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도시 다이어트 Vol.7]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이 하나의 도시를 기억하고, 방문하고, 애정하게 하기 위해서는 타 지역과 명확하게 구분되는 2-3개의 강력한 중심 키워드가 있고, 이 키워드들과 연결되어 연상된 서브 키워드들이 나무 모양처럼 퍼져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전주시를 예로 들면 “한옥마을”, “음식”이 기억나고 “한옥마을”하면 “한복”, “꼬치”, “전동성당”, “경기전”, “향교” 등이 연상되는 구조인 거죠. “음식”하면 “비빔밥”, “콩나물국밥” 정도일 것 같아요.
전주시의 키워드들이 명확해진 것은 20년 정도 사이에 일로, 한옥마을의 성장이 키워드 구조나 서브 키워드들을 성장시킨 사례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나가하마시는 키워드가 성장한, 아니!! 맨땅에서 만들어진 도시입니다. 키워드는 3개로 똑 떨어집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쿠로카베 스퀘어, #유리공예
이 3개의 키워드들 중에 2개가 최근 35년 이내에 만들어진 키워드입니다.
오늘은 키워드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일본의 나가하마시는 인구 11만 7천여 명의 지방 소도시인데요. 이곳은 도시경영, 관광 마을만들기 등의 사례로 매우 유명한 곳입니다. 나가하마의 사례는 우리 지역에 콘텐츠가 없어서 고민인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가하마시 자체의 역사는 깁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처음으로 영주가 된 지역으로, 히데요시가 1574년에 지은 성이 있었던 지역인데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죽음 이후 히데요시 지우기에 의해 성과 마을 등이 1615년에 철거됩니다. -지금 있는 나가하마성은 1950년대에 복원- 다행히 나가하마시는 일본의 수로와 육로를 연결하는 지리상 요충지였기 때문에 코호쿠 지방(호북지역)의 관문으로 자리 잡으면서 원도심에 경제적으로 풍족한 상공업의 마을이 형성됩니다. (재미있게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나오면 관광객이 늘고, 악역으로 나오면 관광객이 줄어든다고 하네요.)
이러한 지리적 특성 덕에 1970년대부터 교통이 비약적으로 발전되게 되는데, 옛 성곽 지구와 중심시가지를 가로지르는 철도가 건설되고, 시가지의 동~쪽에 국도, 바이패스, 고속도로, JR신칸센 간사이선 등이 건설되면서 나가하마시 자체는 성장하게 되었지만 옛 성곽 지구를 포함하는 원도심은 쇠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의 쇼핑몰들이 교외 시가지에 형성되면서 빈 상가가 증가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코호쿠 지방의 15만 명 상권을 자랑하던 원도심 상가는 월 4,000여 명만 방문하는 상가가 되었습니다. 일요일 오후 1시간에 메인 거리를 걷는 사람은 고작 4명밖에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특히 나가하마시 원도심의 관광 자원이었던 전통 가부키 「히키야마 축제」의 계승자가 없어 축제의 존재마저 위험하게 되면서 관광객 또한 거의 없다시피 됩니다.
원도심 쇠퇴에 대응하기 위해 나가하마시는 1984년에 시민들과 함께 만든 상위계획 「박물관 도시 구상」을 책정하고 마을 전체를 박물관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시민들과 함께 나가하마성 복원 등을 추진합니다. 1994년 신박물관 구상이 책정되었는데 목표는 그대로 유지하고 원동력을 「사람이 거리를 움직인다」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로 원도심 재생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는데요. 나가하마성 복원을 위한 비용을 시민들로부터 기부받은 것부터 마을만들기 참여 조직이 아래의 그림처럼 다양한 점들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다양한 마을만들기 조직 중에서 주식회사 쿠로카베만 콕 찝어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나가마하시 원도심에는 1900년에 국립 제130은행 나가하마 지점으로 지어진 흑회색 양옥 건물이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에 의해 “쿠로카베 은행(흑벽은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시민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해요. 국립130은행 이후에도 메이지 은행, 전매공사, 가톨릭 교회로 운영되면서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에는 가톨릭 교회로 운영되었는데요. 1987년에 가톨릭 교회의 교외 이전이 결정되고 토지 및 건축물을 아파트 건설사에 매각하고자 하였습니다. 랜드마크라고 생각했던 쿠로카베 은행을 철거에 하고 아파트를 건설하는 것이 결정되자 시민들은 “쿠로카베 은행을 매입하여 시 자료관으로 만들어 달라”라고 시에 청원을 넣게 됩니다.
