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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무탈 Jan 03. 2020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2. 엄마의 짐 꾸리기

                                                                                           

엄마 아빠 나. 할아버지 생신 때 친척이 모두 모인 자리다. 난 저 당시 빌로드 옷을 입은 엄마의 팔의 감촉이 생생하다.


엄마는 자꾸 무엇인가를 챙긴다. 일반 상식으로 보면 참 쓸모없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보물인 양 꽁꽁 보따리 속에 숨겨놓는다.


가장 자주 챙기는 것은 수건이다. 잘 빨아서 말려 놓으면, 어김없이 사라진다. 나중에 보면 서랍 한 켠 숨겨둔 보따리에 들어가 있다.


양말도 좋아하신다. 좋아 보이거나 색이 예쁜 양말을 모두 감추고 보따리에 넣는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빠빳한 목욕 타월에 집착한다. 여러 개를 가져다 놓았지만, 잘 말려놓은 때타월이 가장 탐나는 아이템인 것 같다.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모아 짐을 싸 두고 어디론가 가실 준비를 자꾸 하신다. 난 이게 너무 슬프다.


슬프다가도, 흙 묻은 운동화나 슬리퍼가 서랍장에서 나오거나 샤워를 할 때 타월이 없으면 불같이 화가 난다. 이 화를 다스리며 쿨하게 있기가 쉽지 않다.


장롱에서 신발을 발견하면 엄마한테 화가 난다. 화를 내고 후회하지만 순간을 이기지 못할 때가 많다.  


보따리를 챙기는 엄마는 자꾸 집을 찾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집을 찾지 못할까 너무나 심각하게 걱정을 한다. 우리 집은 지금 여기인데, 엄마한테는 너무나 낯선가보다.


아마도 가고 싶은 곳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던 집, 외삼촌과 세 분 이모가 살 맞대고 살던 종로의 집일 것이다. 엄마, 거긴 이제 아무것도 없어,라고 나는 말하지 못한다.


엄마는 전형적인 막내딸이다. 외할아버지는 엄마가 태어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유복녀로 태어나 고생했을 수도 있었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거의 스무 살 차이 나는 큰 이모와 외삼촌이 딸처럼 키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 입짧고 자존심 강한 아이. 외갓집 분들은 엄마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묘사한다.


엄마의 아픔은 외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이다. 가장 예민하던 고3 시절, 종로에서 타자 학원을 운영하시던 외할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사인은 심장마비.  


철이 들어 생각해보면, 엄마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또 막막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가끔 당시 얘기를 하셨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입시를 앞둔 열여덟 살짜리에게 엄마의 부재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이다. 부모같은, 나이 차이 많이 나는 형제도 그 자리를 대신하진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에게 가장 찬란하고 행복했던 시절로 시간을 돌리고 싶은 마음, 그 간절함에 자꾸 보따리를 챙기고 이제는 없는 집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엄마는 매주 한 번씩 금요일마다 오시는 셋째 이모가 왜 자기를 찾아오지 않냐고 마구 응석을 부리기도 한다. 이모는 엄마 보는 것을 힘들어하신다. 막상 이모가 오면, 엄마는 다른 사람이 돼 이모를 막 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상한 사람이 자꾸 나한테 잔소리한다"가 엄마와 이모 다툼의 핵심이다. 엄마가 기억하는 이모는 젊은 시절 쌩생한 언니이니,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이 없다. 엄마를 받아주지 않고 일일이 싸우는 이모를 보는 내 마음도 불편하다.


그나마 가장 말을 잘 듣는 것은 내 말이다. 샤워를 도와주고 드라이를 해 줄 때, 얼굴에 온갖 좋은 화장품으로 마사지를 해 줄 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즐거워한다. "너무 어쩜 이렇게 모든 것을 잘하냐"는 말은 수십 번을 한다. 엄마가 기분 좋아하는 마사지를 자주 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엄마가 날 키워주었으니, 이제 내가 엄마 해줄게, 엄마. 외할머니 찾겠다고 자꾸 어디 가지 말고, 오래오래 내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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