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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n Jul 21. 2020

무계획과 무일푼의 밴라이프였다

#41

2018년 초여름 영국을 출발하기 전, 물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혀 모를 때 샴푸 스프레이를 사두었다. 이틀만 머리를 감지 않아도 금세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가려워졌기 때문에 난 혹시라도 물이 없어서 샤워를 못할 상황이 되면 샴푸 스프레이를 뿌려서 버틸 생각이었다. 샴푸 스프레이는 물을 전혀 쓰지 않고 머리에 그냥 뿌리기만 하면 방금 머리를 감고 말린 것처럼 뽀송하게 만들어준다고 했기 때문이다.

밴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한 국가에 들어갔을 때 그곳에 적응하는데 보통 3일에서 4일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마트는 어떠한 물건이 있는지 물은 어디에서 받을 수 있는지 그리고 무료로 정박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잘 되어 있는지 등등을 며칠 동안 신경 써서 눈치를 살핀다. 다른 캠핑카들이 많은 여름에는 그리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지만 여행을 다니는 이가 거의 없는 겨울에는 쉽지 않다.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자마자 자연 속에 정박을 한 우리는 일단 최대한 가진 자원을 아끼면서 바르셀로나까지 가기로 하고 이것저것들을 따져보고 스마트폰으로 검색도 해보기 시작했다. 먼저 물을 어디서 어떻게 받을 수 있는지부터 알아두어야 했는데 한겨울임에도 날이 따뜻해 단수가 되어 있을 거 같지는 않았지만 프랑스나 독일처럼 무료 정박지나 캠핑카 주차장이 많이 보이지는 않았다. 물을 받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낭뜨에서 받은 물이 아직은 넉넉하게 남아 있었지만 물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지 못하는 이상 머리를 감는 사치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때 샴푸 스프레이는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이다.

다음으로는 돈이었다. 다행히도 스페인의 물가는 낮았다. 빅맥은 프랑스의 절반 값이었고 식재료 가격도 상당히 저렴했다. 게다가 바다로 둘러싸인 스페인은 해산물의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했으며 부담 없이 사 먹을 수 있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동쪽 끝 덩케르크에서 스페인까지 거의 매일 달려오느라 기름값으로 적지 않은 돈을 쓴 뒤여서 가진 돈은 30만 원도 채 안 남아 있었기에 스페인에서 예약된 스냅 촬영을 하기 전까지는 최대한 먹는 것도 줄여야 했다. 

그리고 머물 수 있는 곳은 주로 어디가 좋은 지도 파악해야 했다. 스페인을 오기 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캠핑 앱에는 온통 도난당했다는 리뷰로 도배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박지에 캠핑카를 세워두고 여행을 갔다 왔을 때 털렸다는 이야기는 기본이었고 심지어 캠핑카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데에도 창문 깨고 들어왔더라는 무시무시한 경험담까지 있었다.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활동하던 도둑들이 겨울에도 춥지 않아 관광객이 몰려드는 스페인으로 원정을 왔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허름한 우리 밴의 외관 덕분에 웬만하면 도난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고 이탈리아에서도 노상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돌아다녔었지만 스페인은 도저히 자신이 없었다. 밴 안에는 돈도 없고 귀중품도 없었지만 유일하게 우리를 먹여 살려주는 컴퓨터가 있었기에 이번만큼은 최대한 조심하기로 하고 스페인 국경 근처 자연 속 정박지에서 바르셀로나 도시 중심가부터 외곽지역까지 전부 훑어가며 괜찮은 정박지들을 검색했다.

일몰을 배경으로 바르셀로나를 떠나다

스페인에 있는 동안은 우리가 캠퍼밴에서 산다는 게 가장 뿌듯했다. 뜻하지 않게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우리의 캠퍼밴이 있었기에 바르셀로나 한복판에서 그들과 함께 밴 안에 앉아 저녁도 같이 먹고 이야기도 나누며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스트리아에서 집이 불에 탄 지인과 삼겹살을 구워 먹은 일 이외에는 누군가를 밴으로 초대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혜아와 사랑이 그리고 나 오로지 셋 뿐이던 우리의 보금자리에 스페인에서 만난 혜아의 지인들도 초대했으며 우리 밴을 구경하기 위해 온 사람들과도 저녁을 함께 먹었는데 그중에 가장 첫 손님은 우리에게 스냅 촬영을 예약했던 사람이었다.

혼자 스페인 여행을 왔다는 그 손님은 스냅 촬영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보니 혜아와 동갑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밴에서 살며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혜아의 블로그를 보고 잘 알고 있었고 이야기도 나눌 겸 스냅 촬영을 예약했다는 것이었다. 술을 좋아한다는 그녀는 마침 배낭 안에 소주가 몇 병 들어 있었으며 수다라면 빠지지 않는 혜아와 분위기 만들기에는 선수인 나는 촬영을 끝내자마자 바르셀로나 바닷가 앞에 밴을 정박시켜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시고 떠들었다.