청원을 받은 당시 시청 직원은 “자료관”으로는 원도심이 활성화될 수 없다고 판단해 마을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지역 기업인에게 상담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상담에 응한 이들은 임대 빌딩업, 호텔업, 금속가공업, 건설업, 창고업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인으로, 이들은 스스로 자금을 마련하여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고 운영할 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합니다.
회사 설립을 위해 지역 기업 8개 회사가 9,000만 엔 출자하고, 나가하마시에게도 4,000만 엔의 출자를 부추긴 결과, 합계 1억 3000만 엔의 자본금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자본금으로 제3 섹터로 “주식회사 쿠로카베”가 설립되었는데요. 제3섹터의 지분을 보통 51% 이상을 공공이 지분을 가지는 것과 달리 주식회사 쿠로카베는 민간 지분율이 높습니다. 이는 일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태라고 하네요.
매입 당시에는 철거를 막기 위한 목적이 커서 쿠로카베 은행 건축물에서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았지만 매입 후 바로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일상적인 상업 수요는 교외의 대형상점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고, 원도심에 남은 기존 상권과 경쟁하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관광 요소를 활용한 거점시설로 이용하는 방향으로 우선 정하였습니다. 관광 콘텐츠로 “역사성”, “문화·예술”, “국제성”의 관점에서 지역산업을 찾았지만 쉽게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 지역산업은 아니지만 “유럽에서는 유리를 제작하는 곳에 사람이 모인다”라는 의견을 채택해 유리공예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이들은 일본과 유럽의 유리공방을 둘러본 후 주식회사 쿠로카베의 사업모델을 "전통 건축물의 재생 및 전환"과 "유리"를 테마로 하는 사업으로 결정합니다.
결정 후에는 매우 신속하게 움직였습니다. 오스트리아로의 전문 연수, 마케팅 등을 진행했고, 1999년에 쿠로카베 은행 본관은 "쿠로카베 유리관"으로, 추가 매입한 인근의 건축물은 유리공예 공방인 스튜디오 쿠로카베(3호점), 유리식기를 사용하는 프랑스 식당과 이탈리아 식당이 들어간 비스트로 뮬노와르(2호관), 공용화장실을 오픈하여 쿠로카베 스퀘어를 만들어 냈습니다. 스튜디오 쿠로카베에서는 유리공예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비스트로 뮬노와르는 청년 세프들이 운영하게 하였습니다. 유리공예 테이블웨어와 함께요. 그곳에서 식사를 한 사람들은 접시를 자동적으로 구매하고 싶도록 만든 거죠.
당시 유리공예는 일본에서 성장하지 못했던 분야로, 처음에 유리공예를 하겠다고 했을 때 주변 상인들 모두 싸늘했다고 해요. 지역의 근간에 없으니 싸늘한 것은 당연했을 겁니다. 그러나 쿠로카베 유리관은 개관 한 달 만에 2만 명이 찾는 곳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실 저도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듣고 "유리공예?"라고 생각했는데 공예품의 사진을 보는 순간 "오~살만한데?"라고 마음이 훅 바뀌었습니다.
