마다 이토록 사람들이 모두 삶에 진심임을 느낀다. 내가 로비에 등장하면 가장 어려 보이는 환복자에게 쏠리는 관심도 받는다. 이제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그들이 은연중에 보내는 안쓰러움과 응원 비스무리한 시선이 괜히 나를 따뜻하게 한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같은 편이 된다. 모두 다, 잘 살고 싶어 한다.  




디 에센셜 시리즈는 다자이 오사무의 얼굴을 또렷하고 크게 볼 수 있다. 약간 일그러진 표정이 고단한 삶을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그를 잘 보여준다. 나는 침대 맡에 두고 있는 김수영 시인의 책을 보면서, 어쩐지 다자이 오사무와 김수영 시인이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두 사람의 글은 모두 치열하다. 그들은 글과 삶을 분리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의 오롯한 치열함을 느끼고 있으면, 살기 위해 글을 쓴 것인지 글을 쓰기 위해 삶을 살았던 것인지 헷갈린다. 


만원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최근 불안한 마음이 고개를 들고 찾아오는 것은 더 잘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 내가 나를 위해서 사는 것.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것. 그런 방법을 찾는 것. 병원에 가고 수술하기 전날까지 불안에 떨었던 것과는 달리, 지금은 병원을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지만은 않다. 어쨌든 몸은 회복되었고 원인은 제거되었고 그 일이 다시 일어날 일은 없으니까. 마찬가지로 지금의 이 불안도 그저 더 어린 날의 내가, 더 잘 살기 위해 치열한 고민을 했을 뿐이었다고 웃으며 떠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다자이 오사무는 본인의 불행을 타인의 희망으로 바꾸는 사람 같다. 분명 우울한 글인데, 읽고 나면 그래서 더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쩌면 그도 더 잘 살고 싶었던 마음이 강해서 반대로 죽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그가 만원을 썼던 그 시절, 그는 어떤 희망을 보았을까. 죽음을 견뎌내고 외로움을 뚫을 만큼 그를 건져 올린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오늘은 그의 우울보다, 그가 남긴 작은 희망을 오래 곱씹어야겠다. 

불안은 끝끝내 해소될 거라 믿으면서. 



끝.




매거진의 이전글 8월의 크리스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