스페인에 도착해서 며칠 동안은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바르셀로나는 관광객들로 넘쳐났으며 낮에는 더웠고 혹시나 도난당할까 봐 처음으로 보안시설이 되어 있는 주차장에 돈을 내고 주차를 했으며 해변가 정박지에서는 혹시나 누군가 침입하지 않을까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에 더 그랬던 것 같았다. 그래서 스냅 촬영이 끝난 다음 날 우리는 바르셀로나를 떠났다. 정박을 할 만한 주차장들은 제법 보였지만 거의 다 유료였고 도난에 신경이 쓰여 밴을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바르셀로나에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남부도 둘러볼 겸 해안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스냅 촬영 덕분에 몇 십만 원이 더 생긴 우리는 식재료도 잔뜩 사다가 챙겨 넣고 늦은 오후 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운 일몰을 마주 보고 몇 시간을 내려가다가 중간 정박지로 정해 둔 곳에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스페인의 어느 한적한 바닷가

어두운 밤에 도착한 터라 다음 날 아침에 일어 나서야 우리가 얼마나 좋은 곳에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저 멀리 집이 띄엄띄엄 보일 뿐 겨울이어서 주변엔 정말 아무도 없는 한적하고 자그마한 바닷가 바로 앞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너무나 조용하고 너무나 따뜻했으며 사랑이와 산책을 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정박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해는 쨍쨍했지만 덥지 않았고 밤에도 내부가 데워져 있어서 따뜻했다. 게다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 덕에 태양열 전지판은 한껏 전기를 생산해주어서 밤낮으로 원 없이 컴퓨터를 쓸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사랑이와 함께 목줄을 하지 않고 뛰어놀았다. 자그마한 해변은 오롯이 우리 차지였기에 밤낮으로 사랑이와 모래사장 위를 뒹굴었고 밴의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사랑이가 마음껏 밖에서 놀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노을은 우리에게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색을 보여주는 듯이 아름다웠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잠시 쉬어 가기로 했던 곳에 우린 일단 며칠만 더 머무르기로 했다.


이맘때 즈음 우린 몇 가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첫 번 째는 몇 달 전 동생이 제안한 민박집에 관한 것이었다. 이미 민박집을 해보자고 결심을 하고 우리의 쉥갠조약국가 체류 기간이 끝나는 3월 초에는 크로아티아로 넘어가기로 한 상태였지만 여전히 마음 한 켠이 개운하지 않았다. 민박집을 한다는 것은 곧 밴라이프를 끝내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붙어있는 집'에서 살게 되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밴을 떠나야 한다는 게 싫었다. 좁지만 마음 안에서는 한없이 넓고 춥지만 서로가 있어서 너무나 따뜻한 밴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원래 우리의 계획은 스페인을 지나 모로코로 넘어가는 것이었지만 이제 우리 통장에는 35만 원 남짓만 남아 있었으니 머리는 민박집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고, 마음은 여전히 밴을 타고 모로코로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때문에 민박집 계획을 짜고 있는 순간까지도 우린 고민을 했다.

고요한 바다와 눈부신 노을

두 번째 고민은 혜아의 것이었다. 나의 글을 처음부터 읽어왔다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혜아는 사실 6개월 정도만 일하면서 여행할 목적으로 영국에 왔었다. 편도행 비행기표를 끊고 왔다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었고 부모님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무계획과 무일푼으로 시작된 우리의 밴라이프를 혜아는 부모님께 제대로 말씀드리지 못했고 우물쭈물하다 일 년의 시간이 흘러버렸다.

단 몇 달의 영국 생활을 계획하고 나왔던 터라 혜아는 변변한 여름옷도 없었고 주변 정리도 잘 안된 상태였으며 부모님께는 계속 죄송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사 남매의 장녀였던 혜아는 갑작스레 밴라이프를 한답시고 얼렁뚱땅 외국에서 하염없이 지내고 있는 언니를 원망하고 있는 동생들 생각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 언니로서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기분이 우울해졌다가도 내 삶을 내가 사는데 왜 자기들이 난리냐며 폭발하기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혜아는 민박집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주변 상황들을 정리한 뒤에 제대로 해외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걸릴지 알 수는 없지만 나와 사랑이를 두고 한국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도 고민이었던 듯했다.


며칠 뒤 이 모든 고민을 덮어버릴 만큼 큰 고민이 생겼으니 바로 먹을 것과 물이 다 떨어지고 화장실과 오수통이 가득 찼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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