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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Sep 26. 2022

메리 미

복세로다: 복잡한 세상, 로맨스 영화 한 편 보고 다 이겨내자

복잡하게 생각이 꼬일 때는 로맨스 영화 한 편으로 생각을 비우는 게 좋다.

<메리 미>는 그야말로 꿈같은 스토리 구성을 하고 있으며, 보기만 해도 허허 웃음이 난다.

그렇게 웃고 있으면 치유되고 있음을 느낀다. 인간에게는 역시 돈, 잠, 웃음이 최고 보약이다.




세상은 복잡하고 생각보다 좁다. 내 지인이 새롭게 알게 된 지인의 지인일 확률도 없을 것 같지만 있다. 그런가 하면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던 인물도 다시금 내 인생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한다. 어쩔 땐 반갑지만, 달리 반갑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그럴 땐 머리가 복잡해진다. 보고 들은 모든 것들을 혼자 삭히고 묵히고 잊으려고 했는데, 그런 일과 관련된 인물이 불쑥 등장하는 순간 그 인물의 언행들과 그래서 남겨진 상처들이 그림자처럼 하루 종일 발밑에 맴돌곤 한다.


메리 미 스틸 컷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럴 때는 뒤도 안 돌아보고 영화를 튼다. 로맨스지만 최대한 비현실적인 로맨틱 코미디를. <메리 미>는 슈퍼스타인 여주인공 '캣 발데즈'가 홧김에 (진짜 화가 나서) 관객석에 있던 남자 주인공 '찰리'에게 청혼하며 시작된다. 잘난 여자와 평범한 남자. 언뜻 보면 성별이 뒤바뀐 공주님 이야기가 생각나겠지만, 신데렐라 스토리를 오마주 했다기엔 찰리의 독립성이 매우 강해서 캣에게 경제적으로 도움받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익숙한 플롯 구조를 하고 있지만 찰리의 성격, 특히 수학 선생님으로서의 '너드미'와 완강한 독립성은 캐릭터를 입체화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한편 '캣 발데즈'를 연기한 배우는 무려 제니퍼 로페즈다. 그는 연기자로서도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솔로 가수로서도 히트송을 쌓아왔을 만큼 저력 있는 뮤지션이다. 07년에 발매했던 메가 히트송 'Brave' 나 21년에 발매한 'Let's Get Loud'는 어쩐지 용기 없고 기운 없을 때 한 번씩 들어주면 자존감이 상승한다. 이러한 이력 때문에 작품 속 공연 장면은 어색함 하나 없이 매력 그 자체이며, 영화 때문에 제작된 동명의 노래 ‘메리 미’도 (진짜 진짜) 좋다.


여하튼, 이 두 인물은 요상하게 얽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사는 삶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노잼 인간 그 자체인 '찰리'의 일상은 자극적이고 화려한 삶만 살던 '캣'에겐 생소하고 호기심 넘치는 세상이며, 반대로 남부러울 것 없는 '캣'의 일상을 오직 '찰리'만 안쓰럽게 여긴다.


 


메리 미 스틸 컷 출처: 네이버 영화



가끔 미국에서는 이토록 인사이트보다는 감정을 치유하는 로맨스물이 등장한다.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유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회적 이슈나, 법적, 정치적 코멘트가 섞이지 않는 순수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영화는, 가뜩이나 생각할 게 너무 많아 복잡한 세상에서 현대인의 귀여운 도피처가 되어준다.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러닝 타임만큼은 그들의 가식 없고 무겁지 않은 이야기 때문에 웃음이 난다.


내가 주기적으로 <라스트 홀리데이>를 보는 것도 같은 이유인데, <메리 미>는 그전부터 이어져오는 미국 표 힐링 영화의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겠다.


복잡한 세상에서도 치유는 있다. 어쩌면 내 지인이 새롭게 알게 된 지인의 지인일 확률이나, 다시는 안 볼 줄 알았던 인물의 출연보다도 치유의 가능성이 더 많을 거다.


<메리 미>를 보며 영화나 문학처럼 우리 주변의 빈 곳을 덤덤히 채우는 예술에 대해 생각해봤다. 영감과 인사이트, 반성과 비평, 그것들은 여러 의미로 존재하겠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을 치유하기 위함이라는 (주관적) 결론이다.




‘캣’은 ‘찰리’에게, ‘찰리‘는 ‘캣’에게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치유받는 로맨스. 공격성 없는 로맨틱 코미디를 보면서 때로는 웅장하고 거대한 예술 작품만큼이나, 가볍고 쉽게 접하는 예술도 개인을 치유할 수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인스턴트, 양산형 제외)


복세로다. 복잡한 세상을 다 이겨내려면, 우리에겐 오늘도 가볍고 무해한 로맨스가, 로맨틱 코미디가 필요한 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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