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쫄쫄이 성장기 (8)
쫄쫄이 지원한 대학의 합격자 발표날 저녁, 엄마는 마음이 가벼웠다.
“아들, 수고했어~
자… 우리 와인 한잔 합시다!”
세 식구가 마주앉았다. 엄마가 와인을 쫄쫄 따르고 있노라니… 아들 왈
“근데..
엄마가 해준게 뭔데?”
옹? 띠옹~
“야… 그래도 옴마가 아침밥은 꼬박 꼬박 챙겨줬잖어…”
말꼬리가 어물쩍... 하하하~
돌아보면, 그 때 철없는 엄마는 그저 무사히 입시가 끝났구나 싶었다. 그러나, 아들 입장에서는 살짝 하향 지원을 했기에, 합격이 마냥 기쁘다기 보다는 아마도 도전해 보지 못한 기회들이 아쉬웠을 수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일하는 여성으로서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늘 바삐 살아온 편이다. 그래서 엄마나 아내로서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다행히 자상한 남편이 나의 부족한 면을 넘치게 채워 주었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천만다행이었다. 게다가 아이들 키우면서도 공부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때가 되면 다 알아서 하겠지라고 편하게 생각했다. 돌아보니 자율적으로 살도록 키웠었다고 하고 싶지만, 무슨, 사실은 방임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쫄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 어느 봄 날에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반에 한글을 못 뗀 아이가 딱 둘이가 있단다. 한 아이는 부모가 C대 교수이고, 다른 한 아이가 쫄쫄이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즘은 아이들이 한글을 다 떼고 오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기초 한글부터 가르칠 수가 없으시단다. 부모님께서 나름의 교육철학을 가지신 것 같은데, 문제는 아이가 학교 공부를 따라 가기 어려우니, 집에서 한글을 좀 가르쳐서 보내 달라고 하셨다. 점잖은 목소리로 어려움을 토로하시던 선생님 말씀에 정신이 퍼뜩 들었었다.
나름의 교육철학? 하이고.. 부끄럽다. 그러나, 이후에도 나는 아이 공부 가르치는 것에는 그렇게 열을 내지는 않았다. 핑계 같지만, 직장 일로 바빴고, 공부는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했다. 60년대에 자란 엄마가 90년대에 태어난 아이를 키우며, 본인 자라던 환경 만 생각했으니, 지금 생각하니 참 어이가 없다.
생각해 보면, 늘 까불 까불거리고, 조잘조잘 명랑하던 쫄쫄이는 학교라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름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다. 선행교육이 당연시되던 시절 아니던가! 그런데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깨친다는 엄마의 방임 속에, 쫄쫄이는 이미 앞서 출발한 아이들 뒤를 따라, 그야말로 학교에서 기초부터 하나하나 깨쳐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초등하교 고학년을 지나 중학교에 진학하며, 쫄쫄이는 조금씩 말이 줄어들고,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딱 그 무렵, 나의 미국 파견으로 1년여를 미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선행교육이 보편화되지 않은 미국 학교에서 쫄쫄이는 수학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으며, 짧은 시간 안에 우등반으로 올라갔고, 서서히 자신감을 회복하였다.
귀국 후에 쫄쫄이는 나름 열심히 하는 아이가 되어, 방향을 잘 잡아 가기 시작했다. 중학교 졸업할 때는 학교에서 특목고 진학을 추천하였고, 쫄쫄이도 욕심을 냈다. 그러나, 지나친 경쟁 속에서 힘들어 하는 주변 아이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고 있던 나는, 남편과 의논하여 일반고 진학으로 결정을 했다. 가끔씩 아이는 이 대목을 아쉬워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