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둘째 소식이 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환영하고 기뻐하며 축하하였습니다. 어서 태명을 지어주자고 내가 제안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이 있어야 존재가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빠가 한번 지어 보세요!" 딸의 동의를 구한 나는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딸의 이름도 내가 지었습니다. 결혼 4년 만에, 천고의 노력(?) 덕으로 얻게 된,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딸이었습니다. 회사 마치고 도서관에 가서 옥편을 뒤져가며 작명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기억으로 한 일주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한글로는 나의 이름과 아내의 이름에서 각각 한자씩 주었으며, 한자(漢字)는 세상에 유익한 어진 사람이 되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현경(賢卿)이라는 사람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새벽에 잠시 잠이 깨었는데 시계를 보니 시간이 3시였습니다. 갑자기 나의 뇌리에 '3861'라는 숫자가 떠 올랐습니다. '3861'은 지금 내가 머무르고 있는 딸의 집주소 마지막 숫자입니다. 지난 2월 딸은 생애 첫 새집을 마련하여 이곳으로 이사를 했고, 그다음달 3월 중에 둘째 소식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는 3861이라는 숫자와 새로 딸에게 온 둘째와 무슨 연관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숫자를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3이라는 숫자는 3월(시간)을 가리키는 것 같았습니다. 8은 원(圓)을 한번 비튼(꽈배기) 형상으로 우주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습니다. 6은 올챙이 형상으로 우주의 에너지(기운)가 요동치며 내려오는 형국이며, 1(하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정리해서 해석하면 " 만물이 생성하는 3월에 우주(8)의 기운(6)이 이곳에 하나의 존재(1)를 심다"라는 의미입니다. 정말 내가 했다고 믿기질 않을 정도의 멋진 해석입니다(?). (나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니~~ 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딸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림을 그려가며 자세히 설명을 했고, 태명을 "삼팔(38)"이라고 하면 어떠냐고 제안하였습니다. 딸과 아내는 박장대소를 하며 "태명이 삼팔이가 뭐야 삼팔이가!" 라며 나의 훌륭한 직관력을 한방에 우슴꺼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태명으로 "삼팔"이가 좀 웃기나요? 아님 좀 덜 고상스러워서 맘에 안 드는 걸까요? 예로부터 태명은 좀 투박하게 짓지 않았나요? 개똥이, 소똥이 등등. 요즘 주말드라마에서는 "진짜"라는 태명도 등장하던데, 그에 비해 38(삼팔)이라는 숫자는 우리 정서에서 가장 큰 운(복)을 의미하는 이미지입니다. 우리의 놀이에서 "38 광땡"은 모든 조합을 제압합니다. 물론 "38선"이라는 슬픈 역사의 이미지도 가지고 있습니다만.
삼팔(38)이가 태명으로 맘에 안 들면 팔삼(83)으로 하던지, 아님 일팔(18)로 하던지 그건 앞으로 딸이 자기가 결정하겠지요. 나는 오로지 우리에게 오는 고귀한 새 생명의 의미를 그렇게 규정하는 것으로 나의 해석에 의미를 두려 합니다. 삶은 해석의 예술이라고 하니까요.