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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Oct 09. 2022

블론드

찬란한 폭죽의 결말

빛이 터지고 나면, 남은 잔해는 어디로 사라질까?




<블론드>는 상업영화 역사를 통틀어서도 유명세로 손을 꼽는 인물의 삶을 과감하게(어쩌면 파괴적으로)그렸다. 근래 많은 작품 안에서 연예계와 정치계 이슈는 드문드문 키워드로 등장했지만, 이토록 낯부끄러운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영화는 아마 처음이 아닐까. 가장 눈에 들었던 것은 단연 색감의 대비. 영화 제목처럼 마릴린 먼로를 화면에 담을 때는, 주변 배경의 색감을 옅게 날리고 그녀의 '금발 머리'나 '화려한 의상'에 집중한 모습이다. 그래서 항상 빛났지만, 속으론 한없이 타들어가는 폭죽 같은 삶을 더 직관적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블론드에 대해서는 쓰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어떻게 운을 떼야할지 몰라서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영화 소개에는 '픽션'이 가미되었다고 하지만, 어쩌면 그의 인생은 이 지독한 픽션보다 더 고달팠을지도 모르고,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슈퍼스타의 자전적 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쓰는 과정이 힘겹다. 그 사람의 인생이 불행하다고 느껴질수록, 더.





새로울 것 없는 개인의 인생사 이야기인 만큼, 긴 러닝타임에 호불호가 갈릴지도 모르겠다. 다만, 실제 삶 자체가 픽션보다도 더 굴곡진 인물이라, 나는 166분 동안 지구 반대편에 있던 한 여성의 일생에 몰입했다. 그러나 모든 스토리에 공감하거나 작품이 좋았다고 하기엔 역시 무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여성이라는 생물학적 공통점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지독한 외로움은 여러 원인으로 찾아왔지만, 압도적인 비율로 유산을 통해 고도화되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슬펐다.


가끔 탄생되지 못한 삶에 대해 생각한다. 자의든 타의든, 이 세상이 얼마나 찬란하든 고달프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어린 죽음을 지켜보는 여자의 삶에 대해서도. 이 행성에서 오직 나에게만 의지해 숨 쉬던 누군가 사라진다면, 그 빈자리를 쓸어내는 마음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블론드는 개봉 전부터 19금 타이틀을 걸고 이슈화 되었던 것과는 달리 꽤 마음 아픈 작품이다. 그의 일생은 섹슈얼했지만, 파괴적이기도 했다. 그건 사후 60년이 지나, 관련 영화가 공개되어서도 똑같아 보인다. 똑같이 19금 타이틀을 걸고 섹슈얼을 어필하는 데다가, 파괴적이다. 그래서 이미 세상에 없는 인물을 위로하게 된다.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을 대하는 다수의 눈짓에 한 사람의 인생이 반복적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엿보는 기분이다. 이 지점을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부디 의도했길 바랄 뿐이다.





폭죽은 죽어갈 때 가장 화려하다. 죽어간다는 사실도 폭죽만 알 수 있다. 한창 찬란한 순간을 타인들이 멋대로 음미하면, 죽어가던 것은 이미 죽은 후다.


평생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쫓았던 마릴린 먼로와 노마 진. 긴 일생의 메인 줄기는 픽션이랄 데 없이 사실만을 그렸으나, 자신을 보러 언젠가 오겠다는 신원 미상의 아버지 편지를 받고 스크린 속 자신의 모습을 슬프게 바라보는 노마 진을 그려낸 모습은 픽션일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반반의 확률을 가지고 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화면 속 사치스러운 여성상을 연기한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며, 저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슬프게 독백하는 마릴린을 그려낸 것치곤, 작품 자체가 너무나 섹슈얼한 상업영화라는 것이다.




때로는 한 인물의 전기를 재창조한 작품이 그들을 위한 것이 맞는가, 에 대한 물음표가 생긴다. 스타의 일생을 넘어, 한 개인의 처참한 비하인드까지 알 권리는 존재할까? 존재한다면, 누구에게 얼마만큼씩 허용되는 걸까?


한 시절, 가장 화려하게 터진 폭죽의 잔해는 아직 이곳에 남아 있을까? 마릴린 먼로는 웃고 있을까? 그렇다면 노마 진은?


블론드는 아주 많은 의문을 남겼고, 계속 질문하게 했다. 그러나 작품이 주는 문제에 흥미를 느낄 새도 없이 슬프기만 했다. 작품이 어떤 의미와 시의성을 품었든, 결국 폭죽처럼 찬란하고 강렬히 각인된 스타도 개인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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