주식회사 쿠로카베의 이념은 “고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준다”라고 합니다. 제3섹터에서 내놓기는 어려운 발상과 자세인데 이는 민간기업의 참여가 활발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일본의 제3섹터들이 운영이 잘 안 되지 않기로 유명하거든요. 어쨌든) 주식회사 쿠로카베는 유리공예도 세계의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준으로 올려놓을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개장 후 쿠로카베 유리관의 매출은 1989년(9개월 차)에 1억 2300만 엔을 시작으로 매년 7000만 엔씩 늘어났고 10년 뒤인 1998년에는 8억 7700만 엔을 달성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지금까지의 유리공예 기술을 집대성해 오리지널 브랜드 「리플렉션 쿠로카베(Reflection Kurokabe)」 를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성장을 위해 오스트리아의 전문가를 초빙해 쿠로카베 유리공예대학을 매년 정기적으로 운영해 왔고, 쿠로카베 장학금을 통해 청년들을 해외연수 보내는 등 적극적인 인재 육성을 추진하였습니다. 또한 국제적인 유리공예 문화교류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 주민들이 유리공예를 받아들이고, 지역 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들을 마련했습니다. 마케팅 전문가 등을 섭외해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 지역에서 유리공예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증가하였습니다.
또한 쿠로카베 스퀘어는 유리공예를 판매하는 도구로만 생각하지 않고, 보고 배우고 만들고 즐길 수 있고, 또 수다 떨고, 먹고, 기념품 사서 집에서도 즐기는 일종의 시간소비형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로 활용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수익과 관광객이 증가를 기반으로 (주)쿠로카베는 유리관에 접해있는 도로인 “북국 가도”에 노후주택이나 빈집을 매각 혹은 임대하여 유리공예 등과 관련된 가게들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주)쿠로카베는 전통 건축물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나대지, 노후 건축물 등을 모두 사업의 대상으로 활용하였습니다.
현재는 쿠로카베 29호관까지 오픈하여 북국 가도를 유리 가도, 쿠로카베 스퀘어라고 부를 정도라고 합니다.
이들 29개 관 중에 직영하는 곳은 현재 9개소입니다. 직영점은 유리공예와 관련되어서는 쿠로카베 유리관, 스튜디오 쿠로카베, 쿠로카베 오르골, 도예공방 홋코쿠가마의 4개소가 운영되고 있으며, 나머지 5개소는 직물을 활용한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모노코코로", 지역의 수공예품, 특산품 등을 판매하는 쿠로카베AMISU, 고미술 판매점 "니시가와", 지역 식품 판매소, 음식점 등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20개소는 (주)쿠로카베의 사업모델에 찬동하는 사람들이 매입하거나 회원이 되어 입회금 50만 엔, 월회비 15,000엔을 내고 쿠로카베 건축물에서 점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리관이 오픈한 지 2년 만에 건설된 8호관 향토음식 츠바사카로(익과루)를 들 수 있습니다. 7,8호관은 (주)쿠로카베가 빈 가게와 공터였던 땅과 건물을 매입하여 오래된 건축물은 복구하고, 공터에는 옆 건물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신축하였는데 7호관은 신축입니다.
8호관은 (주)쿠로카베는 건축물을 정비한 후 여기서 가게를 차리고 싶은 사람을 찾아 그 사람에게 매각한 케이스로, 새 주인은 (주)쿠로카베의 프로듀싱을 받아 가게를 오픈하였습니다.
(주)쿠로카베가 매입하지 않고 임대를 하는 경우 (주)쿠로카베가 건물주의 대출 의향이나 조건 등을 파악한 후 거리 형성을 위한 디자인·코드를 따르면서도 파사드 디자인 등은 가게의 개성을 살리도록 계획해 점포를 리모델링한 후 상인들에게 임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스템으로는 쿠로카베 10호관을 들 수 있습니다. 10호관은 쿠로카베 미술관으로 유리 문화의 조사·연구, 교육 보급 활동을 실시하는 거점입니다.
10호점의 부지는 소유자가 다른 곳으로 이사가 비어있던 전통가옥으로, (주)쿠로카베가 창고로 임대해 사용하다가 매입했습니다. 미술관은 필요한 시설이기는 하지만 수익을 기대할 수 없었으므로, 자금은 증자로 충당했습니다. 의욕적인 경영자가 있는 회사를 선택해 1주 500만 엔을 원칙으로, 38사와 4명에게 합계 2억 엔, 나가하마시에게 1억 엔의 추가 출자를 받았습니다. 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자금을 모아 실현시킨 것입니다.
