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은율 Sep 02. 2024

[시] 안단테!


<안단테!>


나는 감정 노동자, 오늘도 목이 아프도록 외쳐야만 했다.

 

자리에 앉아라, 그만 싸워라, 밥 먹어라, 뛰어다니지 마라, 글씨를 또박또박 써라, 피아노 연습해라, 바닥에 물 쏟았으면 닦아라, 책장 정리부터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조사와 어미가 바뀔 뿐, 의미는 별반 다를 바 없는 지시형 문장들을 내뱉고 나면, 커다란 어항 맨 바닥까지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정말 못할 짓이다, 엄마라는 직업을 내려놓을 수도 쉴 수도 없으니, 안 맞는 일이라고 때려 치울 수가 없다 그때 아들이 내 무릎에 올라와 앉으며 볼을 부빈다 아들을 힘껏 품에 안으면 이 사랑스런 존재에게 왜 화를 냈는지, 또 마음속으로 자격 타령을 늘어놓게 된다 그래도 나 예쁘지, 하는 딸을 보고 있으면 헛웃음이 난다 사랑만 해도 모자란 예쁜 시간에 나는 화마에 휩싸였다가 급하게 불을 끄기 바쁜, 감정 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감정이 없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예쁘게 바라보는 마음도, 화를 내는 마음도 모두 같은 곳에서 나온다. 그러니 감정이 없어지길 빌 것이 아니라, 더디게 표현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반응을 조금씩 느리게, 지, 연, 시, 켜, 보, 는, 거, 다.


아바의 안단테, 안단테를 흥얼거리는 밤..리타르단도.

여기서는 점점 느리게 쳐야해요, 피아노 건반의 터치 속도가 게으르다.

반응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게을러도 좋겠다.


사랑도 안단테, 분노도 안단테.

느린 것에 무한한 애정을 주고 싶은 밤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