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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Sep 18. 2021

불안을 잠재우는 극애착육아


불안한 아이는 예민한 편도체를 갖고 있다. 편도체는 뇌에서 불안이나 공포 등의 원시적 감정을 관장하는 부위다. 날때부터 편도체가 예민한 아이는 불안해서 잠도 잘 못 자고, 작은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고,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장소 등에 낯가림이 심하고, 잠시도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품안에서만 잠드는 아이라면 그 이유는 손을 타서도 아니고, 엄마가 잘못 키워서도 아니고, 애정결핍도 아니고, 편도체가 예민하기 때문일 경우가 많다.


기질은 선천적이며 바꿀 수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기질 요소들 중 불안은 가장 가변성이 있다고 연구되고 있다. 물론 완전히 기질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아니고 보다 심해지거나 보다 약해질 여지가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불안하고 예민한 아이를 키울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언제나 ‘정서적 안정’을 말한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면서 걱정하게 되는 수많은 문제들은, 사실 정서만 안정되면 웬만큼 저절로 해결되는 것들이다. 불안한 정서가 원활한 신체적, 인지적 발달도 막고 사회성도 방해하기 때문이다. 불안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기에, 불안도가 높은 사람은 불안을 다스리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써 버린다. 불안은 에너지 구멍이나 다름없다. 불안한 아이는 하루 종일 소모적으로 애를 쓰고도 여전히 불안하다. 불안한 아이는 늘 기분이 안 좋다. 짜증이 많아서 안 그래도 힘든 육아가 더욱 절망스러워진다.


뇌는 끊임없이 신경 경로를 만들고 조정한다. 자주 쓰는 회로들은 강화되고 안 쓰는 회로들은 정리된다. 자주 쓰는 뇌는 강해지고 안 쓰는 뇌는 약해진다. 계속해서 새로운 길을 익혀야 하는 택시 기사들은 공간감각과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가 일반인들보다 훨씬 크게 발달한다. 운전한 햇수가 많을수록 해마는 더 커졌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뇌에는 가소성이 있으며, 특히 영유아기에는 뇌 가소성이 더욱 크다.


타고난 기질이 어떻든 어린 시절 위협적인 환경에서 자란다면 불안도가 높아지는 건 당연하다. 심각한 경험에 의해 불안을 관장하는 편도체가 과도하게 발달하는 것이다. 반면 예민한 편도체를 타고난 불안한 아이라도 꾸준히 매우 안정적인 환경이 제공되면 편도체의 활성화도가 약해진다. 어린 시절에 편도체가 별로 활동할 일이 없으면 세상을 안전한 곳으로 인식하여 과활성화됐던 회로들이 가지치기되어 잠잠해지는 원리다.


또한 어린 시절 애착육아는 ‘불안을 느끼는 뇌’인 편도체와 ‘불안을 조절할 수 있는 뇌’인 전두엽을 연결시켜 준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뇌가 바뀐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은 스스로 그러할 능력이 없으므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꾸준히 감정을 읽어주고 차분히 해결책을 일러주는 부모의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 아이의 평생을 좌우할 수도 있을 만큼 이는 중요한 일이다. 정서적으로 불안정하면 모든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생애초기는 세상에 대한 신뢰감을 형성하는 시기다. <감정조절 안 되는 아이와 이렇게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의 저자 노라 임라우는 감정이 격한 아이일수록 특별히 더 애정 어린 동행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흥분한 아이를 혼자 두어 스스로 자제력을 키우게 한다는 생각은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고 손쓸 도리가 없는 지경까지 일을 키운다. 반대로 스트레스 상황에 처한 아이를 안아주며 위로의 말을 건네면 그 순간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도 아이의 마음근육이 단단해진다. 회복탄력성을 주관하는 미주신경이 튼튼해져서 결과적으로 스스로 스트레스를 떨치고 안정을 되찾는 감정조절능력이 길러진다.


그러므로 세상의 섣부른 조언에 흔들리지 말자. ‘너무 싸고 돌아서 아이가 예민해진다’라는 말에 휘둘리지 말자. 아니, 정반대다. 아이가 예민하기 때문에 보다 섬세히 보살피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 아이를 지키는 길이다. 불안하고 예민한 아이에게 극복 경험이 필요한 건 사실이나, 중요한 건 ‘긍정적 극복경험’임을 잊으면 안 된다. 극복경험이랍시고 부정적 경험을 많이 심어준다면 더욱 위축되는 역효과를 낸다. 아이에게 좋은 기억이 많아야 세상을 보다 안전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애착육아는 아이를 파악하는 좋은 수단이 된다. 예민하고 복잡한 기질일수록 아이를 잘 파악해야 한다. 복잡다단한 내 아이의 기질을 모른다면 닻 없는 배처럼 우왕좌왕 육아가 꼬일 수 있다. 어려서부터 애착육아를 지속하면 굉장히 큰 이점 중 하나가, 내 아이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의 심리를 파악하면 갈등을 예방할 수도 있고, 아이가 어떤 감각이 예민하고 어떤 상황에 취약한지를 파악하면 과자극으로 인한 통제불능 상태도 막을 수 있다. 아이의 불안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파악하면 그에 맞게 정서도 안정시켜 줄 수 있다. 그 어떤 전문가의 분석보다, 부모가 영유아기에 지지고 볶으며 시행착오도 충분히 겪고, 울고 웃으며 직접 부딪쳐서 익히는 것이 최고다.


섬세한 애착육아는 아이를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정적으로 만들어준다. 정서 안정을 최우선으로 두는 애착육아는 불안을 키우는 게 아니라 오히려 불안을 잠재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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