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이 아쉬운 날이 있다. 사람들과 어울려,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자리가 아니라 그저 혼자서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은 그런 날 말이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지나고 보니 별 것 아닌 일이었으나, 당장에는 어찌 이리 내 마음을 몰라 주나 싶어 서운했다. 그러나, 말을 보탤수록 배가 산으로 가니 입을 다물어야 하는 저녁이었다. 그러나,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가! 대체로는 온화하나, 그러나, 선을 넘었다 싶으면 해야 할 말은 면전에서 아주 직설적으로 다 하는 사람 아니던가. 설사 상대가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할말을 하고, 저녁 밥상을 차리다 말고, 집을 나섰다. 나를 다스려야 했다. 오락 가락 비가 오는 산아래 동네 몇바퀴 돌다 보니, 그만 아이가 짠해져서, 내 마음 갈 길을 잃었다. 그저, 소주 한잔 생각이 간절했다. 어디 소박한 식당 구석탱이 자리, 간소한 안주거리를 앞에 두고, 다만 나를 친구 삼아, 소주 한잔 기울였으면 싶었다. 그래서 비오는 저녁에, 동네 골목길을 조금 쏘다녔다. 주인장이나 손님들이나 그저 무심한... 그런 만만한 식당을 찾아.
기웃 기웃하다, 저 윗 동네 소국밥 집에 찾아 들어 국밥 하나와 소주 한병을 시켰다. 천장 낮은 어둑 어둑한 식당, 좁은 골목으로 지나가는 이런 사람 저런 사람들을 내다보다 쓴 소주 한잔 마시고, 식당 벽에 휘갈려 쓴 메뉴판이나 읽고... 그렇게 앉아 있었다. 어두워지는 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지쳐있거나, 딱하도록 무표정하거나, 열정에 차 있는 저 얼굴 들 속에, 문득, 내 아이들도, 내 남편도, 나도 섞여 들어 지나가는 것이 설핏 보였다. 그저 잘 살아보겠다고,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노라니, 나를 흔들어댄 사건의 그 사소함에 실소를 머금게 된다.. 아... 뭐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럴 수 있고, 저도 그럴 수 있지 싶어졌다. 그러니까, 알코올의 순 기능이라고나 할까... 가벼워진다.
그러나, 아마도 누군가 이런 나를 관심있게 봤다면, 어쩌면 "저 할매 뭔 사연이 있나? "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사실 소소하기 그지 없지만, 도를 닦고 있던 중이었다. 다행이, 일꾼 둘은 나한테 관심 따위는 없었고, 식당은 제법 한적했다. 뛰엄 뛰엄 앉아 있던 객들도 저들끼리 바빴다. 국밥 맛은 그저 그래서 아쉬웠으나, 소주의 쓴 맛은 일품이었다.
휘적 휘적 동네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멸치국수 집 앞에서 이뿐 길냥이 삼색이를 만났다. 요가하러 가는 길에 오다 가다 만나곤 했던 삼색이는, 용케도 몇해째, 겨울을 견디고, 봄 가을을 지나고, 올 여름 장마를 살고 있는 중이다.
국수집 처마 밑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삼색이와 눈을 맞추고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쓴다고... 이 장마도 부디 잘 견디라고... 그러나, 아이가 배가 고픈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고, 무엇보다 빈손이어서 그 아이에게 나눠 줄 것이 없었다. 꽃 가게 앞에서 돌아보았을 때도 아이는 그 자리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