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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Dec 11. 2022

남자의 외로움 (part. 4)

남자들은 리스펙 없이 따르지 않는다

지금의 자의식을 갖게 된 것은 복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다. 다니던 남고를 1학년 1학기까지 다니고 자퇴 후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1년 했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는 같은 고등학교에서 1학년 2학기부터 학업을 시작해야 했고, 함께 1학년 1학기를 보낸 동갑 친구들은 2학년 2학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복하 첫날이 기억난다. 몸짓과 표정으로 ‘나 한 살 많은 형이야 임마, 너네랑 달라’를 외치고 있었다. 태연하면서도 강해보이고자 몸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고, 표정도 굳어있었다. 사실 매우 불안했고 무서웠다.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군대처럼 무식하게 가르치는 학교로 유명했다. 머리를 빡빡 깎이고 남녀노소 불문 모든 선생님들에게 학교가 직접 주문한 몽둥이를 하나씩 주었다. 공사장에서 쓰는 노란색 플라스틱인데 안에는 비어있어 가벼운데 단단해서, 키 작은 젊은 여자 선생님이 휘둘러도 허벅지에 피멍이 들었다.


남고는 꽤나 동물의 왕국 같다. 강자와 약자가 누군지 꽤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먹고 먹힌다는 의미를 알 수 있고, 얘가 건들만한 애인지, 건들 수 없는 애인지를 알려면 얘가 어느 무리에 껴 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복학 후에도 나는 볼 품 없었다. 근육도 별로 없고 약해 보이게 얄쌍하게 생겼고, 키도 작았다. 그래서 학기 초반에 내가 동생들에게 먹히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다. 자퇴하기 전 한 학기 동안 날 가르치신 선생님들은 모두 나를 복학생 형아로 애들 앞에 소개했다. 복학생이 들어왔다는 소문은 1학년 사이에 빠르게 퍼졌다.


미국 가기 전 한 학기 동안 노는 친구들과 충실히 어울렸던 것이 나에겐 얼마나 신의 한 수로 여겨졌는지 모른다! 내가 복학했단 소식을 들은 2학년의 무서운 친구들이 날 보러 내려와 준 덕에 난 동생들에게 먹힐 위험을 덜 수 있었다. 그 덕에 내가 직접 말하지 않고도 저 형은 #2학년무서운형들이랑친구 라는 해시태그가 생겼다.


그래도 짓궂거나 화끈한 동생들이 있기 마련이다. 은근히 무시하거나 조금씩 선을 넘으며 자기 영향권 아래 두려는 동물적인 기싸움이 생긴다. 그것은 급식을 먹을 때, 운동장에 있을 때, 수업 끝나고 몰래 모여 담배를 피울 때, 어디서든 챌린지를 받는다.


계속 얘기하자면 끝도 없이 많은 에피소드가 있지만, 결국 외유내강으로 귀결된 나의 복학생 생활이었다. 초반엔 여러 맘고생을 했지만, 난 내 자의식을 거울 삼아 천천히 동생들의 인정을 받았다. 나는 전교 회장직에 출마하는 친구의 러닝메이트로 함께 출마해 고학년 표를 거의 몰아주었고, 나도 전교 부회장을 지냈다.


남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재료로 공감보다 더 중요한 게 바로 존경심, 리스펙이다. 나 또한 긴 시간 비언어적 행동들로 차곡차곡 리스펙을 쌓았다. 같이 복학한 친구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친구는 유세윤처럼 다들 내 밑으로 조용히 하라는 태도 때문에 바로 먹혔다. 나의 소속팀, 피지컬, 돈, 능력 등으로 인정을 끌어올 수 없다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행동을 촉구하기 어렵다. 어떤 종류라도 상대방에 대한 리스펙이 없다면 남자들은 굳이 조언으로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ㅁㅁ 님께, 리스펙하는 ㅇㅇ 님께,


‘존경’과 ‘리스펙’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현실에서 사용되는 비중은 월등히 차이가 있다. 존경은 ‘존중’과 함께 ‘공경’의 의미가 함께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리스펙’은 10년 넘게 쇼미더머니를 통해 너무 많이 들어서 입에서 쉽게 나온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한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려도 씩씩하거나 인상 깊은 성취를 이룬 친구에게 리스펙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 리스펙에는 ‘네 멋있음을 인정한다’, ‘같은 남자로서 배울 점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남자가 한 사람으로 충만히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끼리끼리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알아봐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워낙 돈이 중요하고 빠르게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에서는 이것이 경쟁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나, 삶은 결승선 없는 세상과의 1:1 경기임을 안다면 옆에서 각자의 레이스를 하고 있는 타인들이 나만큼 잘 뛰어줘야 한다. 리스펙을 통해 자생적이고 건설적인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칭찬과 인정은 남자를 움직이게 한다.


내 다른 복학생 친구처럼, 리스펙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혹은 얻는 방법을 모르는 남자들은 나이가 들 수록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며 외로워질 것이다. 자기가 닮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부분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사람을 굳이 시간과 돈을 써가며 만날 이유가 없어질 것이다. 우리가 성숙해질수록 리스펙의 출처는 잔고가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풍요로움친절함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외롭기 싫어서 리스펙을 받아야 하느냐는 앞 뒤가 바뀐 질문이다. 인정의 욕구는 양날의 검이다. 자신의 노력과 성취를 스스로 인정해줄 수 없다면 남의 인정을 받아 뭘 할까? 남자들은 리스펙을 갈구하는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남자들  고독을 즐길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그마저도 오래 시간 고독할  없다. 우린 점점 외로워질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성취를 인정해주는 커뮤니티를 만들  있다면 어떨까? 일주일에  시간씩 그룹 세션으로 모여 서로의 일주일간의 성취와 노력 상황을 듣고 리스펙을 보여주는 그런 자리 말이다.  술잔을 기울일 친구가  필요가 없다. 우린 동시대를 사는 남자로서 서로의 인정을 받을 가치가 있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Xuan Nguy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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