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가야 할 방향으로 돌아간다. 반드시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 것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최선을 다해 공을 들여도 일이 틀어지고 원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겹쳐서 삶이 무너지는 사람도 많다. 신을 믿지 않고 자연의 섭리라는 설명되지 않는 결과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종교에 관한 대담을 나누는 유튜브방송에 꽂혀 몇 달째 시청하고 있지만 인류를 구원할 것 같은 오랜 종교는 현재의 인류에게 해답을 주지 못했다. 그 이유를 종교의 세속화와 대중의 각성에서 찾기도 했다. 기성 종교가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니 젊은 이들이 무속과 비과학적인 점술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죽음이라는 유한한 운명을 타고난 인간에게 이 문제의 해답을 찾아낼 방법은 없다. 늘 논쟁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주라는 시공간에 갇혀서 그 실체조차 어렴풋이 짐작하는 인간이 차원이 다른 세계에 존재할지 모른다는 신을 설명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인간의 언어가 그리고 인간의 과학이 담아낼 수 없는 건 당연했다.
그것이 신의 존재이든 태초 빅뱅 이전의 세계이든 말이다. 빅뱅 이전이라는 말도 부적절하다. 시간에 갇힌 말이 아닌가? 나는 이런 소모적인 논쟁이 내 삶을 구원해 줄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행여 내가 신성스런 체험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와 그 힘을 느꼈다면 모르지만 나는 성령의 은사를 아직 알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신과 종교를 무시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지 않을 만큼 강인하지 못하다. 나는 나약하며 나 자신과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날마다 노심초사 안절부절 전전긍긍한다. 이런 상황이 비단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지만 나 역시 이런 고난과 역경에서 찾게 되는 건 의지할 수 있는 절대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 세상에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삼재든 대운이든 하나님의 시련이든 나는 오십을 넘으면서 온갖 고난을 전방위적으로 맞닥뜨리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건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의지가 나를 지탱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내가 무너질 수 있는 순간에 나를 지켜주는 무언가 영험한(?) 힘이다.
그런데 말했듯이 나는 나약한 인간이다. 늘 걱정과 불안이 떠나지 않는 심지가 약한 인간이다. 그래서 나는 후자에 대한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것이 어머니로 인해 접했던 기독신앙인지 우주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태극과 오행의 원리인지 나는 모른다. 사실 그 둘이 다르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모두 인간의 가슴과 머리가 어렴풋이 형상화한 신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삶은 내 의지나 기대와 상관없이 전개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한 가지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있다. 그것이 어떤 작동원리인지 모르겠으나 내 삶을 이어가는 거대한 흐름이 있다는 것이고 그게 어떤 순간에는 직감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내가 선택받은 백성이거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 영혼에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면이 남아있고 나 역시 내 삶을 지배하는 거대한 흐름을 막연하게나마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그걸 세상에서는 다양하게 해석하겠지만 중요하지 않다. 내 영혼이 느끼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 외에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다. 내 예민한 감각이 잡아내어 주는 일들에 집중하면서 고비고비를 넘어가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었다.
모든 일이 올바르게 돌아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올바르다는 가치판단에도 너무나 많은 주관성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다만 주어진 운명(?)대로 순리(?)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그 이치가 어떤 논리적 증명에 충실하지 않더라도 그 이치는 분명 존재한다. 그 이치를 깨달아가는 것 그 이치를 받아들여가는 것 그 이치에 저항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