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영원히 기억할지도 모르지
"난 완벽하지 않아요.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망가진 여자일 뿐이죠. 완벽하지 않다고요."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을 찾을 수가 없어요. 안 보여요."
"보일 거예요. 곧 거슬리게 될 테고, 난 지루하고 답답해하겠죠. 나랑 있으면 그렇게 돼요."
"Okay"
요 며칠간, 음식에 체해서 아이스크림만 물고 있었다. 피해야 할 음식인 줄 알면서도 망각하고 먹은 탓이다. 속을 비워내고 약을 털어 넣고 몸을 접어 지냈다. 아직도 영 컨디션이 바닥이지만, 하루 이틀 있다 보면 저절로 나아질 거다.
급하게 먹은 마음도 체할까? 비이성적 판단을 나무라는 듯 두통도 함께 머물러 있다. 물건 하나만 잃어버려도 아까워서 어쩔 줄 모르는데, 사람이 들고나갈 때면 몸이 휘청인다. 마음을 주는 건 죄가 아닌데, 나는 나한테 잘못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적당히가 될 수 있는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이터널 선샤인을 다시 봤다. 지금이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최적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음은 뭘까? 보이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자꾸 수렁에 빠지게 한다. 끝도 없이 생겨나지만, 찬란한 순간에는 유효기간도 있고 스스로 먹어놓고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내가 클레멘타인 같았는데, 이제 내가 마음을 주는 모든 이들도 클레멘타인 같다. 실은, 모두 상처받고 있을지 몰라. 관계의 끝에서.
내 곁을 잠시 잠깐 스쳐 지나간 모두를 나는 잊어본 적이 없다. 주변에서는 생각이 너무 많다고, 잊을 건 잊고 지내라고 조언해주지만 그게 마음대로 될 수 있었다면 나는 글을 쓰며 살지 못했을 거다. 나는 여전히 사람이 좋아서 내가 나를 아는 한, 앞으로도 이 손해 보는 장사를 계속할 거다.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가끔은 클레멘타인처럼 아픈 기억을 지울 수 있다면, 그래서 더 오래 사람을 믿게 될 수 있다면, 한 번쯤은 흔쾌히 그러고도 싶다.
하루는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을 앞에 두고 서서 엉엉 울었다. 왜 사람들이 떠나가는지, 왜 떠나보내야만 하는지 모르겠다고. 동생은 끝에서 허우적대는 나를 보며 웃었지만, 나는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이든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번 오면 감히 모두 내 사람이라 못 박는 탓이다. 차라리 기간에 마음이 비례했으면 좋겠는데, 때로는 그것도 들쭉날쭉해서 짧은 기간 지켜보고도 함부로 애틋해진다.
마음을 뛰어넘는 게 있을까? 생각을 멈출 수 있을까? 나는 SNS 속 동기부여 연설가들처럼 독하지 못한 탓일까? 성공에 갈망이 없는 탓일까? 생각을 멈추고 눈앞의 일만 하면서, 자신을 단련하고 나아가기만 하는 건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다. 억지로 기억을 멈추고 동기부여 연설을 주욱 지켜봐도, 못할 것 같아 정말. 독해지고 싶어도 태생이 그럴 수 없도록 태어난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오랜만에 본 영화 속 결말은 여전히 마음에 들고, 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멀어지는 사람들을 오래 간직했다가 때가 되면 조금씩 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는 계속 그래 왔듯 영영 잊지 못할 거다. 마음 한켠에 두고 때로는 자주, 시간이 지나고도 가끔씩 꺼내보겠지.
그러니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 나와의 만남이 영 별로였다면, 모두 라쿠나사로 가서 기억을 지워도 좋다. 떠나보낼 필요도 없이, 나만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앞으로 나는, 몇 번의 만남을 더 거칠까. 얼마나 곁을 내주고 또 얼마나 슬퍼할까. 사람을 믿고, 기대하는 건 정말 나쁜 걸까? 가혹한 현실에서 어린애처럼 이상만 좇고 있는 거라면, 몸이 휘청인대도 기꺼이 그 역할은 내 몫으로 두고 싶다. 찰나의 기쁨을 위해서.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빛. 나는 어쩌면 그걸 영원히 기대하며 살지도 모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