즉, (주)쿠로카베가 부동산 디벨로퍼의 역할을 수행한 것인데요. 북국 가도의 역사적 자원을 살리면서, 마을 만들기에 적합한 업종을 도입해 나간다는 의지와 철학 하에 디벨로퍼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민간 부동산 디벨로퍼와 다른 점입니다.
이러한 쿠로카베 스퀘어의 확장 시 나가하마시는 신박물관구상을 통해 골목길 정비, 문화재 복원 등을 추진했습니다. (주)쿠로카베가 임대, 매입하는 건축물들 중 좁은 골목길에 있어 어둡고 위험해 보인다면 그곳을 우선적으로 함께 정비해 사람들이 즐겁게 이동하고 머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의 공공시설물들 중 일부는 유리공예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쿠로카베 스퀘어가 확장되면서 방문객은 연간 20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유리공예품 재구매 고객이 4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방문객이 증가하자 쿠로카베와 별도로 수제맥주점, 카페, 레스토랑, 선물 가게 등이 입점하고, 주변 점포들이 활기를 되찾았습니다. 문 닫힌 상점가에서 이제는 쿠로카베 스퀘어에서 반경 300m 내에 빈 점포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주)쿠로카베의 사업모델 "전통 건축물의 재생 및 전환"과 "유리"를 테마로 하는 관광 콘텐츠가 빛을 발휘한 덕이지요. 현재 (주)쿠로카베는 제3섹터가 아닌 민간 마을만들기회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나가하마시는 주주로 참여하고 있어요.
상주 직원은 58명, 파트타임까지 포함하면 100명이 넘는 직원과 64개의 회사 또는 개인의 주주를 가진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수입 자본금은 5억 4천만 엔, 채권 자본금은 10억 엔, 1년 수익은 약 650백만 엔입니다. 이들의 수익은 모두 마을만들기로 재 투입됩니다.
설마 제3 섹터를 만들어야겠다고 느끼신 건 아니길 바랍니다. 너무나도 특수한 경우이거든요.
저는 사업모델인 H/W의 "전통 건축물의 재생 및 전환"과 S/W인 "유리공예"가 모두 맨땅에서 추진된 것에 주목합니다. 오래된 건축물들을 재생하고, 완전 새로운 산업을 가지고 들어와 콘텐츠를 만들어 낸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전주시에 살면서 "전주의 특산품은 무엇인가요?"라는 대답에 항상 하하하 웃으며 초코파이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전주시는 한옥마을이 있어 하드웨어는 참 진행되고 있습니다. 함께 갈 지역산업, 콘텐츠, 특산품은 무엇일까요? 나가하마시를 공부해보니 민간회사인 저희 회사에서도 이런 콘텐츠들을 고민하고, 이미 있는 것들 엮어 보고,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조금 생깁니다.
여러분은 어떠세요?
거주하시는 지역을 기억하게 하는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그 키워드를 다른 사람들도 알고 있나요?
키워드가 정말 정말 생각이 안 나신다면, 나가하마시처럼 만들어버리는 것은 어떨까요?
滋賀・長浜 中心市街更新“観光商業の創生”物語 , 東京藝術大学美術学部建築科 講師 博士(工学) 河村 茂
滋賀県長浜市黒壁スクエアにおける観光消費の経済波及効果(1)と政策的インプリケーション, 垣内恵美子
黒壁“長浜”~多様な主体がまちを変える, NPO法人 まちづくり役場 理事長 山崎 弘子
마치나카 재생포탈사이트, 滋賀県長浜市(黒壁スクエア) ~第三セクター(株)黒壁によるまちづくり~
크리에이티브 타운 프로모션 허브, 나가하마 주식회사 쿠로카베
쿠로카베 홈페이지
중심시가지 도시재생의 도시 규모 유형별 정책 및 전략 (구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