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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Jul 27. 2024

결국엔 과정

과정을 무시하는 곳에 미래는 없다

DYOR


BYOB, bring your own beer(자기가 마실 맥주는 자기가 가져오기)가 아니다. DYOR은 NFT를 구매해 본 사람이라면 최소 한 번은 본 단어다. ‘Do Your Own Research‘의 줄임말로, NFT 프로젝트의 백서(white paper) 끝에 있거나, 프로젝트 팀이 꼭 마지막에 붙이는 단어다. ‘당신이 직접 조사를 하십시오’, 어찌 들어보면 투자 유의 문구로 들리기도 하고 자기 면책 조항처럼 들린다.


자기들의 프로젝트에 돈을 내려는 잠재 투자자들에게 ‘우리의 프로젝트에 관심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저희의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이 문서를 꼭 읽어보세요. 하지만 이 내용이 개별 투자자별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으니 개별적인 조사와 고민을 해보시는 것을 권유드려요.’라는 메시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한창이었던 NFT 붐이 꺼진 이후 남은 것은 절반이 훨씬 넘는 ‘rug pull’이었다. 이 ‘갑작스러운 사기성 사업 철수’로 투자자들의 돈이 삭제됐고 NFT와 가상화폐씬은 아직도 부정적인 낙인이 찍혔다. 이 정도면 DYOR은 프로젝트의 rug pull 출구 전략의 하나였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DYOR은 ‘네가 결정을 한 것이니 나중에 우리 탓하지 마시오.’ 란 뜻이다.


내가 지금 회사에 조인한 이유는 NFT의 잠재력뿐 아니라 블록체인이 가진 ‘독립적인 항상성’이었다. 이 기술은 탈중앙화적인 합의 메커니즘을 통해 선한 목적을 가지고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 이전에 있는 모든 과정들이 블록체인 참여자들에게 모두 분산 관리되기 때문에 드디어 과정이 중요한 ‘프로세스 이코노미’의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나의 이상과 달랐다. 과정에 가치를 둘 줄 알았지만 결국 블록체인 운영사의 목적대로 움직였다. 거짓말이 난무했고, 책임을 회피했다. 내가 본 블록체인씬에는 과정은 없었다.


블록체인상의 합의는 속일 수 없다, 하지만 블록체인 하나의 기록 장부에 불과하다. 그 기록 장부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매수한다면? 이미 블록체인 생태계에 참여한 사람들이 작당모의를 하였다면? 이것은 컴퓨터상에서는 무결한 의사 결정 과정이었다 할지라도 그 과정 이전의 과정이 이미 부정직하고 거짓 그 자체라면? 어쩌면 블록체인은 사기업 자본으로 하기엔 핏이 안 맞는 프로토콜이다.


Due Diligence


기업은 법적 계약을 앞두고 있거나 신규 사업을 계획할 때 Due Diligence를 행한다. 주체가 직접 합리적인 노력을 다해 조사하는 행위를 말한다. Due Diligence는 ‘해야 하는’이라는 뜻의 라틴어 ‘debere’와 ‘신중함’이라는 뜻의 ‘diligentia’가 합쳐졌다. 즉, ‘신중해야 한다’라는 의미다. 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Due Diligence를 한다. 공시된 자료를 활용하기도, 발행 기사를 열람하기도, 직접 실사를 나가서 존속하는 사업체인지 확인하기도 한다. 딱 정해진 방법이 있다기보다 실행 주체가 직접 노력하여 리스크를 최소화하라는 법적/사업적 책임인 것이다. 나의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것이니 잘해야 하는 과정인 것이다.


근데 문제는 내가 노력해도 100%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최선을 다해 DD를 했지만 뭔가 께름칙하다면? 혹은 DD 할 정보 자체가 부족하다면? 감을 믿어야 할까? 그렇기 때문에 계약서가 있고, 제삼자 보증이 있고, 신용 평가기관이 있고, 중재사가 있고, 리서치, 컨설팅, 로펌이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어찌 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최소한의 신뢰를 주어야만 합의가 성립되고 일이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점주님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제 본 추적 60분의 제목이다. 프랜차이즈 본사의 지원이 없고 약속된 매출이 보장되지 않아 망해가는 상황을 담았다. 백종원의 연돈볼카츠 가맹점이 이슈의 시작이었다. 억지스러운 백종원 때리기인가, 혹은 더본 코리아의 잘못된 영업 관행인가? 아직 나온 것은 없다. 그러나 이건 확실히 알 수 있다, 계약 당사자들 모두에게 깔끔한 과정은 아니었구나라는 것은.


점주들은 그 브랜드의 대리점/가맹점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본사도 가맹점을 모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본사는 가맹점을 모집할 때 법에 따라 평균 매출 수준을 안내해야 한다. 가맹점주가 되려는 사람은 공시된 정보 외에도 발품을 팔아 자기의 결정에 조금이라도 확률을 높이려는 합리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본사는 ‘최소 월 매출 1천은 찍을 것입니다’라는 식으로 과장된 기대감을 주어서는 안 되고, 예비 점주도 심지어 대통령도 순이익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입지, 경제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리스크를 염두한 독립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본사는 DYOR을 말하면 안 되고 점주는 열심을 다해 DD를 해야 한다.


제대로 안 보고 안 읽는 시대


유튜브는 한국에서 제일 많이, 오래 쓰는 앱이다. 유튜브는 우리에게 정보를 검색하고 발견도 하는 앱이 되었다. 시각 정보에 익숙해진 우리는 이미 활자를 포기한듯하다. 그러니 문서 계약이든, 글로 쓰여 있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읽지 못한다. 처음에는 웃던 사이가 후회하는 사이로 되는 일이 많다. 나도 마찬가지다, 투자할 때 ‘약속된’ 달콤한 수익 기대감 때문에 제대로 된 DD를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의 잘못이고, 나의 리스크다.


결국에 과정


길게 돌아왔다, 내 결론은 이것이다: 세상만사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는 것. 세상은 결과를 가지고 떠드는 곳이다. 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일 뿐이며 이들만이 그 결과의 실체를 가장 잘 알 뿐이다. 과정은 결과의 단순한 프리뷰가 아니다. 과정은 그 자체가 결과다.


과정이 지저분하면 좋은 결과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다. 원치 않은 고생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래서 과정의 가치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한다. 동시에 과정에 힘쓰는 사람을 응원하고 도와야 한다. 그것이 잃지 않는(=지키는) 지혜다. 과정의 속도는 중요치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참여하는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절차이냐, 이 절차에 모두 자신이 있냐는 것이다. 모두 맞다고 느끼는(feels right) 과정 말이다. 결국 사필귀정이다.



written by: bruce wayne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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